남정면은 조선시대 영덕현의 외남면(外南面)으로 1789년의 「호구총수」에 의하면 외남면에 속한 동리로는 남역리(南驛里), 역전리(驛前里), 역전해리(驛前海里), 구배육리(臼背陸里), 구배해리(臼背海里), 원척육리, 원척해리, 비물육리, 비물해리, 신흥육리, 신흥해리, 자부랑리(者父郞里), 장사육리, 장사해리, 고부육리(高夫陸里), 고부해리, 지경육리, 지경해리, 골곡리, 사라동리(士羅洞里), 쟁암리, 동동리, 도천리, 소근동리(小斤洞里), 다사라리(多沙羅里), 고만당리, 영귀동리(詠歸洞里), 사동리, 화무동리의 29개의 리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1896년에 발간된 「영덕읍지부사례」에 의하면 구계, 도천, 덕성, 원척, 적암, 다사, 쟁암, 비물, 자부랑, 신흥, 장사, 두천, 오산, 고부, 지경, 봉전, 동동, 양성, 상회, 하회, 남호, 남역, 상화, 하화, 원동, 우곡, 원구의 27개 동으로 기록되어 나오며, 1899년의 「경상북도영덕군읍지」에는 남역(南驛), 역전리(驛前里), 구배리(龜(臼)背里), 원척리(元尺里), 비물리(飛勿里), 신흥리(新興里), 자부랑리(者夫郞里), 장사리(長沙里), 고부리(古(高)阜里), 두천리(斗川里), 원(완)진리(院(浣)津里), 지경리(地境里), 다사라(多沙羅), 도천리(道川里), 쟁암리(錚巖里), 동동(銅洞), 적암리(赤巖里), 덕성리(德城里), 고만당(高滿當), 화무동(禾蕪洞), 익동리(翼銅里), 사동리(寺洞里), 골곡(骨谷), 와화(臥火)의 24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후에 두천리와 원직리가 장사리에 합쳐지고, 덕성이 도천에, 익동이 화무에 합쳐지므로써 1914년의 부군면 폐지까지 20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14년의 부군도(府君島) 통폐합 때에는 구계동(龜溪洞:구배리), 원척동(元尺洞), 부흥동(富興洞 : 원척리, 비물리, 신흥리, 자부랑리의 일부를 통합), 장사동(두천동, 오산동, 신흥동 일부를 통합), 부경동(阜境洞 : 고부, 지경), 회동(晦洞 : 골곡, 상회동, 하회동의 일부를 통합), 사암동(士巖洞 : 다사라, 적암), 쟁암동(쟁암, 동동), 봉전동(鳳田洞:와화)), 도천동(도천리), 양성동(洋城洞)의 11개동으로 구성되면서 남정면이라 하였으나, 1934년 4월 1일에 강구면이 신설되면서 영덕면에 속하였던 남정동(南亭洞 : 남역), 남호동(南湖洞 : 역전리), 우곡동(羽谷洞 : 고만당, 원구동), 중화동(中禾洞 : 사동, 화무, 상화, 하와, 원동의 일부를 통합)의 4개동이 이속되어 15개 동으로 남정면을 구성하게 되었다.

1988년 5월 1일에 군조례 제972호에 의해 동을 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