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미 군정기의 각종 제도의 개혁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성립 때까지 미군정 당국의 필요에 의하여 이루어진 개혁으로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제도개편으로 보아야 하며, 한국인 자력(自力)에 의한 본격적인 제도의 개편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에 따라 이루어지게 되었다. 미 군정기의 경상북도의 행정제도는 1부 22군 1도 체제로 영덕군은 22개군의 1군으로 동해안 일대의 중요한 지역으로 발전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1948년 8월에 대한민국이 수립되자 1910년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처음으로 자주적인 제도의 개편이 가능하여 졌으며, 정부 수립과 동시에 지방자치법이 제정, 발효(發效)됨으로써 유사이래 처음으로 민주적인 지방자치를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되어 져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정치, 경제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수립된 정부는 이승만을 수반으로 하는 제1공화국 정부로 광복 정국의 좌우익의 갈등과 이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6.25 한국전쟁 등의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새로운 민주체제를 이 땅에 이식함에 따라 이후 오늘의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이같은 변화 속에서 영덕군은 1961년 10월 1일자로 지방자치단체가 되어 영덕, 강구, 남정, 달산, 지품, 축산, 병곡, 창수 등 9개 면을 거느리게 되었으며, 이 때 정해진 제도들이 오늘날 영덕군의 기본 행정체제로 결정되었다. 제3공화국 시대인 1963년 8월 23일에 군조례 제43호에 의하여 축산항에 축산출장소가 설치되어 지역민들의 행정수요를 충족시키게 되었으며, 1974년 7월 10일에는 군조례 제270호에 의하여 지품면 원전에 원전출장소가 새로이 설치되어 지품면 북부지역 군민들의 행정편의를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1979년 5월 1일에는 영덕면이 영덕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1년 6월 2일에는 영덕읍 사무소가 군조례 제585호에 의하여 영덕읍 덕곡리 301번지에서 우곡리 310번지로 이전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에는 대통령령 제11027호에 의하여 달산면 매일 3리를 매일 2리에 통합하고 옥계리가 새로이 신설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는 군조례 제1021호에 의하여 지품면 오천 1리를 분리하여 신애리를 신설하였으며, 영해면 원구 3리를 원구 1리에 통합하였다. 1990년 1월 3일에 들어와서는 군조례 제1147호에 의하여 강구면 하직리를 원직리로 개명하였으며, 병곡면 휘리를 덕천리로 개명하는 행정구역 명칭변경이 있었다. 1993년 6월 29일에는 군조례 제1293호에 의하여 축산면 화천리가 영덕읍에 이속되면서 영덕읍 화천리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으며, 1995년 12월 29일에는 군조례 제1375호에 의하여 영덕읍 덕곡리가 덕곡 1리, 2리로 분리되었으며, 영해면 성내 1리가 성내 1리와 성내 5리로 분리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1999년 12월 31일 현재 영덕군은 1읍, 8개면, 2개 출장소, 118개의 법정리(法定里), 204개의 행정리, 325개의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21세기 동해안시대의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있는 자치단체로 우뚝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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