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광복 이전의 건설

  인간 생활의 편리를 위하여 이루어지는 토목과 건축 및 이와 관련되는 모든 일을 건설이라 할 때,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할 때부터 이런 일들은 개인단위, 지역단위, 국가단위로 그 영역을 넓혀 가면서 오늘날까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인간의 지적 능력이 발전되고, 이기심이 배태되면서, 국가나 특정집단 차원에서 타인을 정복하기 위한 도로의 건설이라든지, 아니면 상대방으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한 성채를 쌓는다든지, 아니면 관아를 건축하여 백성들을 다스리는데 편리를 도모한다든지 하는데서부터 건설은 시작되었으며, 민간차원에서는 종교적인 건물이나, 백성들이 거주할 일반 서민가옥을 건립하는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지역에도 선대(先代)들이 이 지역에 거주하면서부터 이와 같은 건설의 행위가 수없이 이루어져 왔을 것이다. 삼국시대의 달로산성, 포성의 유적과 고려시대의 영해부성, 축산성, 영덕현성, 조선시대의 영덕현성, 오포성, 그리고 영해부성의 서문루, 영덕현의 청심루, 객사 등의 건축과 창수면 인량리, 영해면 괴시리 등지의 고가옥, 장육사, 유금사 등의 사찰 건물들은 이러한 시대의 지역건설의 역사를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광복 이전의 우리 지역의 건설로는 대개 19세기 이전에 이루어진 성곽과 관아 건물, 각종 사찰 건물, 각 지역에 산재해 있는 고가옥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성곽이나 관아 등은 현재 온전한 채로 남아 있는 것은 없으며, 다만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고, 고가옥과 사찰의 건물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대개 우리나라에 있어서 근대 건설이 시작된 것은 1876년에 일어난 병자수호조약을 기점으로 개항이 이루어져서 서구 열강 및 일제와의 통상조약으로 무역량이 늘어나고, 어획량이 늘어나자 항만의 개발과 도로의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900년대에 들어와서 항만과 도로의 공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는데, 대표적인 항만공사로는 1913년부터 1936까지 530.000여원이 투입된 강구항의 항만공사와 1930년부터 1933년까지 72,000원이 투입되어 이루어진 축산항의 항만공사 등이 있는데, 이들 공사는 군내에서 이루어진 대규모의 현대적인 건설공사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10년 일제에 의한 한반도 병탄 이후, 일제는 식민지 수탈과 식민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한 도로의 개설과 확장을 하였는데, 우리 지역을 통과하는 대표적인 노선인 7번 국도와 34번 국도도 이 시기에 개통되었다. 따라서 이 두 도로를 따라 많은 교량이 개설되었는데, 이들 교량공사도 종래에 보지 못한 현대적인 공사로 군민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또한 이들 교량들은 일제 치하에서 이루어진 건설물의 하나로 그때 당시의 건설의 흔적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다. 다음표 <5-77> 일제하 군내에서 건설된 교량 현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