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주 거(住居)

본 군내의 주택도 다른 지방의 주택과 별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한옥(韓屋)을 비롯해서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영향으로 초가지붕을 양기와나 함석 등으로 개량하고 내부 구조도 조금씩 개량한 양식 기와집과 그리고 최근 군비 보조를 받아 벽돌로 지은 현대식 가옥으로 구분된다.
집의 배치는 농촌의 경우는 들과 내를 앞으로 하고, 어촌의 경우는 바다를 향해 있는 즉 전통적인 배산임수형(背山臨水形)이며, 형태는 뜰집, ㄱ자형, 그리고 ―자집이다.

1. 뜰집, ㄱ자집, 一자집

1) 뜰 집

  뜰집이란 평면(平面)이 ㅁ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건물 안에 뜰(內庭)이 있는 집이다. 뜰집의 칸 수는 24칸(間)에서 14칸까지 있으며, 구조는 대체적으로 앞 정면 곧, 바깥채는 사랑방과 마루가 있고 오른편 안채에는 정지(부엌)와 안방 도장이 있고 오른편 앞면에는 방 또는 마구를 배치하였으며 왼편 안채에는 중방과 곳간, 작은 통마루와 상방이 있고 안채 정면에는 대청(大廳)이 배치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안뜰이 있다. 이러한 구조는 ㅁ자형 기와집의 일반적인 형태이나 방, 곳간 등 내부 구조에 있어 조금씩 다른 경우도 있다.
군내에는 유일하게 국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인량리(仁良里) 충효당(忠孝堂)의 경우는 왼쪽에 사랑채를 앉히고 오른쪽에는 안채를 앉혔다. 또 내정(內庭:안뜰) 정면에는 3칸 대청(大廳)이 놓이고 왼쪽에는 샛방, 오른쪽에는 도장방과 안방이 접해 있다.
안뜰 왼쪽 사랑방 부분은 셋방에서 한 칸 벗어나 있는데 이것은 안뜰을 넓히기 위하여 확장된 것으로 생각된다.
안채의 구조는 높은 축대를 쌓고 자연석(自然石) 초석(礎石) 위에 방주(方柱)를 세웠으나 대청 앞 기둥은 원주(圓柱)를 사용하였으며 대청 상부(上部)는 들보를 세줄로 하는 즉 삼량가(三樑架)에 사다리꼴(梯形) 판대공(板臺工)을 세웠다.
이러한 ㅁ자형의 뜰집은 조선시대 사대부가(士大夫家)의 전형적(典型的)인 주택이다. 2) ㄱ자집

ㄱ자집이란 평면(平面)이 ㄱ자 모양으로 꼬부라진 집을 말한다. ㅁ자형은 팔작지붕이 대부분인데 비해 ㄱ자형은 맛배지붕이 대부분이다. 집의 구조는 정면은 사랑방과 가운데방, 마루를 앉혔고 측면은 도장, 안방, 부엌 그리고 마구(외양간)를 앉혔다. 여기에서 생기는 앞쪽 공간은 마당으로 이곳에서 타작 등 농작업(農作業)을 하며 앞담에서 약간 떨어져 짚가리가 있고 오른쪽 옆 공간에는 연초건조장(煙草乾燥場)이 세워져 있고 사랑 옆 담장 밑에는 화단을 만들고 모란, 국화 등을 심었으며 뒤안 한 구석에는 감나무가 있다.

3) ― 字집

― 字집이란 원채가 있고 ㄱ자로 마구, 통시(변소), 헛간 등 단순한 부속 시설물만으로 구성된 집을 말하기도 하며 부속시설물이 없는 집도 있다.
원채의 구조는 상방, 마루, 안방, 부엌으로 되어 있고 끝에 마구를 달기도 했으며, 또는 상방, 건너방, 안방, 부엌과 끝에 마구가 있고 앞에는 통마루를 둔 집도 있으며 또 장방(長房)인 상방과 다음 건넌방은 반쯤 되고 건넌방 뒤에 도장 또는 골방을 앉히고 그 다음 안방과 부엌, 그리고 마구를 앉혔다.
― 字집은 구조가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2. 내부공간(內部空間)

1) 안 방

  안방은 안주인이 거쳐하는 곳이고 취침공간인 만큼 여성 위주로 꾸민다. 바닥은 1950∼60년대만 해도 경제사정이 좋지않아 부들 또는 골자리를 깔았으나 1970년대 이후부터 장판을 했으며 벽과 천장도 흙벽 그대로 두었으나 현재는 벽지를 하였으며 천장도 종이 마감을 하였다. 아랫목은 안주인의 자리로 부엌쪽으로 조그만 문 또는 벽높이 달린 두짝 벽장문 아래 벽을 등지고 앉는다.
  방 옆면이나 웃목에는 반닫이, 장(欌), 농(籠) 등을 놓고 옷가지를 수장한다.
이불과 요 등의 침구는 반닫이 위에 얹어 놓는다. 반짇고리는 장이나 농 또는 시렁 위에 두었다가 필요할 때 내려쓴다. 또 화로에 항상 인두를 꽂아 바느질을 한다.
  현재는 전기가 들어와 화로가 없어졌으며 전기다리미를 사용한다. 방에도 농을 놓고 이불 등 모든 것을 농 속에 두며 시렁도 없애 버렸다.

2) 마 루

  마루는 대청으로 대체적으로 한칸 반∼2칸 정도의 크기이며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되는 연등천장이다. 앞면은 문짝을 달지 않고 개방되며 안방과 건너방에 출입하는 외짝 문을 양측 벽면에 단다. 마루 한 구석에는 큰 단지를 놓기도 하며, 또 가로로 장대를 보내어 시렁을 만들고 잔치나 제사 때 쓰이는 소반 등을 얹어 두며 제사 때에는 제청(祭廳)으로도 쓰인다.

3) 건넌방

  바닥은 장판지이고 벽과 천장은 종이 마감이다. 이 방은 주로 며느리나 딸이 사용한다. 그럴 경우에는 윗목에 장롱을 놓고 실함, 반짓고리 등을 얹어 두었다.

4) 정 지(부엌)

  부엌의 바닥은 흙바닥이고 벽은 흙벽이며 천장은 대부분 안방에서 쓰는 벽장을 부뚜막 위에 달기 때문에 연등천장으로 마감된다. 부뚜막에는 몇 개의 솥을 걸고 부뚜막 옆벽이나 반대편 벽에 시렁이나 좁은 쪽마루를 달아 그릇이나 찬장을 놓는다.

5) 사랑방

  바닥은 장판이며 벽과 천장도 종이 마감이다. 여유있는 집에는 문갑(文匣)이 있다. 그밖에 재떨이, 담뱃대, 목침(木枕)이 있으며 옷은 횟대에 걸기도 하고 또는 벽에 못을 박고 걸어 두기도 한다.

6) 마 당

  외부공간(外部空間)으로서 일반 서민주택은 단순하게 앞마당 하나로 구성된다. 이곳에는 장독대가 마련되고 여러 개의 장독들을 놓아두고 조리할 때 쓰기 때문에 부엌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부엌과의 거리는 짧아야 하며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장독대를 만든다. 겨울철에는 장독대 앞이나 그 근방에 독을 묵고 김치를 저장한다.
  집안에 혼사, 장례 등 큰 일이 있으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멍석 위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규모가 큰 주택의 경우는 앞마당 외에 뒷마당 등이 있다. 

 
 

3. 구조(構造)

조선시대 군내의 주거는 목조가구식(木造架構式) 구조가 기본이다.

1) 처마
  처마는 일반적으로 홑처마가 주류이나 상류 주택의 사랑채는 부연(浮椽)을 단 겹처마도 있으나 군내에서는 대부분 홑처마이다.

2) 지 붕
  초가집은 대개 우진각지붕이고 기와집은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이다. 예를 들면 본채는 팔작지붕이며 부속채는 맞배지붕이다.

3) 천장(天障, 天井)
  방의 천장은 종이 반자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옛날 가난한 초가집일 경우는 2칸 되는 안방의 경우 기둥높이가 낮아 들보가 낮게 가로지르게 되어 평반자로 꾸밀 수 없기 때문에 경사진 서까래와 서까래 사이면을 종이로 발라 경사진 삿갓반자형을 이루게 된다.
  대청은 서까래와 노출되는 연등천장으로 꾸미며 행랑채도 마찬가지다.
4) 문(門, 窓戶)
  안방, 건너방, 사랑방 등 대부분 문은 격자창(格子窓)이며 특히 사랑채인 경우 격자창 안에 앗자창(亞字窓)이나 완자창(卍字窓)을 곁문으로 달기도 하며 마루 앞면은 창호를 달지 않고 개방되었으며, 마루에서 안방이나 건넌방으로 출입하는 창호는 외짝 지게문을 달았으며, 문간방에는 용(用)자 살창호를 달기도 하였으며 부엌의 부뚜막 위에는 살창을 달아 환기를 원활히 하였다.
  출입은 판장문으로 하였다.
5) 대문(大門)
  초가집이나 기와집인 경우도 삽작에 대문은 없는 편이다. 문간채가 있는 기와집인 경우는 무거운 문짝을 열고 닫기 위해 문지방에 둔테를 대고 대접쇠를 박는다.
  문짝의 아래 위 양끝에 장부를 내어 신쇠를 장부에 신겨 둔테와 장부, 문짝의 닳음을 방지한다. 대문은 평대문으로 두짝의 판장문을 단다. 그리고 빗장을 달기도 한다.

6) 담(墻)

  초가집일 경우 옛날에는 울타리를 둘러치거나 흙과 돌은 섞어 쌓는 흙담(토담:土墻)이었으며, 기와집일 때에도 토담이 대부분이며 그리고 지붕은 짚이나 소나무가지 또는 기와를 덮었다.
7) 굴 뚝
  굴뚝은 흙과 돌로 쌓고 또 판장 네쪽으로 만들기도 하며 옹기를 얹기도 하였다. 이상은 1970년대 이전을 중심으로 대략 서술하였다. 1980년대 이후는 군내 산간 벽지에도 모두 전기가 공급되고 특수 작물의 재배 등 생활이 윤택해지자 주거 환경도 변화를 가져왔다.
  즉, 1990년대부터는 나무 연료에서 석유나 가스로 바뀌어지고 이에 따라 가옥 구조도 옛날 정지(부엌) 등을 과감히 없애고 현대식 입식 주방으로 개조하는 등 큰 변화를 가져와 현재 2천년대에는 사실상 도시나 농·어촌이 주거 문화는 차이가 없다 하겠다.

< 참고 문헌 >

-문화공보부(文化公報部) 문화재(文化財) 관리국(管理局),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경상북도편, 1974.
-서울특별시(特別市), 「서울 건축사(建築史)」, 1999.
-「한옥의 조형」, 대원사, 1999.
-이훈종, 「국학도감」, 일조각, 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