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절 지품면(知品面) ▒ 삼화리(三和里) 삼화리 동명의 유래는 용수(龍水), 관동(官洞), 전여(箭如)의 세 마을을 병합하여 삼화동이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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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천리(午泉里) 오천리 동명의 유래는 오일(午日)의 오(午)자와 김천(金泉)의 천(泉)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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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양리(新陽里) 신양리 동명의 유래는 신기(新基)의 신(新)자와 양원리(陽原里)의 양(陽)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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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눌곡리(訥谷里) 눌곡리 동명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본래 황곡(黃谷)이라 했다는 말이 있는데 황(黃)은 누르실 또는 누리실이라고도 하며, 이 누르실의 한자 표기로 눌곡(訥谷)이라 한 것으로 추측된다. ▒ 용덕리(龍德里) 용덕리 동명의 유래는 구룡기(九龍基)의 용(龍)자와 대덕동(大德洞)의 덕(德)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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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천리(松川里) 송천리 동명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주위에 소나무 숲이 무성하였고 또 옛날 이 마을에 솔가지를 따서 먹(墨)을 제조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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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평리(洛坪里) 낙평리 동명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앞으로 오십천(五十川)이 흘러 들어 수원(水源)이 풍부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추측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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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안리(新安里) 신안리 동명의 유래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신성(新星) 등 몇몇 자연 마을을 합쳐 새롭게 출발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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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곡리(粟谷里) 속곡리 동명의 유래는 속골짜기가 되므로 속골 또는 속동, 속곡이라 하였다. 이 마을은 지세가 높으며, 신안리에서부터 시작되어 무려 30여리에 이르는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 승지(勝地)로 이름이 있는 속곡계곡이 있다. 마을은 17세기초(1620년경)에 옥산장씨가 하속곡을 개척하고, 뒤이어 임씨가 상속곡을 개척한 뒤 18세기(1702년경)에 평산신씨 신문식(申文)이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며, 뒤이어 윤씨(尹氏), 김씨(金氏), 차씨(車氏) 등이 들어 왔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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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전리(栗田里) 율전리 동명의 유래는 밤나무가 많이 있으므로 밤실 또는 율전이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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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계리(道溪里) 도계리 동명의 유래는 이 마을에 복숭아꽃이 많이 피어 도계동(桃溪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도(桃)」자를 「도(道)」자로 바꾸어 도계동(道溪洞)이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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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류리(玉柳里) 옥류리 동명의 유래는 옥같이 맑은 물이 흐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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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애리(信愛里) 신애리 동명의 유래는 믿으면서 사랑하라는 곧 박애(博愛) 정신의 상징적인 뜻이 담긴 이름으로 천주교(天主敎) 등 종교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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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암리(壽岩里) 수암리 동명의 유래는 수곡(壽谷)의 수(壽)자와 대암(臺岩)의 암(岩)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수곡(水谷)으로도 쓴다. 동명은 대암(臺岩) 곧 바위처럼 장수(長壽)하라는 상징적인 의미로써 대암에서 동명이 붙여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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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곡리(洑谷里) 복곡리 동명의 유래는 보(洑)가 있으므로 보골 또는 보곡이라 하였는데 변하여 복곡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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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리(院前里) 원전리 동명의 유래는 조선시대 지품원(知品院)의 앞이 되므로 원앞 또는 원전이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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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품리(知品里) 지품리 동명의 유래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지품부곡이 있었으며, 조선시대 이 마을에 지품원(知品院)이 있었던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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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리(其思里) 기사리 동명의 유래는 옛날 신라(新羅) 말년(未年 935년경)에 신라의 많은 충신들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 대둔산(大遯山) 아래로 들어와 은거(隱居)했으므로 동명을 기사촌(其仕村)이라 했으나 현재는 그것을 생각한다 하여 기사리(其思里)로 고쳐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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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장리(黃腸里) 황장리 동명의 유래는 황장산 밑이 되므로 붙인 이름이다. 이 마을은 16세기 후기(1570년경)인 선조(宣祖) 연간에 남평문씨(南平文氏)가 들어와서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며, 조선 초기에 이곳에서 나는 나무를 나라에서 재목으로 쓰기 위하여 황장봉산으로 봉하였으며, 황정(黃井)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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