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세시(歲時)의 개념(槪念)
세시(歲時)에 대해서 사전에서는 1년 중의 때때, 1년 동안의 제철, 해와 시(時)라고 풀이했으며, 중국 사전에서는 세(歲)는 해(年)를 가리키고 시(時)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시(四時)이며 일월성신(日月星辰)으로서 세시에는 공경히 제사를 지낸다고 풀이하였다. 따라서 세시풍속이란 그 날짜가 되면 연중행사로 되풀이하는 관습(慣習)을 말한다. 옛부터 세시(歲時), 세사(歲事) 또는 월령(月令)·시령(時令) 등으로 표기해 왔다. 어원(語原)을 살펴보면 세(歲)는 연(年)으로서 천체(天體)의 운행(運行)에 따라 생산하는 주기가 있으며 그에 따라 노동사고(勞動思考)를 알려 준다. 시(時)는 시간과 같은 뜻으로 시기를 의미한다. 우리 문화는 농경문화로서 시기(時期)가 계절(季節)이란 말을 쓰고 있으며 사계절(四季節)로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사계절 마다 농경에 있어서 우주자연(宇宙自然)의 이치에 따라야 할 준칙(準則)이 시령(時令)이다. 그러므로 세시풍속을 시령 또는 월령(月令)이라 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조선(祖先)들은 우주 자연을 음(陰)과 양(陽)으로 구분하였고 음양의 주기가 반복하는 변화에 따라 생활에 순응하여 왔다. 달(月)은 음(陰), 해(日)는 양(陽)에 해당되어 이 달과 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相互作用)에서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생성(生成)하고 인간 사회가 이룩된다고 생각하였으며, 여기서 달력(月曆)이 나왔고 이 달력을 통해서 자연의 물리적 시간변화를 인지(認知)하였다. 따라서 세시풍속은 달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옛날에는 1일을 하루해라 하고 1개월을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성(週期性)으로 헤아렸다. 즉 달의 삭망(朔望)과 상하현(上下弦)으로 보아 만들어진 것이 음력이며 여기서 세시풍속이 이루어졌다.
세시풍속에서 다례(茶禮)와 세배(歲拜)에서부터 구세배(舊歲拜)를 하고 사당(祠堂)에 고(告)하고 온 집안을 청소하여 정(淨)하게 한 후, 다시 새해를 맞이하려고 한 우리 선조(先祖)들의 관습(慣習)과 우주자연의 준칙을 경외(敬畏)하는데 따른 정성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보더라도 그 향토(鄕土)의 민중생활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지방의 세시풍속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시풍속은 선조들의 오랜 생활 경험에서 얻어진 지혜의 소산(所産)이며, 또한 그 지방의 소박한 고유신앙(固有信仰)에서 형성되는 경우도 많으므로, 향토인(鄕土人)의 생활이나 의식세계(意識世界)를 알려면 그 지방의 세시 풍속을 보면 된다고 하겠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일찍부터 중앙집권체제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세시풍속도 전파(傳播)작용을 일으켜 그 지역만의 고유한 것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1900년대에 들어와서 일제(日帝)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세시풍속 자체가 겨우 명맥만 유지해 오다가 1945년의 광복 이후에는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1950년의 한국전쟁의 쓰라린 참상이 스쳐간 뒤 서구풍(西歐風)이 물밀듯이 들어와 고래의 세시풍속은 점차 퇴색되어 갔다.
국가에서도 고래의 세시풍속을 전승, 보존하고, 시대에 맞는 세시풍속을 접목하고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3·1절을 비롯한 광복절, 개천절 등 국가적인 경축행사를 실시하였었으나,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농경사회체제에서 산업 및 상공업사회체제로 전환되자 세시풍속도 1950∼60년대의 과도기를 거쳐 현재는 설·추석 이외에는 모두 역사의 한 장으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觀点)을 염두에 두고 지역의 세시풍속에 대하여 살펴보아, 과거 조상들의 지혜를 배우는 한편, 앞으로 이러한 세시풍속들을 전승, 보존해 나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