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건행정

  조선시대 중기의 실학자 지봉(芝峰)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권 17의 인사부(人事部) 수요(壽夭) 편에 의하면 “ …영덕 지역은… 오래 사는 사람이 많아 장수의 고을로 불린다.(江陵安邊盈德伊川人亦多壽號爲壽鄕)”고 하였는데, 과거부터 우리 지역은 장수의 고을로 이름이 났다.
  과거 자연과 개인의 보건위생에 의존하여 건강을 영위한 보건정책과는 달리 국민 혹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보건정책이 행정체계를 갖고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광복 이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행정체계를 갖춘 대표적인 기관이 보건소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의미에서 보건행정이란 대개 보건소를 중심으로 하는 행정행위를 말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보건소를 중심으로 하는 보건행정이 펼쳐진 것은 광복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대개 우리 지역에서 근대적 의미의 의료기관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일제 강점기 이전에도 소위 한의학이란 의학이 발달하여 군내 곳곳에 한약방이 설립되어 군민들의 건강을 지켜왔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당시 영해부에 10명, 영덕현에 5명의 의생이 있어 관원들 및 지역 유지들의 건강을 돌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의학은 특정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군민 전체에 대한 의료체계는 아니었으며, 오늘날과 같이 외과, 내과 등으로 구분된 체계도 아니었으며, 나아가 질병이 발생한 부위에 대한 수술은 엄두도 못 낼 그러한 의료체계였다.
  광복 이후 미군정 당국은 1945년 9월 24일 군정법령 제1호를 공포하여 경찰 소속이던 위생과를 위생국으로 승격시켜 질병의 치료와 함께 질병의 예방에 대한 사업을 펼치기 시작하였는데, 1946년에 서울에 모범보건소를 설치하였으며, 1949년에는 중앙보건소 직제가 공포되면서 점차 보건소를 중심으로 보건행정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1956년 12월 13일 법률 제406호인 「보건소법」이 공포되면서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보건소가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의 법률의 개정과 사정의 변경을 거쳐 보건소가 지방 보건행정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영덕군의 보건소는 1962년도의 각 시군 보건소 설치 조례가 공포되자 이해 5월에 영덕읍 남석리 152번지에서 설립되었으며, 현재의 영덕보건소는 보건교육, 예방의학관리, 퇴행성질환자관리, 방문보건사업, 가족보건, 모자보건 및 각종 질병의 진료사업과 의·약무관리를 주요 업무로 하여 군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 영덕보건소

(1) 연혁
  영덕보건소는 1962년 5월 영덕읍(당시 영덕면) 남석리 152번지에서 연면적 75평으로 설립되어 보건업무를 시작하여 주민의 건강을 돌보아 왔으며, 이후 1973년에 영덕읍 남석리 229번지에 대지 108평, 연면적 73평의 규모로 신축되어 업무를 보았다.
  1976년도에 들어와서 대통령령으로 「보건소법시행령」이 공포되자 군내의 보건소 사업은 정상궤도에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우리 지역의 보건소는 농촌형 보건소의 형태로 질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 전염병에 대한 관리, 모자보건, 영양개선과 식품위생 등을 중점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1985년 4월 30일에는 보건소를 영덕읍 화개 1리 208­1번지로 이전하여 대지 1,271평에 건평 196평의 청사를 신축하였으며, 다음해인 1986년에는 부속건물을 증축하여 명실상부한 보건소가 되었다. 이후 1999년 4월 10일에는 다시 증·개축하여 현재의 규모가 되었다.
(2) 조직 및 보건인력요원
  1999년 현재 영덕보건소의 직제는 보건소장을 정점으로 보건행정담당과 예방의약담당, 진료담당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읍면 조직으로 8개의 보건지소와 13개의 보건진료소가 있다.

2) 군내 보건지소 및 보건진료소

  1998년 12월 31일 현재 군내에는 영덕보건소를 정점으로 하는 8개의 보건지소와 13개의 보건진료소가 있어 지역민들의 보건진료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