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단법인 영덕군장학회(財團法人 盈德郡奬學會)

영덕에서 서울의 각급 대학으로 자녀들을 보내어 교육시키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과중한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1994년 제18대 재경영덕군향우회 회장에 취임한 김남수(金南洙)씨를 중심으로 장학회(奬學會)를 만들어 이들 학생들에게 학자금을 지원하여 인재(人材)를 양성(養成)하는 것이 장차 고향 영덕을 부흥(復興), 발전(發展)시키는 지름길이라는 공감대가 재경 출향인들 사이에 형성되었다.
때마침 1993년부터 영덕신문사가 영덕학사건립의 필요성을 집중보도, 여론에 불을 지피기 시작하였고, 장학재단 설립의 필요성을 일찍이 주창한 당시 재경영덕군향우회장 김남수(낙생고등학교 재단이사장)와 재경지품면향우회장 서분례(徐粉禮: 서일농원, 태국여운공사 대표)가 설립자본금 각각 1억 5천만원씩을 쾌척(快擲), 출연금 3억원을 확보한 후 실무추진위원회를 구성, 임충빈(정관작성 및 법인설립허가), 류춘석(학사부지 물색), 문상순(성금모금 등 분위기 조성), 최종운(여론조성 등), 이동혁(세무 등)을 위원으로 본격적인 재단설립 준비와 영덕학사 건립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 재단법인 영덕군장학회 설립취지문 〉

경상북도(慶尙北道) 동해안(東海岸)의 중심(中心)이요, 천혜(天惠)의 자원(資源)이 풍부(豊富)한 여건(與件)을 갖춘 우리 영덕군(盈德郡)을 보다 발전시키고, 다가오는 미래(未來)에는 더욱 살기좋은 고장으로 가꾸어 나가야 할 커다란 명제하(命題下)에 지역사회(地域社會)와 국가발전(國家發展)의 동량(棟梁)이 될 인재양성(人材養成)의 필요성을 공감(共感)하고 학업성적(學業成績)은 우수(優秀)하나 생활형편(生活形便)이 어렵거나 애향심(愛鄕心)이 강하고 생활의욕(生活意慾)이 왕성한 학생들에게 수학시설(修學施設)의 제공(提供)과 장학금(奬學金)의 지급 등 학업(學業)에 정진(精進)할 수 있도록 장학활동(奬學活動)을 함으로써 장차(將次) 이들이 사회(社會)에 진출(進出)하여 내 고향(故鄕) 영덕군(盈德郡)의 발전은 물론, 민족(民族)과 국가(國家)의 융성창달(隆盛暢達)에 훌륭한 역군(役軍)이 되도록 육성(育成)하기 위하여 재단법인(財團法人) 영덕군장학회(盈德郡奬學會)를 설립하고자 한다.

 

1995년 12월 7일

 

설립발기인(設立發起人)

대 기 표 김 남 수(金南洙)
발 기 인 서 분 례(徐粉禮)
발 기 인 임 충 빈(任忠彬)
발 기 인 류 춘 석(柳春錫)
발 기 인 문 상 순(文相淳)
발 기 인 최 종 운(崔鍾云)
발 기 인 이 동 혁(李東赫)
 
위의 취지(趣旨)를 담은 정관(定款)을 작성, 1996년 2월 6일 재단설립 허가를 얻어 첫사업으로 영덕군내 초중고교 졸업생 35명을 선발, 표창하고 이를 매년 계속하고 있으며, 곧바로 학사건립 실현으로 들어가 1996년 3월 서울의 심장부인 종로구 사직동 311-10, 대지 180평을 매입하였다.
건립계획수립, 건축허가 등을 거쳐 경향 각지의 뜻있는 인사 200여명이 참석하여 1996년 11월 23일 영덕학사(盈德學舍) 기공식을 가졌다.
부족한 경비를 IMF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 조달, 1998년 신학기부터 첫 입시생 26명을 맞이하였고, 그해 6월 20일 학사 준공식 및 개관식을 지역·출향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위와 같은 학사가 건립되기까지 실무자를 비롯하여 재경영덕건우회(盈德建友會) 등, 많은 영덕인들이 헌신·봉사하였고, 영덕군 장학회 이사회도 25차 회의(會議)를 가질 정도로 자랑스러운 장학재단이 되어 타 시·군·구에 모범이 되고 있다.
  영덕학사는 최대 46명을 수용 가능하고, 2인 1실에 침대, 책걸상, 컴퓨터, 취사가 가능한 원룸형이며   보증금 100만원, 월관리비 5만원이고, 영덕 출신으로 인성이 풍부하고 성적이 우수하며, 모범적인 학생은 계속 학사에 기숙이 가능하며, 그동안 100여명의 학생들을 배출하였으며, 매 학기 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입사생(入舍生)을 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