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역대 영해 부사, 영덕 현령, 군수 명단
고래로부터 우리 지역은 중앙정부의 지방제도에 따른 지방행정의 범위에 속하여 있었으며, 오늘날에 와서도 이러한 사정은 대동소이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왕조의 교체와 정권의 부침에 따라 우리 지역의 지방제도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지나간 과거에는 방어사 혹은 부사, 현령 혹은 감무(監務), 그리고 지군사(知郡事) 등의 이름으로 많은 수령들이 이 지역에 부임하여 오고 이임하여 갔다. |
1. 고려와 조선시대의 영해부사 및 영해군수
고려와 조선시대의 영덕현령과 영해부사의 명단인 선생안을 보면 영덕현의 경우에는 고려와 조선시대 초기에는 거의 상고할 자료가 없어 이 시기의 영덕현령의 명단을 찾을 수 없다. 다만 몇몇의 문집 속에 고려시대의 영덕현령의 이름이 보일 뿐이다. |
한편 1896년까지 영해도호부로 동해안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영해부의 영해부사의 명단을 살펴보면 기록된 첫번째 부사인 김수자(金守雌)란 분은 고려 인종(1123∼1146) 때에 영해방어사로 부임한 것으로 나오고 있지만 정확한 부임연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외에도 고려시대에 부임한 영해부사의 명단과 부임연대가 중간 중간에 누락된 것이 많아 정확하게 고증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영해부사의 부임연도는 확인된 것 이외는 기록하지 않기로 하며, 사록(司錄)으로 부임한 우탁(禹倬)의 경우에는 고려시대의 영해부사의 품계에 비추어 보아 불합리한 것으로 판단되나 선인(先人)들이 우탁을 영해부의 선생안에 등재할 때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판단하여 등재하였다. 우탁(1263∼1342)은 1278년에 향공진사로 과거에 급제한 후 바로 영해부의 사록으로 임명받았는데, 우탁이 과거급제할 당시의 나이는 15세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15세에 영해부의 사록으로 와서 창수 인량의 팔령신이란 요괴를 물리치고, 지역에서 유학의 진흥에 힘쓰는 등, 영해부의 방어사를 도와 지역의 풍속교화에 노력하였겠지만 영해부의 선생안에 등재하기에는 다소의 무리가 따른다. 기록에 의하여 확인되는 고려시대 영해부의 방어사 혹은 병마사, 부사 등의 명단은 도합 32명이다.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영해에 부임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에 기록이 없어 고증할 길이 없어 안타깝다. 다만 양촌 권근이 쓴 「사재소감박강전」에 의하면 영해부가 동여진의 공격을 받아 성이 함락된 경우가 있어, 이 때 읍호(邑號)가 낮추어진 때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당시에 사록의 벼슬이 영해의 태수 직임을 맡았을 수도 있다. 한편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1881년 4월에 영해부사로 부임한 이만유(李晩由)가 마지막으로 기록된 영해부의 「선생안(先生案)」이 있어 대략적이나 영해부의 부사들의 부임과 이임연도, 그리고 교체 혹은, 파직의 원인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기록이 없어 「영영승람」의 환적(宦蹟)편을 참고하였다. 또한 갑오경장 때의 지방제도의 개편으로 영해부가 폐지가 되고 영해군이 되었을 때의 영해군수의 명단도 조선시대 영해부사의 선생안에 붙여서 기록하였다. 영해군은 1914년 3월 1일 부·군·현 통폐합 때에 영덕군에 통폐합되었다. |
1) 고려와 조선시대의 영해부사 명단 (寧海府 先生案) |
2. 영덕현령과 일제 강점기의 영덕군수
영덕은 통일신라 이후로는 야성군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 초기에 영덕군으로 고쳐 불리워 진 곳이다. 그러나 현종 9년(1018)부터 예주의 속읍이 되면서 영덕현이 되어 감무 혹은 현령이 수령이 되었다. |
1) 조선시대 영덕현령 명단 |
2) 일제 강점기의 영덕군수 명단
1876년 강제로 이루어진 강화도조약에 따라 한반도에 진출한 일제는 1905년의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조선)의 국권을 능멸하고는 마침내 1910년 8월 29일에 한반도를 그들의 식민지로 삼는 한일병탄을 하였다. 따라서 조선왕조는 27대 519년만에 종언을 고하고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한반도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1) 일제 강점기 아래에서의 영덕군수 명단 |
3) 광복 이후의 영덕군수 명단 광복 이후 1998년 현재까지 영덕에 부임한 영덕군수는 초대 정기모 군수 이래 민선 2기 영덕군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우연 군수에 이르기까지 도합 44대째에 이르고 있다. (1) 광복 이후 1998년 현재 영덕군수 명단 |
4) 영덕 부군수 명단
부군수제는 4공화국시대인 1974년에 종래의 새마을운동을 더욱 심화시키고 실질적인 뒷받침이 될 수 있도록 새마을 관련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새마을과를 새마을담당 부군수제로 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후 1979년에 부군수의 업무중에 새마을 업무를 제외하고 일반 행정 부군수제로 하여 유지하여 오다가 1981년 11월 17일에 일시적으로 폐지되었다가 1985년 12월에 다시 부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음은 1974년 이후 2001년에 이르기까지 영덕군 부군수의 명단이다. (1) 영덕군 부군수 명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