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절 제3공화국시대

 1961년 5.16쿠데타로 제2공화국을 전복시킨 후 정권을 잡은 군부(軍部)의 지도자들은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비상(非常)의 기구를 설치하여 군정을 실시하며 민정이양을 공약하였다. 이에 따라 군부는 민정이양의 제1차 준비작업으로 1962년 12월 17일에 전문과 5장 121조, 그리고 부칙 9조로 된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78.78%의 찬성을 얻어 새로운 헌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따라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3년 9월 5일 후보등록 마감일을 9월 15일로 하고, 제5대 대통령 선거일을 이해 10월 15일자에 실시한다고 공고하였다. 등록마감 결과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와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 이외의 5명의 후보가 등록하여 모두 7명의 대통령 후보가 선전하였다. 선거결과 근소한 표차인 156.026표 차이로 유효투표인의 46.6%의 지지를 얻은 박정희 후보가 2위인 윤보선 후보를 물리치고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제3공화국은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박정희 후보가 1963년 12월 17일에 대통령직에 취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72년 12월 27일 개정된 유신헌법에 따라 박정희가 제8대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까지를 제3공화국시대라고 한다.
 군정기간 및 3공화국 기간 동안 박정희 대통령은 농어촌 고리채정리·농촌부업의 장려 등을 통하여 피폐된 농어촌 경제를 재건하는데 일차적 목표를 두면서, 점차 종합적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경제적 자립을 강력히 추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결과 6.25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각종의 산업시설과 훼손된 농경지 등의 복구가 상당부분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이후 지속적인 경제개발계획으로 산업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을 닦게 되었다.

  제3공화국시대에는 국민투표가 2회 있었으며, 대통령 선거가 3회 있었다.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가 3회 있었는데, 이 중에서 국민 전체의 의사를 묻는 국민투표에 대한 결과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민들이 참여한 선거결과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5·6·7대 대통령 선거결과는 표 <4-21·22·23>과 같다. 또 제6·7·8대 국회의원 선거결과는 표 <4-24·25·26>과 같다.
  1963년 11월 26일에 실시된 제6대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김중한 후보와 박종길 후보 이외에 3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소속의 김중한 후보가 18,674표를 얻어

차점자인 자유민주당 소속의 박종길 후보를 2,546표차로 누르고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67년 6월 8일에 실시된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소속의 문태준 후보와 민주당 소속의 박종길 후보 이외에 2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문태준 후보가 39,506표를 얻어 차점자인 박종길 후보를 11,451표차로 누르고 제7대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한편 1971년 5월 25일에 실시된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문태준 후보와 황병우 후보 이외에 2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소속의 문태준 후보가 46,375표를 얻어 차점자인 신민당의 황병우 후보를 25,559표차로 누르고 2선 의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