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절 달산면(達山面)

▒ 대지리(大枝里)

  대지리 동명의 유래는 대서천이 흐르는 가에 이루어진 큰들이므로 갓들, 가지골(大枝洞, 枝洞)이라 했으며 또 주위 산세가 아름다워 가질(佳質), 가지(佳), 가지(嘉芝)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가질 마을은 15세기초 평산신씨(平山申氏)가 마을을 개척하여 정착하였으며 16세기 초에는 영천이씨(永川李氏)가 입주 두 성씨가 마을을 발전시켜 왔다고 하며, 재곡 마을은 16세기초에 진씨(陳氏), 안씨(安氏)가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盈德縣) 서면(西面) 지역에 소속되어 가지골, 갓질, 또는 지동, 대지 등으로 불렀으며 갑오경장(甲午更張) 뒤인 1895년 5월 26일 칙령(勅令) 제98호로 종전의 현을 군(郡)으로 개칭할 때 대지리는 영덕군에 속했으며 그 뒤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가 총독부령(總督府令) 제111호로 전국의 행정구역을 폐합할 때, 상대동, 하대동과 재궁동, 중평동의 각 일부와 북면(北面)의 식률동 일부를 병합하여 대지동이라 하고 달산면에 편입시켰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군조례(郡條例) 제972호로 동(洞)을 리(里)로 개칭할 때 대지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행정동으로는 대지1리와 2리로 분동되어 있다.
  대지리의 위치는 동은 동대산(東大山)의 지맥을 따라 강구면과 경계하고 서는 인곡리, 남은 용평리, 북은 지품면 신양리와 면 경계를 이루고 있다.

 
 
거랫마 :
불밋골 옆에 있는 마을임.
 
소-매기(소도기, 웅골, 소모기) :
가질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써 골이 좁으며 소를 많이 길렀다고 함.
 
아릿-마(하대) :
가질 아랫쪽에 있는 마을임.
 
양지말 :
가질 북쪽 양지쪽에 있는 마을임.
 
웃마(상대) :
가질 윗쪽에 있는 마을임.
 
음지말(음지움말) :
쟁골 남쪽 음지쪽에 있는 마을임.
 
쟁골(재궁동, 재곡) :
소매기 남쪽에 옛날 재궁이 있는데서 붙여진 마을임.

         

▒ 용평리(龍坪里)

  용평리 동명의 유래는 용천동(龍泉洞)의 용(龍)자와 중평동(中坪洞)의 평(坪)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15세기 중기인 세종(世宗) 연간에 죽산(竹山)안씨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며, 당시 마을 앞에 폭포가 있었는데 폭포가 깊고 물이 맑아 용이 물을 먹었다 하여 마을 이름을 용천이라 했다 한다. 중평리는 약 4백여년전 한 선비가 마을을 개척했다 하며 마을이 벌판 가운데 형성되었다 하여 중평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서면(西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전국의 행정구역을 폐합할 때 용천동과 중평동을 병합하여 용평동이라 하고 달산면에 편입되었으며 그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때 용평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평리의 위치는 동은 대서천(大西川)을 경계로 흥기리가 있고, 서는 큰재 넘어 용전리가 있고, 남은 매일리, 북은 대지리가 있다.

 

 
물방아골 :
옛날 물레방아가 있었던 관계로 붙여진 이름임.
 
사항곡(砂抗谷) :
옛날 금과 은을 채굴하였다고 함.
 
용천리(龍泉里) :
용평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임.
 
장자(丈子)골 :
용천마을에서 서북향쪽의 산 위에 위치한 평지에
옛날 장자가 살았다 함.
 
절골(寺谷) :
지금부터 약 4백여년전 이곳에 절이 있었다 함.
 
중평리(中坪里) :
용천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임.
 

▒ 매일리(梅日里)

  매일리 동명의 유래는 매화리(梅花里)의 매(梅)자와 일이곡(日伊谷)의 일(日)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일1리는 14세기경에 야성군(野城君) 윤혁(尹赫)이 개척하였다고 하는데 현재의 마을 서남쪽 산 아래에 있었는데서 마을 이름을 뫼하리, 변하여 매화리, 또는 산하동(山下洞)으로 불렀다고 하며, 현재의 마을은 16세기초인 중종(中宗) 때 안동권씨가 개척하였다고 한다.
매화2리인 일이곡과 서점(西店) 마을은 정조(正祖) 연간인 18세기 후반기에 밀양박씨가 개척했다고 하며, 그 뒤 인동장씨가 들어 왔고 다시 노씨(魯氏)가 들어와 노동(魯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서면(西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4월 1일자로 일제(日帝)가 전국의 행정구역을 자의로 통폐합을 단행할 때 매화동, 일이동, 서점동을 병합하여 매일동이라 하고 달산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매일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행정동으로는 매일1, 2리로 분동되어 있다.
  매일리의 위치는 동은 대서천(大西川)을 사이에 두고 흥기리와 연해 있고, 서는 덕산리, 남은 주응리, 북은 용평리가 있다.

 

 
매화리(梅花里) :
매일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산하동(山下洞) 또는 상하동이라고도 함.
 
서점동(西店洞) :
매화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서점광산이 있었으며 이 광산은 처음에는 은이 났으나 1960년대에는 아연을 주로 채광하였음.
 
일이동(日伊洞) :
서점동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해가 먼저 뜬다고 하여 일이곡(日伊谷) 또는 노동(魯洞) 이라고도 함.

         

▒ 흥기리(興基里)

  흥기리 동명의 유래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글자의 뜻을 보아 터가 일어난다. 곧 마을이 번창해 달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인 것 같다.
  흥기1리인 광산 마을은 16세기 중기인 중종(中宗) 연간(1541년경)에 악계예씨(岳溪芮氏)가 들어와 마을 앞과 뒷산이 광활하여 광산(廣山)이라 불러오다가 그 뒤 17세기 중기인 숙종(肅宗) 연간(1647년경)에 영천이씨(永川李氏)가 들어와서 양지쪽에 살면서 양지광산이라 하였고, 그 뒤 18세기말인 정조(正祖) 연간(1796년경) 경주최씨(慶州崔氏)가 들어와서 음지에 정착하여 음지광산이라 했다 한다.
  흥기2리인 오봉(五峰) 마을은 16세기 중기인 명종(明宗) 연간(1550년경)에 안동권씨가 마을을 개척하고 마을 뒷산이 다섯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어 마을 이름을 오봉동이라 하였다 한다.
  흥기3리인 궁터(宮基) 마을은 어느 때인가 최씨(崔氏)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서면(西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광산동, 오봉동, 궁기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흥기동이라 해서 달산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흥기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행정동으로는 흥기1, 2, 3리로 분동되어 있다.
  흥기리의 위치는 동은 강구면과 남정면과의 면계(面界)를 이루는 삿갓봉이 있으며 서는 용평리, 매일리, 옥산리가 있으며 남은 애목재를 넘어 남정면 사암리, 중화리가 있으며 북은 대서천(大西川) 건너 대지리가 있다.

 
 
광산이(光山洞) :
오봉동 북쪽에 있는 마을임.
 
궁터(宮基洞) :
흥기리의 으뜸되는 마을로 신라 중엽 중국사람 주도(周鍍)가 망한 주(周)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하여 모의하다가 탄로가 나서 부하들을 거느리고 도주하던 중 이곳에 머물러 궁(宮)도 짓고 진(陣)을 치고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양지 광산이 :
광산이 양지쪽에 있는 마을임.
 
오봉동(五峰洞) :
궁터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오봉산 밑이 됨.
 
음지광산이 :
광산이 음지쪽에 있는 마을임.

         

▒ 주응리(周應里)

  주응리 동명의 유래는 주방동(周坊洞)의 주(周)자와 중응동(中應洞)의 응(應)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응1리인 주방 마을은 10세기 중기인 고려(高麗) 광종(光宗) 연간(959년경)에 엄귀달(嚴貴達)이라는 분이 마을에 정착하였으며 그 뒤 윤재복(尹在福)이라는 분이 들어와 마을 지형이 배(舟)의 형국과 같다 하여 주방(舟坊)이라 하였는데 이영오(李永五)란 분이 주위가 두루하다 하여 주방(周坊)이라 했다 한다.
  주응2리인 응암(鷹岩,梅坊,梅岩) 마을은 17세기 중기인 효종(孝宗) 연간(1659년경) 박씨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그 뒤 이씨, 윤씨가 차례로 들어왔다 하며, 마을 뒷산이 매(鷹)의 형국이라 하여 응암 또는 매암, 매방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서면(西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주방동, 상응동(上應洞), 중응동을 병합하여 주응동이라 하고 달산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주응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행정동으로 주응1, 2리로 분동되어 있다.
  주응리의 위치는 동은 흥기리, 옥산리 서는 봉산리, 남은 옥산리, 북은 매일리가 있다.

 
 
가두둑 :
매방 남쪽에 있는 마을임.
 
매   방 :
주응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임.

         

▒ 옥산리(玉山里)

  옥산리 동명의 유래는 하옥(下玉)의 옥(玉)자와 상마산(上馬山)의 산(山)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옥산1리는 16세기 중기인 명종(明宗) 연간에 엄씨(嚴氏)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며 그 뒤 인동장씨(仁同張氏)가 들어왔으며, 옥산2리는 17세기 전기인 선조(宣祖) 연간에 엄씨가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며, 옥산3리는 15세기 중기인 세종(世宗) 연간에 달성서씨(達城徐氏)가 정착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서면(西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마산, 하마산, 수구동, 궁기동 일부와 청하군(淸下郡) 죽북면(竹北面)의 하옥리 일부를 병합하여 옥산리라 하여 달산면에 편입되었으며, 그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옥산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행정동으로는 옥산1리, 2리, 3리로 분동되어 있다.
옥산리의 위치는 동은 바데산(해발646m) 남정면 서는 봉산리와 청송군 부동면과 군계(郡界)를 이루고 남은 옥계리와 남정면, 북은 주응리가 있다.

 
 
도정이(도징이) :
바들기 동쪽에 있는 마을임.
 
마산(馬山) :
옥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역마산(驛馬山 해발285m) 있음.
 
바들기(海月里) :
수구만(水口滿) 남쪽에 있는 마을임.
 
수구동(水口洞, 水口滿, 물골) :
웃마산 남쪽에 있는 마을임.
 
아래마산(下馬山, 下馬洞) :
마산 아랫쪽에 있는 마을임.
 
웃마산(上馬山) :
마산 윗쪽에 있는 마을임.

         

▒ 인곡리(仁谷里)

  인곡리 동명의 유래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이 마을에서 문장과 인품을 겸비한 어진 선비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하여 인곡리라 했다고 한다.
  이 마을은 17세기 후기인 숙종(肅宗) 연간에 황씨(黃氏)라는 분이 까마귀를 따라 가던 중 현재 오소곡(烏巢谷)에 까마귀가 내려앉으므로 이 곳에 정착하여 까마귀가 내려앉은 마을이라 하여 하오동(下烏洞)이라 이름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서면(西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오동, 하오동, 상오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인곡동이라 해서 달산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洞)을 리(里)로 개칭할 때 인곡리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 마을의 위치는 동은 대지리(大枝里)와 동계(洞界)를 이루는 시루봉이 있으며, 서는 용솟음봉이 있으며, 남은 용전리(龍田里), 북은 지품면 용덕리(龍德里)와 면계(面界)를 이루고 있다.

 

 
봇둑마을(새마을) :
차상오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보가 있음.
 
상오동(上烏洞) :
오동(烏洞) 윗쪽에 있는 마을임.
 
양지하오동(陽地下烏洞) :
음지하오동 북쪽에 있는 마을임.
 
오동(烏洞) :
인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임.
 
음지하오동(陰地下烏洞, 中烏洞) :
잔디 마을 동북쪽에 있는 마을임.
 
잔디마을(次上烏洞) :
상오동 위쪽에 있는 마을로 잔디가 많음.
 
하오동(下烏洞) :
인곡 동북쪽에 있는 마을임.
 

▒ 용전리(龍田里)

  용전리 동명의 유래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때(1592년) 중국 명(明)나라에서 원병(援兵)왔던 이여송(李如松)이 갓바위 골 입구 보골양지라는 산등선에서 갓바위골까지 칼등같이 생긴 능선을 칼로 치자 그 곳에서 나온 용마(龍馬)가 하입암(下笠岩) 들로 내려 갔다 하여 그 들을 용두전(龍頭田)이라 하고 그 뒤 동명을 용전(龍田)이라 했다 한다.
  이 마을은 15세기 중기인 세종(世宗) 연간(1455년경)에 심씨(沈氏)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하고 마을 뒤의 산이 삿갓 모양과 같다 하여 입암(笠岩)이라 명했다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서면(西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입동, 하입동, 상모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용전동이라 하고 달산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용전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전리의 위치는 동은 장자봉(丈子峰)을 넘어 용평리와 연하고, 서는 대둔산(大遁山) 지맥인 관암(冠岩)이 솟아있고, 남은 덕산리, 북은 돌감(시)산(乭枾山)을 경계하여 지품면 용덕리가 있다.

 

 
갓바웃골 :
용전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뒷산에 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음.
 
아래입암(下笠岩) :
입암 아래쪽에 있는 마을임.
 
웃입암(上笠岩) :
입암 위쪽에 있는 마을임.

         

▒ 덕산리(德山里)

  덕산리 동명의 유래는 덕갈산(德葛山) 아래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덕산1리는 15세기 중기인 문종(文宗) 연간에 반남박씨(潘南朴氏)가 들어와서 개척하였다고 하며, 덕산2리는 16세기초인 중종(中宗)초에 안동권씨가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그 뒤 유씨(劉氏)가 들어왔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서면(西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덕동(上德洞), 하덕동(下德洞)을 병합하여 덕산동이라 하여 달산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洞)을 리(里)로 개칭할 때 덕산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행정동으로는 덕산1, 2리로 분동되어 있다.
  덕산리의 위치는 동은 매일리, 서는 봉산리와 청송군과 군경계를 이루며, 남은 주응리, 북은 지품면과 면경계를 이루고 있다.

 
 
덕거리 :
청련리 북쪽에 있는 마을임.
 
음지덕거리 :
덕거리 음지쪽에 있는 마을임.
 
청련리(靑蓮里) :
신선대(神仙臺) 서쪽 청련사(靑蓮寺)가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임.
 
하덕동(下德洞) :
덕거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임.

         

▒ 봉산리(鳳山里)

  봉산리 동명의 유래는 봉동(鳳洞)의 봉(鳳)자와 주산동(周山洞)의 산(山)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16세기초에 울진임씨(蔚珍林氏)가 마을을 개척했다 하며, 그 뒤 함안조씨(咸安趙氏)가 입주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서면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일제가 자의로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 할 때 봉전동과 주산동 산성(山城), 굴암(窟岩)을 병합하여 달산면에 편입하였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봉산리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봉산리의 위치는 동은 주응리, 서는 청송군 부동면 주왕산 국립공원, 남은 부동면 항리와 군계(郡界)를 이루고, 북은 지품면과 면경계를 이루고 있다.

 

 
굴-바우(窟岩) :
주산 서쪽에 있는 마을로 굴이 뚫린 바위가 있음.
 
봉동(鳳洞) :
봉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일명 봉전동이라고도 한다.
 
주산이(周山) :
봉동 남서쪽에 있는 마을임.

         

▒ 옥계리(玉溪里)

  옥계리 동명의 유래는 옥 같은 맑은 물이 흐르므로 붙여진 이름인데, 경치 좋기로 유명한 마을이다.
  조선시대에는 경주부(慶州府) 소속 죽장면(竹長面)이었는데 갑오경장(甲午更張) 뒤인 1895년(高宗 32면) 5월 26일 칙령(勅令) 제98호로 지방관제 제정 때, 청하군(淸河郡) 죽북면(竹北面) 지역에 속하여 옥계의 아래쪽이 되므로 아릿옥계, 하옥계, 하옥리라 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가 조선총독부령 제111호로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 할 때, 중옥리를 병합하여 하옥리라 하고 영일군(迎日郡) 죽남면(竹南面)에 편입시켰다. 1934년 4월 1일 죽장면(竹長面)에 편입되어 오다가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大統領令) 제11027호로 죽장면 하옥리(下玉里) 일부인 현 옥계를 본 군(本郡) 달산면에 편입시켰으며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옥계리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 마을의 위치는 동은 동대산(東大山), 지봉(支峰)인 학소대(鶴巢臺)와 옥산리, 서는 청송군 부동면(府東面) 항리(項里)와 군계(郡界)를 이루고, 남은 포항시 죽장면 하옥리 동대산과 경계를 이루고, 북은 팔각산과 주응리가 있다.
  이 마을은 14세기말인 정종(定宗 1398년경) 연간에 지덕(智德)을 겸비한 노씨(盧氏)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하며 흐르는 냇물이 옥 같이 맑아 옥계라고 명명했다 한다.

 
 
도등기(도딩기) :
배지미 서북쪽에 있는 마을임.
 
딧터(後基 : 뒷터) :
배지미 동쪽에 있는 마을임.

 
마두밭(馬頭田) :
배지미 서남쪽에 있는 마을임.
 
마수리(馬首里) :
배지미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형상이 말의 머리같이 생겼음.
 
배지미(양령리) :
하옥리 양지쪽에 있는 마을임.
 
상마두밭(上馬頭田) :
마두밭 위에 있는 마을임.
 
새터(新基) :
배지미 북쪽에 있는 마을임.
 
아릿마두밭 :
마두밭 아래쪽에 있는 마을임.
 
아릿배지미 :
상배지미 북쪽에 있는 마을임.
 
옥계(玉溪) :
옥녀암(玉女岩) : 배지미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산수가 수려함.
 
옥녀암(玉女岩) :
배지미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산수가 수려함.
 
원단(원담 : 左墻) :
배지미 북쪽에 있는 마을임.
 
윗배지미(상배지미) :
배지미 위쪽에 있는 마을임.
 
하마두밭(下馬頭田) :
마두밭 아래에 있는 마을임.
 
화인동(花仁洞 : 화린터) :
배지미 동남쪽에 있는 마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