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신(地神)밟기

  지신밟기는 영덕 지방을 비롯한 영남 일대에 전승(傳承)되어 오는 민간 신앙의식(信仰儀式)의 일종이다.
  이 놀이는 명절 기분이 나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 보통 행해진다. 이 때는 1년 중 농가는 가장 한가한 때로 할 일은 없고 마음속으로 새해에는 풍년을 기대하며 복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때이다.
  흥겹게 농악을 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든다. 사대부(士大夫)와 포수(砲手)를 가장하는 사람도 있고 중과 색시를 가장하는 사람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농악대 곧 지신 밟기꾼들의 뒤를 따르며 마을 큰집이나 부자집 또는 작년에 특히 풍작(豊作)을 이룬 집을 찾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지신밟기는 이름 그대로 지신(地神)을 위로하고 축제초복(逐災招福)을 목적으로 하는 놀이이므로, 축원(祝願)을 하면서 오신(娛神)으로 흥겹게 춤추고 노래부르며 때로는 극적(劇的)인 장면도 벌어져 관중을 웃기기도 한다. 농자천하지대본< 農者天下之大本>이라 쓴 농기를 앞세우고 농악대들이 마당으로 들어오면 주인이 나와 맞이한다.
  지신밟기는 집안에 있는 여러 지신을 차례로 위로해서 진압(鎭壓)하고 잡귀(雜鬼), 잡신(雜神)을 몰아내는 것이다.
  마당지신·부엌지신·대문지신·우물지신·장독지신·광지신·뒷간지신·축창지신(畜倉地神) 등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지신을 밟는다. 이 때에 각 지신에 알맞는 노래를 부르는데 이것이 지신밟기 노래이다.
  이렇게 지신을 위로하고 진압하면 연중 탈이 없으며 복이 들어온다고 생각하여 지신밟아 주는 것을 고맙게 여기고 농악대들에게 술과 전곡(錢穀)을 주며 마을 사람들은 이 금품을 모아 마을 기금(基金)으로 해서 마을 공동사업에 보태어 쓴다.
  편성과 복색을 보면
  농기잽이는 바지저고리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쓴다.
  상쇠는 흰 바지저고리에 빨강, 파랑, 노란색 등 삼색띠를 두르고 흰색, 파란색, 붉은색으로 된 다섯개의 꽃이 달린 고깔을 쓴다.
  중쇠·종쇠는 바지저고리에 삼색띠를 두르고 고깔을 쓴다.
  징수는 바지저고리에 삼색띠를 두리고 머리에 고깔을 쓰며 징채 앞에는 오색띠를 단다.
  대북·장구는 바지저고리에 삼색띠를 두르고 머리에는 고깔을 쓴다.
  법고는 바지저고리에 삼색띠를 두른다. 상모놀이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전립을 쓰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고깔을 쓴다.
  사대부는 흰 도포를 입고 “사대부(士大夫)”라 씌어진 관을 쓴다. 입에는 담뱃대를 물고 손에는 접는 부채를 든다.
  색시는 노랑저고리에 빨강치마를 입고 고깔과 종이로 만든 탈을 쓴다. 중은 붉은가사에 염주를 들고 바랑을 짊어진다.
  포수는 머리에 모자를 쓰고 구질구질한 양복을 입는데, 바지는 다리종아리쪽 폭이 좁은 옷을 입으며 총을 어깨에 매고 망태에다 꿩을 달고 짊어진다.
  지신밟기의 순서는 먼저 마을 제당(祭堂)에 가서 고(告)한 다음 대문 앞에서 장단을 몹시 치며 주인이 나와 안내할 때까지 문(門)굿을 한다. 이어 마당놀이가 시작되며 한바탕 군무(群舞)가 시작된다. 이때 주인은 대청에 제물을 차린다. 대청 지신풀이와 함께 성주풀이를 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조왕 지신풀이를 한다. < 어 ∼화 지신아 조왕지신 누르세>에서 시작하여 끝에는 < 잡귀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다음 우물 지신풀이에서도 < 어∼화 지신아 용왕지신 누르세> 하면 꽹과리 북 등 장단이 울린다. 이어 < 동방청제 용왕님 남방적제 용왕님> 하면 또 장단이 울리고 이어 < 서방백제 용왕님 물이나 철철 실어 주소>하면 장단이 울리고 끝에는 < 잡귀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하면 장단에 맞추어 땅을 밟으며 돈 다음, 장독지신풀이, 도장(곳간), 마굿간, 뒷간, 삽짝(대문) 지신풀이를 한다.

2.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풍년을 기원하고 운수를 점치는 공감주술(共感呪術)의 하나로 옛부터 농경의식(農耕儀式)으로 연중행사처럼 행해져 왔다. 이 놀이는 보통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거행된다. 농경민족들은 연초(年初)가 되면 1년 동안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관습이 있다. 즉, 줄은 암줄과 숫줄이 있으며,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암줄은 여성으로서 풍요다산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생산의 최종 담당자인 여성(암줄)이 이김으로써 풍년이 올 수 있다는 해석이다.
  줄다리기는 한 마을이 두 패로 편을 짜는데 즉, 행정구역상으로 1리와 2리로 하는 경우가 있으며, 또는 동서(東西)나 남북(南北)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참가 인원수는 제한하지도 않고 같은 수로 하지도 않는 곧 많던 적던 상관하지 않는다. 서로 자기네 편이 많이 모이도록 참여를 권하며 마을 사람들은 협동심이 우러나 너도나도 참여한다. 운영이 어떻든 자율(自律)과 협동에 맡긴다. 대부분 마을 이장(里長)이 대표가 되지만 유지(有志)를 선발해서 추진회의 대표를 맡도록 한다. 대표는 이 행사의 운영을 책임지고 진행시킨다.
  줄을 만들기 위해 개개인이 짚단을 가지고 와서 공동작업을 한다. 줄을 다 만들면 두개의 줄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한다. 줄은 암줄과 숫줄을 미리 알고 만들게 되는데 1리와 2리가 협약에 의해서 결정한다.
  두 줄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줄머리에 고리를 만드는데 숫줄을 암줄 속에 넣어야 하기 때문에 숫줄은 작고 암줄은 크게 만든다. 그러나 숫줄이 암줄 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일부러 크게 만들어서 암줄편을 당황케 하기도 한다. 암줄안에 숫줄이 들어가지 못하면 암줄의 수치이기 때문에 암줄편은 고리를 다시 크게 만들기도 한다. 줄을 만들 때에는 여인의 접근을 금지시킨다. 만약 여인이 줄 건너가면 시합할 때 줄이 끊어진다고 믿고 있다.
  줄다리기의 신호(信號)는 징을 쳐서 시작을 알린다. 신호가 울리면 서로 힘을 주어 잡아당긴다. 대장은 줄 위에 올라타고 지휘하며 지시에 따라 농악대들이 응원하고 깃발을 휘두른다. 줄다리기는 힘을 모아 일시에 당기기 때문에 전체의 호흡을 맞추기 위하여 깃발로 신호한다. 줄은 힘이 센 쪽이 이기기 때문에 만약 기우는 조짐이 보이면 처음에는 구경하던 노인들도 부녀자들도 줄에 매달린다. 인간의 성벽(性癖)이 작용한 셈이다. 줄을 끌어가지 못하도록 온 힘을 다하다가 역부족으로 상대편에게 끌려가게 되면 대장은 줄을 땅에 놓으라는 신호를 한다. 신호에 따라 줄을 깔고 그 위에 사람들이 앉아 있으면 여간 힘으로 끌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작전상 까는 수도 있는데, 깔고 앉아서 상대편의 힘을 빼게 하고 자기네는 그 동안 휴식을 취하는 셈이 된다.
  그러다가 상대편의 허점이 보이면 갑자기 잡아당겨 승부를 내는 수도 있기 때문에 대장은 늘 상황을 살피고 판단을 잘 해서 지휘해야 한다. 중앙선에서 많이 끌려간 편이 지는(敗) 것이다. 이긴 편은 농악을 요란스럽게 울리고 기쁨에 넘쳐 춤추지만 진편에서는 기가 죽어 허탈하게 앉아서 춤추는 모습을 보기도하고 함께 춤추고 놀기도 한다.
  줄은 마을 입구 액맥이돌(防厄石)이나 신목(神木)에 감아두기도 하고 또는 썰어서 논에 거름으로 넣으면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어 서로 가지고 가는 일도 있으며 어부(漁夫)들도 이 줄을 가지고 출어(出漁)하면 만선(滿船)을 하고 풍파도 만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긴 편의 줄을 한토막 얻어 가기도 한다. 따라서 줄에도 주술성(呪術性)이 있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3. 월월이 청청

이 놀이는 영덕을 중심으로 남으로는 영일, 북으로는 후포(厚浦)까지 분포되었으며,1930년대까지 성행하였으나 1940년대인 일제 말기에 거의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잠시 부활하였으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연히 쇠퇴하여 사라질 위기에 있었는데 1981년에 영덕여자고등학교에서 발굴작업에 착수하여, 단편적인 춤과 놀이를 원형(元型)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안무(按舞)하여 하나로 엮었으며 또 새로 발굴된 형태를 첨가하고 기능보유자의 고증을 거쳐 재구성하여 현재 본 여고에서 공연하고 있다. 현재 공연하고 있는 이 놀이의 대형 동작 등 형식은 당시 신후자 교사가 재구성한 것이며, 노래는 윤영배 교사가 채보한 것을 아래에 전재(全載)한다.
  앞소리꾼이 노래(토연노래)를 하면 사람들이 모여든다. 모여든 사람들은 양손을 잡고 원형이 되며 원주상으로 가벼운 발딛음을 하며 손을 흔들고 뒷소리를 부르며 돌아간다.
  대형은 행렬무(行列舞), 원무(圓舞)로 하며 동작은 대열형 two step(빠른 외발겹쳐뛰기?)으로 전진하며 입장한다.
  노래 가락은 중중모리, 자진모리 가락이다.

(앞소리)
토연 토연 김토연아
수·별감 딸 볼라고
열두 담장 때 넘다가
서른 서치 큰 꽤자를
서치 닷푼 째였구나
꼬치 같은 우리댁이
물기나 자주하면
기 뭐라고 대답할꼬
선부 선부 서울선부
그만으간 없을쏘냐
서름시칸 담띠넘다
서른 석자 큰 꽤자를 뜨렸네
동산 치치달에
부대 끝에 쨌다캇소
그 말 전해 안 듣거든
돌아오소 돌아오소
어화 심지 불 밝혀라
무명치 곧은 실로
무길없이 새겨줌새

한 구절의 앞소리가 끝나면 뒷소리는 월월이청청을 부른다.

● 달람새
  월월이청청을 하면서 부수적으로 연희한 노래춤으로서 「달넘기」라고도 한다.
가락은 자진모리이며, 대형은 원주상 행렬무이며, 동작은 손잡기, 뛰어넘기, 빠른 걸음의 외발 겹쳐뛰기 등이다. 전원 손잡고 빠른 걸음의 외발겹쳐 뛰기로 원형이 되면서 노래하고 춤춘다. 어느 정도 돌아가다가 선도자는 둘째, 세째, 네째사람, 이러한 순서로 놀이꾼 전원의 주변을 돌아가는 원무를 전개한다.
  선도자가 일어서서 시계침 돌아가는 반대방향(L.O.D)으로 빠른 걸음의 외발겹쳐뛰기를 하면서 둘째, 셋째 사람의 손사이로 뛰어 둘째사람은 일어서서 선도자를 따른다.
  이런 형식으로 셋째, 네째, 다섯째 사람 등 주변을 돌아감으로서 원이 점점 넓혀지는데, 이렇게 하여 결국은 선도자가 마지막 사람 주변을 돈다. 원심을 보고 시계침 반대 방향(L.O.D)으로 돌면서 선도자는 합쳐질 때까지 원무를 계속한다.

< 달람새 소리>

달람새 달람새
다리나 쿵쿵 달람새
니가 무슨 반달이고
초승달이 반달이지
달람새 달람새
다리나 쿵쿵 달람새
니가 무슨 온달이고
보름달이 온달이지
달람새 달람새
다리나 쿵쿵 달람새
앞소리 한구절마다 뒷소리로 월월이 청청을 부른다.

 
 

● 절구새

  월월이청청을 하면서 부수적으로 연희하는 대립형 이열 무용으로 삼진삼퇴(三進三退)하는 군사적 놀이이다.
가락은 자진모리 장단이며, 대형은 대립형 이열무이며 동작은 손잡고 느린 외발뛰기, 삼진삼퇴 등이다.
  두 조로 나누어 횡대로 서서 상대편과 마주 보고 선다. 옆사람과 양손잡고 느린 걸음의 외발뛰기로 발을 교체해 가면서 1조는 앞으로 전진과 2조는 뒤로 삼진삼퇴하고 다음 1조가 후퇴하고 2조가 전진(三進三退)하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춤춘다.

< 절구새 소리>

절구세 절구세
유지나 장판에 절구세
들깨 참깨가 오지나
피마자 콩이가 오지지
절구세 절구세
어화산에 절구세

● 대문열기

  월월이청청 놀이에 수반하여 노는 노래놀이의 일종이다.
  가락은 자진모리 장단이며, 대형은 일렬대형이며, 동작은 허리잡기, 발딛음, 문만들기이다. 두 사람의 놀이꾼이 서로 마주 보고 양손을 잡고 높이 쳐들어 대문과 같은 형태를 짓는다. 일렬로 늘어선 놀이꾼들은 앞사람의 허리를 붙들고 두 사람이 만든 대문을 통과하는데 이때 대문 잡는 놀이꾼과 문답소리를 한다.
  노래를 부르며 굽이치고 돌아오면 꼬리에 붙은 사람은 하나씩 떼어낸다.

< 대문열기 소리>

서울이라 남적산아
대문 조금 열어 주소
대문이야 있소마는
치마 끝에 열대차고
덜컹 덜컹 열어주소
덜컹 덜컹 들어간다.

● 송아지 떼기

대문열기, 재밟기, 대문열기 같은 놀이와 같이 하면서 노는 노래놀이다.
가락은 자진모리 장단이며 대형은 일렬종대형이며, 동작은 허리잡기이다.
놀이꾼 전원이 앞사람의 허리를 붙들고 늘어서 있으면 선도자는 이들을 향해 서 있다.
선도자는 송아지떼기 소리를 부르면서 한 사람씩 떼어낸다.
이때 잡아 떼인 사람은 좌우로 갈라져서 일렬횡대로 나가 앉는다.

< 송아지떼기 소리>

이동해가 누동핸고
나라님의 옥동핼세
동해값이 얼매던고
은도다래 열에엿냥
지값이사 다지했네

● 재밟기

가락은 중중모리 장단이며 대형은 일렬종대형이며 동작은 손잡기 허리 굽히기 발딛음이다. 놀이꾼들은 일렬종대로 서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허리를 굽혀 앞사람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는다.
뒤에 서 있는 세사람 중 한 사람은 허리를 굽혀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있는 사람의 등으로 올라가 양쪽에 서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균형을 잡는다. 세사람은 앞으로 가면 다른 놀이꾼처럼 허리를 굽혀 앞사람의 허리를 잡는다. 세 사람의 행동을 뒤에 있는 세사람이 계속한다. 이렇게 하여 놀이꾼 전원이 등타기를 하면 놀이가 끝난다.

< 재밟기 소리>

이재가 저재가 누잴런고
우르나라 옥잴래라
이 재값이 얼맨고
은도다래 열에닷냥
서른냥이 지값이라

  이 놀이는 3, 6, 10월 노물리(老勿里) 동제(洞祭) 때 많이 행해졌다고 한다.
  형태를 보면 「토연노래」는 「강강술래」처럼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재밟기」는 「놋다리 밟기」와 흡사한 점이 있다고 하며 참가 인원수의 다과에 따라 여러가지 형태를 변형, 신축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놀이를 강강술래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추측하여 임진왜란(壬辰倭亂)에 결부시키기도 하나 추측일 뿐, 유래에 대한 기록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명칭에서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본래는 월월래청정(越越來淸正:임진왜란 때 적장 가등청정(加藤淸正)이 바다를 건너온다는 뜻)이 와전되어 월월이청청이 되었다는 설, 이 설에서는 이 놀이를 임진왜란과 결부시키고 있으며, 다른 한 설은 월월이청청(越越而淸淸)이란 밟은 달을 의미하는 것으로 달은 여성에 해당하기 때문에 생산(生産)과 풍요의 뜻이 있다. 따라서 이 놀이는 주로 여성들의 놀이로서 풍요와 다산(多産)의 주술적(呪術的) 의미가 긷들어 있는 것으로 아득히 먼 삼한(三韓)시대 탁무(鐸舞)와 같은 일종의 원시 종합예술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는 설이다. 전자보다도 후자의 설이 더 가깝게 느껴지나 앞으로 연구할 문제이다.

4. 달봉(月奉) 뛰기

  이 놀이는 남정면 남정리 마을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 전날 동신제(洞神祭)의 한 의식이다. 유래는 옛날 이 마을은 화재가 잦고 가뭄이 심해 흉작을 면치 못하였다. 어느날 과객이 < 마을 앞 화산이 비치는 곳에 단지를 묻고 해마다 간물을 갈아 부어 마르지 않도록 하면 가뭄이 가시고 화재가 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뒤부터 마을 사람들은 화산 꼭대기에 단지를 묻고 정월 열 사흘이 되면 짠물을 남호 바다에서 길어와 부었다. 보름날 동제를 지내고 간물단지를 묻어 둔 곳에서 풍악을 울리며 지신을 밟아온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달봉뛰기의 유래는 한 쌍의 남녀가 정월 대보름날 달맞이 하면서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즉 두 남녀는 달맞이 가기 전에 “노적봉”이라 부르는 막대 두 개를 각각 다른 곳에 세웠는데 그 중 남자가 세운 것을 달맞이하러 올라가기 전에 여자의 노적봉에 합쳐 놓았다. 이 두 남녀는 달맞이를 하고 내려오는 길에 이 노적가리에 먼저 닿는 내기를 했다. 이것이 마을사람 전체 놀이로 발전되었고 편놀이로 변화되었다. 북쪽 상리는 청룡, 남쪽 하리는 황룡으로 하여 달봉을 던지고 또 이어받아 승부를 결정짓는 놀이로 바뀌어 왔다고 한다.
  이 놀이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중단되었다가 1981년에 다시 재현하였다. 놀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동제(洞祭)에 앞서 간물단지에 간물을 채우는데 만약 단지가 깨어졌으면 바꾸어 묻는다. 한편 이날 상·하리 주민들은 각각 15∼16m 가량의 원목을 잘라서 다시 다른 나무에 이어 세우는데 이 나무가 노적봉으로 달봉뛰기에 이긴다는 믿음 때문에 대나무 등 가벼운 나무를 이어서 높이 세우고 꼭지에는 “제답” 즉 마골을 연결한다. 이 노적봉은 상리는 남성, 하리는 여성으로 보고 있다.
  동제가 끝나면 마을 어귀에 있던 동민들은 풍물을 들고 화산의 간물단지가 있는 곳으로 가서 지신을 밟는다. 이것도 먼저 밟는 편이 달봉뛰기에서 이긴다는 속설이 있다.
  지신을 밟은 뒤 오후가 되면 노적봉을 시집, 장가 보내는데 이를 “신방 꾸민다”라고 한다. 즉 상리 노적봉을 하리 노적봉에 옮겨 함께 새끼를 묶는다. 하리 우두머리는 동장과 함께 준비한 달봉을 가지고 달봉재 봉우리로 올라간다. 주민들이 뒤를 올라가는데 동쪽과 서쪽의 능선을 따라 갈라서서 열을 짓고 그 열은 결승점인 동수나무까지 이어져 선다. 올라갈때 주민들은 “달보러 가세”하며 노래를 부른다.
  달이 떠 오르면 동장이 “달 뜬다” 하고 소리를 지른다. 이를 신호로 하여 달봉뛰기가 시작된다. 달봉을 가진 사람은 자기편을 향해 달봉을 힘껏 던진다. 다음 사람은 그것을 주워 다시 힘껏 던진다. 될 수 있는대로 멀리 던져 결승점에 빨리 도달하도록 애쓴다. 이렇게 던지다 보면 달봉이 다른 곳으로 떨어져 찾느라 법석을 떨기도 한다.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 달봉을 이어받고 던져서 먼저 동수나무에 도달하고자 한다. 즉, 동수나무에 달봉을 던져 맞추어서 승리하려는 편과 결사적으로 이를 막으려는 편은 함성과 함께 뒤죽박죽이 된다. 그러한 어느 한쪽편이 달봉을 동수나무에 먼저 맞추게 되면 승부는 판가름나고, 이긴 편은 그해 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기뻐한다.
  놀이가 끝난 뒤 두 개의 노적봉을 풀어서 원목을 보관하는데, 이를 노적봉 푼다고 한다. 이 놀이는 풍요와 여성, 곧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보름달과 마을의 수호신인 동수나무에 주민들이 풍년을 염원하는 종교적 경지의 원초적(原初的) 의식(儀式)임을 엿 볼 수 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