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융제도의 변천

1) 화폐의 변천

  금융이란 화폐를 이용한 신용거래로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 주체간에 이루어지는 자금의 융통을 말하는데, 대개 우리나라의 화폐사용의 역사는 고대국가까지 소급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위지동이전」에 의하면 마한(馬韓)에서는 BC 169년에 동전을 사용하였다고 하며, 진한(辰韓)에서는 철전, 동옥저(東沃沮)에서는 금은무문전(金銀無文錢)을 각각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 의미의 화폐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신용거래에 이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대체로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것들이 화폐다운 성격을 띠고 신용거래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때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해동역사(海東譯史)」에 의하면 제일 처음 화폐가 등장한 것은 고려 광종 8년(957)으로 자모전(子母錢)이라는 철전을 만들어 이용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주화(鑄貨)는 고려 성종(成宗) 15년(996)에 건원중보(乾元重寶)가 발행되었으며, 고려 숙종(肅宗) 6년(1101)에는 은병(銀甁)이 제작, 유통되었으며, 다음해인 숙종 7년(1102)에는 동전인 해동통보(海東通寶)가 발행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세종(世宗) 1년(1419)에 우리나라에서 지폐로는 처음으로 저화(楮貨)를 발행하여 유통시켰는데, 이는 지폐 한 장이 쌀 한말 값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는 것으로 책정하였는데, 이는 일종의 법화(法貨)로서 가치를 부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후 조선 세종 5년 (1423)에는 주화로 조선통보(朝鮮通寶)가 발행되었고, 세조 10년(1464)에는 전폐가 발행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인 인조(仁祖) 11년(1633)에는 상평통보(常平通寶)가, 조선시대 후기인 고종(高宗) 3년(1866)에는 당백전(當百錢)이 발행되었으며, 고종(高宗) 20년(1883)에는 당오전(當五錢)이 발행되었다.

2) 재래(在來)의 금융제도

  근대 이전의 우리나라에서 상인들의 상거래에 금융편의를 제공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객주(客主) 및 여각(旅閣)이었다. 객주나 여각은 생산자 또는 상인들의 상거래에 있어서 일종의 위탁판매업자로서의 역할을 하였는데, 업무 수행상 대금(貸金)의 예금 및 어음의 발행과 인수 등도 겸하였다. 즉 화주(貨主)가 화물이 판매되기 전에 자금이 필요하게 된 경우에 객주나 여각이 화물을 담보로 화주에게 자금을 융통해 주고 판매대금을 저리(低利)로 예수(豫受)해 주는 등, 생산자와 판매자를 연결해주는 중간고리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외에도 상인들과 일반 백성들 사이에는 저축을 목적으로 하는 저축계, 대부를 목적으로 하는 식산계(殖産契) 등이 있어, 오늘날과 같은 금융기관의 구실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재래적인 금융제도는 일제 침략 이후 근대적 금융제도의 도입으로 점차 사라졌으나, 일부는 아직도 농촌의 서민층을 대상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3) 근대적 금융제도

  우리나라에 근대적 금융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878년 6월에 일본이 제일은행(第一銀行) 부산지점을 설치하면서 부터이다. 부산지점을 설치한 제일은행은 이어 원산(元山), 인천(仁川), 서울 등 주요 도시에 지점 또는 출장소를 설치하여 운영망을 확장시켜 나갔는데,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근대적인 금융제도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행들은 뚜렷한 명분을 앞세우고 우리나라에 진출하였는데, 그 뜻은 일본의 대륙 침투를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일제에 의하거나, 일제의 도움으로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에도 조선은행, 한흥은행(韓興銀行), 제국은행(帝國銀行) 등 3.4개의 은행이 설립되었지만, 자본력의 부족으로 오래 가지 못하고 폐점하고 말았으며, 1897년에 설립된 한성은행(漢城銀行)과 1989년에 설립된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 및 1906년에 설립된 한일은행(韓一銀行)만이 금융기관의 역할을 해 왔다.
  일제 통감부는 1906년에 은행조례를 공포하고 한성은행과 천일은행에 정부 자금을 무상으로 대하(貸下)하여, 업무의 정상화를 꾀하는 동시에 경영면에까지도 깊숙이 관여하면서, 정부에 의한 금융산업의 발전을 기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정부에 의하여 보호를 받은 두 은행은 몇 차례의 기구 변천을 거쳐 오늘날의 조흥은행과 한국은행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또한 1906년에 농공은행조례를 제정하여 각 도마다 농공은행을 설립하였으며, 1907년 5월에 지방금융조합령이 제정되어 지방금융조합이 설립되었고, 1914년 5월 개정된 지방금융조합령에 의하여 농촌지역이 아닌 도시에도 설립되었으며, 각 도별로 이들 연합회가 구성되어 정보교류와 금융제도 발전에 기여하였다.

4) 영덕군의 주요 금융현황 및 금융기관

(1) 주요 금융현황

  우리 군의 주요 금융기관으로는 농, 축, 수협 계통과 우체국, 신용금고, 새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 등의 제2금융권이 대부분이며, 그 외에 다수의 보험회사도 영덕과 영해에 주재하며 영업을 하고 있다.
  표〈5­66〉은 연도별 군내 금융기관의 예금과 대출 현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1993년도에 군내 전체 금융기관에 예금된 예금총액이 23,425백만원이었는데, 1998년도에 이르러서는 무려 471,226백만원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지역의 경제규모가 급속히 신장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제1금융권의 군내 설치가 절실함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현재까지 군내에는 제1금융권인 은행이 유치되지 않아 제2금융권의 이용에 따른 높은 금융비용을 부담하고 있어, 상업 및 기업활동에 적잖은 부담을 주고 있으며, 제1금융권의 발전된 금융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등, 금융부문에서는 다소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표〈5­66〉과 표〈5­67〉에 의하여, 1993년부터 군내 금융기관에서 이루어진 대출실적 을 살펴보면, 1993년도에 14,629백만원이던 대출이 1998년에는 331,807백만원으로 증가하여,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정부차원의 농어촌 지원대책과 농어민들이 전통적으로 의지하여 오던 사채시장보다, 이자가 싼 금융기관을 많이 이용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하겠다.

(2) 금융기관

① 농업협동조합
  농업협동조합은 지역금융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금융기관이다. 현재 영덕군에는 1개의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영덕군지부와 7개의 단위조합이 있다. 농업협동조합은 예금과 대출의 신용업무 이외에 구매와 가공, 생활물자의 공급, 창고, 운송, 공제 등의 업무를 하며, 일반군민들과 지역의 농민들의 소득증대와 복지증진에 노력하고 있다.
  표〈5­68〉은 1993년 이래 군내 농업협동조합의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표에 의하면 전체 조합원 수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에 있는 것으로 이는 농촌인구의 감소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며, 1998년 12월 31일 현재 조합원수가 최대인 조합은 영해농협으로 2,609명의 조합원을 갖고 있다. 조합의 사업실적을 보면 판매사업은 1993년 이래 꾸준히 증가하다 1998 년도에는 다소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IMF 경제체제의 여파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며, 1998년 12월 31일 현재 최대의 판매실적을 올린 농협은 병곡농협이다.

그 외에 구매사업은 1995년을 기점으로 줄어들고 있는 추세에 있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기 위한 농업의 구매활동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 다소 안타깝다.

② 수산업협동조합
  1998년 현재 군내에서는 강구와 축산수산업협동조합이 있어 지역 어민들의 소득증대와 복리증진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수협에서는 여·수신업무와 구매, 냉동, 그리고 위탁판매업을 하고 있다.
  표〈5­69〉는 1993년 이래 강구와 축산수협의 현황인데, 양수협에 있어서 조합원수는 큰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다. 구매사업은 1993년 이래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에 있으며, 판매사업은 그 대부분이 수산물의 위탁판매이므로 당해년도의 어획량에 따라 그 변화의 폭은 크다.

1998년도의 판매사업은 37,493,396천원으로 1997년의 28,384,923천원에 비하여 무려 32%가 증가하였다.
  그러나 수협 자체의 가공사업은 1993년 이래 점차 감소하여 1998년 현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③ 축산업협동조합
  영덕군 축산업협동조합은 1993년도부터 신용업무를 시작하여 축산농가에 자금대출과 저축업무 등 축산농가의 소득증대와 복지증진에 이바지하고 있다.
표 <5-70>는 1993년 이래 조합의 신용업무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④ 산림조합
  영덕군 산림조합의 상호금융 사업은 산림조합법 제46조에 의거 1997년 7월 1일부터 실시하였는데, 1998년 말 현재 예금총액은 7,219백만원이고, 대출총액은 1,759백만원이다. 표 <5-71>은 1997년과 1998도의 예금과 대출실적을 나타낸 것이다.

⑤ 새마을 금고
  1998년 현재 영덕과 영해의 2개의 본소와 영덕새마을금고에 속한 지품, 남정, 강구의 3개의 분소로 이루어져 있다. 새마을금고의 업무는 크게 여신과 수신업무로 나누어지며, 지역의 문화복지증진이나 지역개발사업에도 일조를 하고 있다.
  영덕새마을금고는 1979년 4월 11일 야성새마을금고로 창립하여 1980년 4월 15일에 영덕새마을금고로 개칭하였다. 또한 영덕새마을금고는 1997년 7월 15일 지품새마을금고를 흡수하여 제1분사무소라 하였으며, 1998년 3월 17일에는 남정새마을금고를 흡수합병하여 제2분사무소라 하였다. 또한 동년 5월 6일에는 강구새마을금고를 흡수, 제3분사무소로 하여 강구분사무소를 개점하였다. 1998년 현재 김재하 이사장이 재임하고 있으며, 회원수는 5,961명에 이르고 있다.
  한편 영해새마을금고는 1983년 2월 17일에 설립되었으며, 1998년 현재 회원수가 3,353명에 이르고 있어, 군의 북부지역에서 금융기관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98년 현재 영덕·영해새마을금고의 회원수는 9.314명이며, 자산은 영덕이 1 3,078백만원이며, 영해가 14,683백만원으로, 이 중 예금과 대출액은 영덕이 11,251백만원이고, 대출은 8,943백만원이며, 영해는 12,559백만원이고, 10,054백만원이다.
  표 <5-72>는 1993년 이래 군내 새마을금고의 현황이다.

⑥ 신용협동조합
  1998년 현재 영덕군내 신용협동조합은 영덕, 강구, 영해 3개소가 있으며, 주요 사업으로는 조합원의 여, 수신사업을 비롯하여 조합원의 사회교육과 공동이익 활동으로 사회적, 경제적 지위향상과 복리증진을 도모하고 있다. 3개 신용협동조합의 연도별 사업실적은 표 <5-73>와 같다.

⑦ 우체국
  영덕우체국은 1912년 3월 28일 영덕우편소로 개국하여 1950년 영덕우체국으로 개칭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편업무를 전담하여 왔으며, 금융업무는 1929년부터 국민생명보험을 1943년부터 우편저축업무를 잠시 담당하였으나 중단되고 타금융기관으로 이관되었다.
  본격적으로 금융업무를 시작한 것은 1982년에 체신예금, 1983년에 체신보험을 담당한 이후부터이다.
  현재 실시하고 있는 주요 업무로는 우편사업, 금융사업, 정보화사업 등을 관장하고 있다.
  주요 기구로는 본국에 감독국으로 2과 1실이 있고 소속국으로 영해, 강구, 축산 3개소의 일반국과 남정, 병곡, 지품, 창수, 달산 5개소의 별정국이 있으며 지품면 원전리에 1개소의 취급소를 두고 있다.
  관내 우체국별 1998년 말 현재 주요 금융사업 실적을 표 <5-74>와 같다.

⑧ 한우리 신용금고 영덕지점
  한우리 신용금고 영덕지점은 포항상호신용금고가 1997년 11월 15일 영덕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합병하여, 새로이 개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표 <5-75>는 한우리 상호신용금고의 금융업무 현황이다.

⑨ 보험기관
  1998년 현재 영덕군에는 많은 수의 보험회사가 들어와서 영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대리점, 출장소 혹은 영업소 형태로 들어와서 군민들에게 적은 돈으로 이들 회사에 가입시켜 불의의 사고 및 미래의 위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이외에 부동산 담보대출과 개인 신용대출도 하고 있어 가입 군민들을 대상으로 신용사업도 함께 펼치고 있다.
  표〈5­76〉은 1998년 현재 영덕군내에서 영업하고 있는 보험회사 현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