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문 화

문화를 한 민족이나 한 사회의 전반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할 때, 영덕문화란 영덕이란 지역에서 장구한 역사를 이루며 살아온 영덕인들의 삶의 흔적이 배인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문화란 인간집단의 다양한 생활방식에 의하여 생성되는 것이므로 그 폭은 매우 넓으며, 다양한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즉 가족과 친족, 사회조직과 경제체제, 정치와 법, 종교와 언어, 자연환경과 지리적 환경 등에 의하여 다양한 형태의 문화가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따라서 누대에 걸쳐 긴 역사를 가지고 내려온 우리 지역에도 다양한 문화가 형성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문화란 크게 나누어 정신적인 문화와 물질적인 문화로 나눌 수 있는데, 이러한 양자관계도 완전히 구분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 혹은 상호인도 되어 진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문화는 폐쇄적이지 아니하고, 상호교류 발전하여 가는 속성을 갖는다고 하겠다.
위와 같은 범주 안에서 고대 이래로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지역은 내륙문화와 해양문화가 융합된 다양한 형태의 문화를 가진 곳으로, 그간 동해안 일대의 문화 선두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여 왔다고 하겠다.
옛부터 전해오는 궁마지향(弓馬之鄕)과 추로지향(鄒魯之鄕)이란 말은 우리 지역의 문화적인 특성을 잘 드러낸 말이라 할 수 있다. 항상 무예를 숭상하여 외부의 적을 경계하고 내부의 단합을 가져온 것은 거친 바다와 싸워 온 해양문화적인 특질이라면, 예양과 겸손을 숭상하고 학문을 익혀 인간적인 정을 돈독히 발전시켜 나온 것은 내륙적인 문화의 특질이라 할 수 있다.
해양문화적 기질은 칼춤(劍舞之戱)을 즐겼다던가, 해안 일대에서 널리 행해진 월월이청청 등을 통하여 발산되어 왔으며, 이렇게 쌓인 기질들이 임진왜란, 광복애국투쟁, 3.18만세운동 등으로 나타났으며, 오늘날도 그 혈맥은 우리들 가슴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또한 예양과 겸양을 중시하는 내륙, 즉 농경문화의 특질은 유학의 번창과 함께 우리 지역에서 크게 꽃피었다. 특히 예주방어사로 온 김수자, 윤신걸, 영해부 사록으로 온 우탁, 향교대현 김택, 가정 이곡, 목은 이색, 담암 백문보 등으로 이어지는 유교의 맹아(萌芽)가 이 지역으로부터 싹텄으며, 경상북도에서도 최초로 1348년에 세워진 영해향교 등으로 인하여 안동과 인근 지역의 선비들이 우리 지역으로 유학와서 학문을 익혀 오늘날 경상북도 북부지역이 유교의 본산이 되도록 깊은 영향을 미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이러한 것은 결국 “토질이 기름지고, 풍속이 순박하며, 백성들은 예양을 알고 번화하여 동방의 최고다(土厚風淳民知禮讓繁華佳麗甲於東方)”라는 우리 지역의 풍속과 군민성(郡民性)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또한 선조들은 우리 지역의 문화적인 특성을 “ 집집마다 거문고를 두고 사람마다 공교롭게 곡을 만들어 잘 탄다(家畜絲桐人功繰)”라 하여 예악적인 특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군민들은 순후하고 질박하며, 옛 풍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선비와 농업인과 공장기술자와 상인들이 각기 그 업에 열심히 하고 있다(淳厚質朴尙存古風士農工賈各守其業)”고 하는 것은 질정하고 소박하며 자기의 맡은 바 일에 분수를 지키며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 군민들의 심성을 여지없이 드러내주고 있다고 하겠다.
결국 이와 같은 모든 것은 우리 지역과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승되어 와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또는 발전되어 오는 모든 유무형의 전통민속과 문화재에 반영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고 하겠다.
멀리로는 고려 충열왕 34년(1308)에 영해에서 만들어진 후 오늘날까지 궁중무용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궁중정재의 대표적인 작품인 「무고(舞鼓)」,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5호인 「영해별신굿놀이」, 동해안 최초로 영덕에서 재현한 집단군무(集團群舞)인 「월월이청청」, 그리고 각종 지방문화재, 민속자료 등이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산하(山河)에 스며들어 오늘날 우리를 살찌우고 있다.
현재 무고는 “영덕무고예술단”에 의하여 전승, 보전되어 군내외 각종 행사에 공연을 하고 있어, 과거부터 우리 지역이 예향의 고장임을 널리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