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월별(月別) 세시풍속(歲時風俗)
(1) 정월(正月)
우리 군은 1읍 8면 중 3개면은 농업이 순수한 주업이고 나머지 1읍 5면은 농업과 어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반농반어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세시풍속도 이러한 인문지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정월은 생업력(生業曆)으로 본다면 농한기이지만 새해가 시작되는 달이다. 이 시기는 인간에게는 새로운 생장(生長)의 계절이 오기를 기다리게 하는 계절이다. 이때의 기다림은 휴식으로만 일관되지는 않는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신성(神聖)하고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얻기 위한 각종 축원(祝願)과 점세(占歲)의 의례(儀禮)가 행해졌으며 윷놀이, 널뛰기, 줄다리기, 팽이치기, 자치기, 석전(石戰), 제기차기, 쥐불놀이, 달보기(望月) 등 여러 종류의 민속놀이가 행해졌다.
설은 설날·원단(元旦)·원일(元日)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슬프다, 삼간다(愼)는 뜻으로 옛날에는 조심한다는 말로 신일(愼日) 이라고도 했으며 슬프다는 것은 나이를 한살 더 하기 때문인 것 같으며 삼간다는 것은 새해 첫날 잘못되면 일년 동안의 일이 잘못될까 염려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설날의 세배(歲拜)는 새해 첫날을 맞이하여 윗사람에게 의례적(儀禮的)으로 행하는 예(禮)이며 또한 조상(祖上)에게 새해를 맞이하였음을 알리는 의례이기도 하다. 그래서 새옷인 설빔을 입고 세배를 주고 받는 사람들은 덕담(德談)을 하며, 한 해 동안 건강과 복을 빌어 주며, 조상의 사당에도 제사를 지내, 한해의 시작을 고하고, 무사안녕을 빌었다.
설날에는 다례(茶禮)를 지내는데, 세찬(歲饌), 세주(歲酒), 떡국, 과실 등을 진설하고 제사를 지낸다. 특히 설 제사는 떡국을 올리는 것이 특징이며, 청채, 백채 등 채소류를 상에 올리지 않는 것이 일반 기제사(忌祭祀)와는 다르다. 다례가 끝나면 남여노소가 조상의 음덕(蔭德)을 기리며 음복(飮福)을 하는데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질서에 따라 음식을 고루고루 맛보게 한다.
특히 떡국을 제수(祭需)로 쓰고 세식(歲食)으로 반드시 먹어야 되는데, 이것은 나이와 관련되는 종교적(宗敎的)인 음식으로 인식된다.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7일까지는 12간지(干支)에 의해서 노동을 하지 않는 관습(慣習)이 있었다. 즉 점세(占歲), 제액(除厄), 초복(招福) 등 의례적인 행위를 관행(慣行)하는 날들이기 때문이다.
정월 첫째 자일(子日)을 상자일(上子日), 또는 초자일(初子日)이라 하는데 쥐날로 이 날은 쥐의 번식을 막기 위한 예방법으로 콩을 볶으면서 < 쥐 주둥이 지진다. 쥐 주둥이 지진다.> 하고 주문을 외웠으며 쥐가 곡식을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날은 백사(百事)를 금하고 놀았다.
정월 첫째 축일(丑日)을 상축일(上丑日), 또는 초축일(初丑日)이라 하는데 이 날은 소의 날로 어떠한 노역(勞役)도 소에게 시키지 않고 잘 먹인다. 그러나 솥안에 놋그릇을 넣어 음식을 데워 먹으면 소가 큰 연장에 다친다고 하여 금했으며, 첫째 인일(寅日)은 호랑이날이라 하여 부녀자들은 외출을 금하기도 하였다.
첫번째 묘일(卯日)은 상묘일(上卯日), 또는 초묘일(初卯日)로 토끼날이다. 이날은 명사일(命絲日)이라 하여 실을 뽑아서 남편의 의복을 하면 명(命)이 길고 무병(無病)하다고 하며 또 주머니 끝에 「명실」이란 실을 찻는데 이 날이 토끼날이기 때문에 일명 「톳실(兎絲)」이라고도 하였으며 이 날은 남자가 먼저 일어나 대문을 열었으며 여자가 집에 먼저 들어오는 것을 꺼렸다.
첫번째 해일(亥日)을 상해일(上亥日), 또는 돼지날이라 하여 이 날은 팥가루로 피부를 문지르면 살결이 희고 고와진다고 한다. 돼지가 살결이 검고 거친데 그 반대의 뜻으로 이러한 풍속이 생긴 것이다.
첫번째 진일(辰日)은 용(龍)의 날이다. 이 날은 용이 우물에 내려와 알을 시른다 하여 부녀자들이 다투어 새벽물을 긷는다. 이것은 용이 시른 알을 건져다 남편을 먹이면 무병장수하고 그 해는 비가 잘 내려 풍년이 든다고 한다. 또 이날 부녀자들이 머리를 빗으면 머리가 용처럼 길어진다고 하여 머리를 빗는다. 그러나 사일(巳日) 곧 뱀의 날은 머리를 빗거나 이발을 하면 뱀이 집에 들어온다고 하여 이를 금한다.
첫번째 유일(酉日)은 닭의 날이라 하여 이날은 바느질을 하지 않았다. 이날 바느질을 하면 손발이 닭의 발처럼 된다는 데서 온 풍습인데 정초부터 바느질을 한다는 것은 부지런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게을러서 보름에 입을 옷을 마련 못했다는 훈계에서 생긴 것이라 하겠다.
두번째 인일(人日)은 7일로 이날은 외박(外泊)을 하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나그네가 와서 묵고 가면 연중 불운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부득이 나그네가 묵을 때에는 주인과 나그네가 서로 거꾸로 누어서 잔다. 그러면 불운도 들지 않고 우정도 지속된다고 한다.
정초는 간지일(干支日) 마다 이러한 여러가지의 금기(禁忌)가 따랐으나 현재는 거의 사라졌으며 세대에 따라 생소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음력 정월 15일을 대보름 상원(上元) 또는 보름명절이라 하여 설과 못지 않게 소중히 여겼다. 이날은 찰밥(藥食)을 먹으면 좋다고 한다. 찰밥은 14일 또는 15일에 만드는데 찹쌀, 대추, 밤 등을 섞어 함께 찐 다음, 잣을 박기도 하는데 이것을 약식(약밥)이라고도 한다. 또 오곡밥(五穀)이라 하여 다섯가지 이상의 곡식을 섞어서 밥을 짓기도 한다. 또 세 집 이상의 타성(他姓) 집 밥을 먹어야 그 해 운이 좋다고 하여 이웃의 오곡밥을 서로 나누어 먹는다. 또 복쌈(福裏)이라 하여 취나물이나 김에 싸서 먹는다. 또 호박고지, 무우고지, 외고지, 가지나물, 고사리, 버섯, 시레기 등 여름에 말려 둔 나물을 삶아 먹는데 이를 진채식(陣菜食)이라 하며 이날 진채를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민속이 전해진다.
또 보름날 아침 「귀밝이술」(耳明酒)이라 하여 술을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해서 한 잔씩 마신다. 일설에는 귀도 밝아지고 일년 동안 좋은 소식을 듣는다고 하였다.
또 「더위팔기」라 하여 정월 14일은 누군가 불러도 대답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대답을 했다가는「내 더위 사가거라」해서 그 해 더위를 떠 안고 만다. 이것은 정월 보름을 전후하여 계절을 나누는 풍속에서 온 것인데 즉 정월 13일은 봄, 14일은 여름, 15일은 가을, 16일은 겨울로 정하여 놓았기 때문이다. 또 「보리타작」 또는 「목화놀이」가 있었는데 소년들이 수숫대로 벼, 보리 등 농작물과 각종 농구(農具)를 만들어 거름자리나 외양간 뒤에 꽂거나 나무에 걸어 두고 14일 저녁에는 ‘보리타작’이여 하고 다른 집 것을 부수기 위하여 몰려다니기도 했으며 이튿날 아침 말끔히 부수어 형식적으로 말(斗)로 되는 시늉을 하며 만석 또 10만석이라고 한다. 어떤 지방에서는 가지가 많이 친 나무를 외양간 뒤에 세우고 곡식의 이삭과 목화를 걸어 둔다. 그리고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 이 나무를 싸고돌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봄을 타 살빛이 검어지고 야위어 마르는 애는 보름날 백집(百家)의 밥을 빌어다가 절구 혹은 디딜방아를 타고 앉아 개에게 한 숟갈 먹이고 자신도 한 숟갈 먹으면 다시 그런 병을 앓지 않는다고 한다.
짚 꾸러미에 찰밥을 싸서 까마귀밥이라 하여 나무 사이에 끼우거나 걸어 두었는데 이것은 신라 소지왕(炤智王) 때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했을 때 날아온 까마귀가 왕을 일깨워 주었으므로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이 날을 까마귀 제사하는 날로 삼은 데서 유래되었다.
보름 전날 짚꾸러미를 만들고 그 안에 벼, 기장, 피, 조의 이삭을 싸서 깃대 모양으로 만들고 목화를 그 장대 위에 매달고 그것을 집 곁에 세우고 새끼를 늘어뜨려 고정시키는데 이것을 화적(禾積)이라 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라고 한다.
이날은 개에게는 밥을 먹이지 않는다. 개에게 밥을 주면 여름에 파리가 많이 꾀고 마르기 때문이라 하며 이것을 비유하여 「개 보름 쇠듯한다」는 속담이 있다.
과실나무가지 친 곳에 돌을 끼워두면 과실이 많이 열린다고 하며 이를 가수(嫁樹:과실나무시집보내기)라 한다. 마을 수호신(守護神)인 동신제(洞神祭)를 대부분 보름날 자시(子時, 12시)를 기해 제사를 지낸다.
보름날 저녁에는 망월(望月) 또는 영월(迎月)이라 하여 달맞이를 한다. 이날 밤 달빛이 희면 그 해 비가 많고 붉으면 가뭄이 있으며 또 달이 남쪽으로 치우치면 해변에 풍년이 들 징조이고 북쪽으로 치우치면 농촌에 풍년이 든다고 하여 1년 농사를 미리 점치기도 하였다. 입춘(立春)에는 집집마다 < 입춘대길, 만사형통 (立春大吉, 萬事亨通) 우순풍조, 시화년풍 (雨順風調, 時和年豊)> 등 좋은 글귀를 한지에 써서 기둥이나 문설주에 붙인다.
또 보리 뿌리를 캐어 그 해의 풍흉을 점친다. 보리 뿌리가 세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평년,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2) 이월(二月)
2월도 1월과 비슷한 농한기이긴 하지만 입춘이 지난 시기이기 때문에 농사에 대한 준비를 하는 기간으로 곧 농한기가 끝나는 달이다.
2월을 묘월(卯月)이라고도 하며 율명(律名)으로는 고선(告銑)이라고 한다. 이 달은 경칩(驚蟄)과 춘분(春分)이 있는 달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데 이것을 꽃샘(花妬娟) 추위라 한다.
초하루는 각 가정에서 대청소를 한 다음, 정월 보름날 풍년고사로 세워 두었던 벼가릿대(禾竿)에서 벼이삭을 내려다가 송편(松餠)을 만들어 머슴과 부리는 사람들에게 주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은 농사가 이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또 영등(靈登, 영둥, 영동, 풍신제, 이월바람) 맞이라 하여 풍신(風神)에게 무병식재(無病息災)와 풍년이 들기를 비는 풍신제(風神祭)를 지냈다. 전설에 영둥할머니가 인간 세상에 내려올 때 딸을 데리고 오면 일기가 온화하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바람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것은 친정어머니가 딸과는 화합하지만 며느리와는 불화와 갈등이 있는 데서 일기의 변화에 비유한 것으로 보이다. 영둥할미는 2월 20일이 되어야 등천(登天)한다고 하며 이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들고 조금 흐려도 길(吉)하다는 점세적(占歲的) 믿음이 있다.
어촌에서는 고기잡이 때 풍랑(風浪)이 없게 용왕(龍王)에게 기도하고 제사를 지낸다. 이날 농가에서는 종이를 잘라 「향랑각씨속거천리(香娘閣氏速去千里)」라는 여덟자를 써서 서까래에 붙인다. 향랑각씨란 여자란 뜻인데 노래기(마륙;馬陸·백족서;百足筮)를 미화해서 부른 것으로 “노래기여 천리 밖으로 속히 가라”는 뜻으로 기둥이나 벽, 서까래 같은 곳에 거꾸로 붙인다. 또 솔잎을 문 앞이나 뜰에 뿌린다. 솔잎의 냄새로 벌레를 제거하기 위한 방법이다. 또 콩을 볶아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는다. 이것도 집안의 노래기나 거저리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부 지방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콩을 볶아서 방 네구석에 조금식 넣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는데 거저리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2월 5일에는 귀신단지날이라 하여 귀신 내쫓는 날로 지키는 풍습이 있으며, 6일은 농가에서 초저녁에 묘성(昴星·좀생이·六連星)이 달의 앞뒤에 서는 것을 보아 그 해의 풍흉을 판단하는데 즉 별이 달과 나란히 가거나 가까운 거리로서 앞서 가면 풍년이 들고 앞이나 뒤로 멀리 떨어져 가면 흉년이 들어 어린것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한다. 경칩일이 되면 동면(冬眠)하던 개구리들이 땅 속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이날 개구리 알을 먹으면 몸을 보(補)한다는 속설이 있어 건져 먹기도 하였으며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하여 벽을 바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2월의 풍속은 농사가 시작되기 전 허물어진 집을 보수하고 몸을 보(補)해서 농번기에 대비하며 또 달과 별 그리고 영등맞이, 곧 풍신을 통해 액운을 막고 풍요(豊饒)를 빌고 한 해의 풍흉을 예측하는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3) 삼월(三月)
3월은 파종과 이앙(移秧)의 세시(歲時)로서 연희적(演戱的)인 유희(遊戱)의 성격을 가진 놀이는 거의 없다. 그것은 농경사회에서 파종과 이앙 등 생업(生業)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놀이는 3월 3일이 있으며, 이 날을 삼짇날(삼진·상사(上巳)·중삼)이라 하며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날이다. 이 무렵이면 봄기운이 왕성해지기 시작하는 계절로 봄맞이를 하기 위하여 화전(花煎)과 수면(水麵)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화전이란 진달래 꽃잎을 쌀가루 떡에 붙여 기름에 지진 것이며, 수면이란 녹두를 국수로 만들어 꿀물에 띄운 음식인데 혹 붉은 색으로 물을 들이기도 한다. 이날은 야산이나 들에서 진달래꽃으로 떡, 국수, 술로 남자들은 술취정하고 여자는 봄맞이를 하였다. 이날에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여 장을 담그기도 하였으며 절에 가서 불공(佛功)을 드리기도 하였다.
한식일(寒食日)에는 조상의 산소를 찾아 무덤이 헐었으면 잔디를 다시 입히는 등의 개사초(改莎草)를 하고 한식 차례(茶禮)를 지내기도 했으며 둘레에 나무를 심기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날은 더운밥을 먹지 않고 찬밥을 먹는데 그것은 고대 중국 진(晋) 나라 은사(隱士) 개자추(介子椎)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날 농가에서는 식목을 하거나 채소를 뿌려 농사 준비를 하며 곡우(穀雨)가 되면 못자리를 준비하였다. 만약 볍씨를 담구어 두고 주인이 외출해서 부정한 것을 보면 돌아와서 볍씨를 보지 않는다. 만약 보게 되면 싹이 잘 트지 않는다고 한다.
(4) 사월(四月)
4월은 석가탄신일의 행사가 있다. 이날은 절에 가서 등(燈)을 달고 탑돌이를 하며 석가 탄생을 축하하고 가운(家運)과 소원성취를 기원하기 위해 불공을 드리고 시주도 한다. 등은 과실꽃, 어류(魚類) 또는 여러 가지 동물 모양을 본떠서 만들기 때문에 그 이름만 해도 수박등, 마늘등, 참외등, 연화등, 목단등, 잉어등, 거북등, 봉등(鳳燈), 계등(鷄燈), 학등(鶴燈), 오리등, 일월등(日月燈), 선인등(仙人燈), 칠성등(七星燈), 고등(鼓燈), 누각등 등 헤아릴 없이 많은 등이 있으나 주로 연화등이나 수박등을 많이 달았으며 등에는 본인과 가족의 성명과 연령, 그리고 주소를 썼으며 수복(壽福)이라는 글자를 쓰기도 했으며 근래 절에서는 남북통일(南北統 一) 등의 글자를 쓰기도 한다. 이 연등행사는 부인들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어린이들은 등(燈)이 달린 밑에 자리를 깔고 느티떡을 먹으며 물장구(水浮)라 하여 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돌려가며 두드리면서 즐거워했다.
(5) 오월(五月)
5월에는 보리수확, 모내기, 감자캐기, 마늘캐기 등 바빠지는 계절로서 세시 행사로는 단오뿐이다.
단오(端午)는 음력 5월 5일로 수리(戌衣),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午節), 단양(端陽), 수릿날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우리 명절은 주로 양수(陽數)로 되어 있다. 그 중 5월 5일은 양기(陽氣)가 가장 성한 날이라 하여 단양(端陽)으로도 칭했으며 옛날에는 설, 한식, 추석과 함께 4대 명절 중의 하나였다.
수리 또는 수릿날이라 한 것은 쑥떡을 수레바퀴처럼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도 하고 수리치로 떡을 해 먹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고대 중국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충분(忠憤)을 이기지 못하여 이날 수뢰(水瀨)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이 날은 천궁(궁궁이) 버들, 창포(菖蒲)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았으며 창포 뿌리로 비녀를 만들어 수복(壽福)의 글자를 새겨 꽂기도 했으며, 또 연지로 붉게 칠하여 머리에 꽂거나 허리에 차기도 하였다. 붉은색은 양색(陽色)으로 축귀(逐鬼)의 기능이 있는 데서 생긴 풍속이다. 따라서 창포는 벽사용(邪用)으로 쓰였다. 또 붉은 글씨로 복록을 얻어 귀신과 4백4병(病)이 소멸하라는 내용의 벽사문을 써서 문 위에 붙였는데 이를 천중부적(天中符籍)이라 하는데 처용상(處容像)이나 도부(桃符), 신마부(神馬符) 등을 그려 넣기도 하였다.
미나리를 반찬으로 먹으며 또 상추잎에 묻은 이슬을 받아 세수하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으며 부스럼도 없어진다고 한다. 또 익모초(益母草·육모초)와 쑥을 이날 오시(午時 12∼1시경)에 뜯어 말렸다가 약초로 썼으며, 또 다발로 묶어 문 옆에 세워 두면 재액(災厄)을 물리친다고도 한다. 이 때가 되면 더위가 시작되어 부채를 사용하였다. 이 부채를 단오선(端午扇)이라 하였는데 승두선(僧頭扇)을 비롯해서 유환(有環), 무환(無環), 외각(外角), 육각(六角), 활연(沿), 합죽(合竹), 이태(二台), 삼태(三台), 채각(彩角), 소각(素角), 광변(廣邊), 협변선(狹邊扇) 등 여러가지 부채가 형태도 다르고 색채도 다양하였으나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합죽선과 태극선(太極扇) 그리고 살부채 뿐이다. 태극선은 일제(日帝) 때 제조가 금지되어 중단되었다가 다시 유행되었다. 이 중 살부채는 일반 가정용으로, 합죽선은 외출용으로 사용하였다.
단오절의 놀이는 여성들의 놀이인 그네뛰기와 남성들의 놀이인 씨름이 있다. 특히 그네는 줄을 타고 허공을 날아오르므로 일명 비선희(飛仙戱)라고도 불렀다. 군민 전체가 일을 멈추고 농악대와 함께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6) 유월(六月)
6월은 모심기 등 마을사람들끼리 품앗이 등 협동 노동이 한창이며 밭농사도 고구마이식, 김장용 배추, 무우심기, 고추모 속기, 김매기 등 바쁜 시기이다. 이 달에는 6월 보름인 유두일(流頭日)과 삼복(三伏)이 있다.
유두(流頭)란 말은 “동유두목욕(東流頭沐浴)” 이란 말의 약어(略語)로서 이 날은 개울에서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고 하루를 즐긴다. 특히 부녀자들이 동쪽으로 흐르는 물가에서 머리를 감으면 그해 불길한 것을 모두 씻어버린다고 하며 남자들은 서늘한 나무 아래나 개울가에서 액막이로 술자리를 마련했는데 이것을 유두연(流頭宴)이라 하였다.
이 풍속은 신라(新羅)때부터 시작되어 고려·조선시대로 이어졌으며 「유두날 물맞이」라 하여 시원한 계곡을 찾아 목욕을 하였다. 또 참외와 수박 등 햇과실과 밀적을 부치어 조상께 유두천신(流頭薦神)을 하였다. 옛날에는 햇과실이 나도 조상께 올린 다음 먹었다는데 이것은 조상의 은혜를 잊지 않는 지극한 효성의 마음으로서 추원보본사상(追遠報本思想)에서 비롯된 것이다.
복(伏)은 하지(夏至)로부터 세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 네째 경일 곧, 초복일로부터 10일 뒤가 중복(中伏), 입추(立秋)로부터 첫째 경일, 곧 중복일로부터 10일 뒤가 말복(末伏)인데 만약 월복(越伏)을 하게되면 중복부터 20일되는 날이 말복이다 이 기간은 1년중
가장 더운 때로서 피서(避暑)를 위해 계곡을 찾아 하루를 즐긴다. 복중의 음식으로는 삼계탕(蔘鷄湯)과 개고기 보신탕(拘湯)이 있다. 구탕은 보통 개장이라 하며 보양탕(補陽湯)이라는 말도 있는데 더위를 식혀주고 또 벽사(邪) 즉 질병도 쫓는다는 설이 있다. 1940년경에는 개장을 용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하나 최근엔 보신탕으로 알려져 있으며 불교신자나 전통적 유교가정에서는 먹지 않는 사람이 많다. 삼계탕은 햇닭을 잡아 인삼, 대추, 찹쌀을 넣고 고은 것으로 땀을 많이 흘려 원기가 소모되므로 이를 회복하기 위해 즐겨 먹는데 닭개장이라고도 한다.
(7) 칠월(七月)
7월은 어정칠월이란 말이 있듯이 농번기이면서도 한가한 시기이다. 이 시기의 농사일은 논매기, 밭매기, 풀베기. 가마니 준비, 논밭에 웃비료 주기 등 가벼운 일들이기 때문에 칠석(七夕)이나 백중(百中·百·百種)을 맞아 들놀이나 물맞이를 하였다.
칠석은 7월 7일로 이 날은 천상(天上)의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은하(銀河)의 오작교(烏鵲橋)를 건너 1년중 이날 한번 만나 그리웠던 정(情)을 푼다는 날이다. 원래는 중국 전래의 명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는 명절이다. 이날에는 까마귀와 까치가 없다. 어쩌다 있는 것은 병이 들어 천상에 가서 오작교를 놓는데 참여하지 못한 것들뿐이라고 한다. 별다른 의례(儀禮)는 없으며 저녁에 내리는 비는 견우 직녀가 상봉한 기쁨의 눈물이라 하며 밤에 내리는 비는 세거우(洗車雨)라 하여 타고 갈 수레를 닦는 물이라 하며 새벽에 내리는 비는 이별의 슬픈 눈물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7월 보름을 백종일(百種日), 백중절, 중원(中元) 또는 이날 밤 망친(亡親)의 혼령을 불러들여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정월 보름을 상원(上元) 10월 보름을 하원(下元)이라 하듯이 중원은 일년 후반기의 시작으로 농가에서는 중요한 시기이다. 백중은 도교(道敎)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생긴 명절로서 이날 사찰에서는 우란분(盂蘭盆)이라 하여 조상의 영(靈)을 위로하는 불공(佛供)을 드리는 날이었으나 이 풍속이 내려오면서 사당에 천신(薦神)을 드리고 하루를 즐겼다.
이날 농가에서는 밀적을 붙여 제사를 올리기도 하였고 우물을 깨끗이 하고 우물제(井神祭)를 지내기도 하였으며 또 흰떡을 빚어 한지(韓紙)에 정성껏 싸서 논 가운데 묻고 그 곁에 한지를 오려 막대기에 달고 깃발을 만들어 꽂고 용신제(龍神祭·龍祭)를 지내기도 하였으며 또 손모듬 또는 소모듬 날이라 하여 집집마다 일꾼들을 위로하기 위해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여 냇가나 나무그늘 아래 모인 장정들에게 가지고 간다. 장정들은 먹고 마시며 하루를 즐긴다.
(8) 팔월(八月)
8월이면 농사의 수확기를 맞이한다. 농가에서는 농작물의 발육 관리를 마무리하는 작업이 따른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서는 < 백곡이 이삭패고 여물들어 고개숙여 서풍에 익은 빛은 황운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이 달의 세시행사(歲時行事)로는 추석(秋夕)이 있다. 추석은 일명 가배절(嘉俳節)·중추절(中秋節)·가위·한가위 등으로 지칭되며 우리 민족의 4대 명절 중 하나로 오랜 옛날부터 큰 명절로 지켜져 오고 있다. 추석은 중추월석(仲秋月夕)의 약어(略語)로 기원은 신라(新羅)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우리 조상이 창안해 낸 명절이다. 티없이 맑은 하늘, 동산에 떠오르는 둥근 달, 풍성한 과실과 햇곡식, 한마디로 가절(佳節)이며 추수감사제적(秋收感謝祭的) 성격을 띄고 있다.
햇곡식으로 떡을 하고 술을 빚어 조상께 추석천신(秋夕薦神)을 지내고 묘를 찾아 성묘(省墓)를 하기도 한다. 추석 떡으로는 햅쌀로 송편을 빚는데 기호지방은 대부분 반달 모양의 송편을 빚고 영남지방은 대부분 보름달을 상징하는 형상의 둥글게 빚었는데 어떻든 이 떡을 「오려송편」이라고 한다. 그것은 신도송편(新稻松餠)이란 뜻으로 햇콩이나 밤, 대추, 깨, 팥 등을 넣으며 푸른 솔잎을 깔고 찐다. 그리고 술은 햅쌀로 빚은 신도주(新稻酒)가 있다. 「농가 월령가」에는 < 신도주, 오려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라 하였다.
추석놀이는 농악, 줄당기기, 씨름, 소싸움, 그리고 달맞이가 있었다. 추석 무렵이면 친정 어머니와 시집간 딸이 각각 음식을 준비하여 친정집과 시가의 중간 경치 좋은 곳을 택하여 그립던 어머니와 그립던 딸을 만나 한나절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서로 정을 나누었는데 한나절 만났기 때문에 이 만남을 「반보기」라 하였다. 조선시대 유교적(儒敎的)인 엄한 가족제도에서 나온 풍속이다.
이 무렵에는 시월 시제(時祭)를 위해 조상의 묘소를 찾아 벌초(伐草)를 하였다.
(9) 구월(九月)
9월은 수확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추수를 하는 계절이다. 9월의 세시행사로는 중
양절(重陽節)이 있다. 일명 중구(重九)라고도 하는데 중구란 9가 두 개 겹쳤다는 뜻이며 중양이란 양수(陽數)가 겹쳤다는 말이다. 이 명절은 멀리 신라 때부터 유래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삼짇날과 이날 두차례로 나누어 노인연(老人宴)을 베풀었다고도 한다. 농가에서는 국화전(菊花煎)을 붙이고 국화주(菊花酒)를 빚어 마을에서 가까운 동산에 올라 단풍구경을 하며 하루를 즐겼다. 영해면 원구리(元邱里) 주산(主山)인 중구봉(重九峰)이란 산이 있다. 정상에 오르면 동쪽에는 확 트인 푸른 바다가 시야에 들어오고 서쪽에는 형제봉, 남쪽에 고래산 그리고 북쪽에는 옥녀봉(玉女峯)이 있는데 그 중앙에 위치하는 산이 바로 중구봉이다.
중양절에는 향내(鄕內), 유현(儒賢)들이 중구봉에 올라 술을 마시고 시(詩)를 읊고 서로 기뻐하며 종일토록 돌아가기를 잊었다고 「단양부지(丹陽府誌)」에서는 밝히고 있다.
추석에 햅쌀이 나지 않으면 중구에 천신을 지내기도 하였다.
(10) 시월(十月)
10월은 입동(立冬)과 소설(小雪)의 절기이다. 수확은 마무리되고 다만 김장용 배추와 무우의 수확, 그리고 마늘 파종이 있을 뿐이며 이 달 중순이 넘어서면 김장이 시작된다.
이 달은 추수 감사적 성격의 의례(儀禮)가 행해진다. 시제(時祭), 고사(告祀·安宅) 성주제(城主祭·成造祭) 등이다.
시월을 상달(上月)이라 하여 1년 중 가장 높은 달로 생각하였다. 이것은 고조선(古朝鮮)을 비롯한 고대국가가 천신(天神) 및 여러 신에게 제천의식(祭天儀式)을 가졌다고 한다. 농가에서는 신곡(新穀)으로 음식을 마련하여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치성을 드렸는데 이 고사의 내력이 단군(檀君)에게 드리는 것이며 그 날짜가 현재 10월 3일 개천절(開天節)이라고 한다. 어떻든 시월 상달의 고사와 치성이 단군께 드리는 것이란 것을 일반이 알게된 것은 광복 이후부터라고 한다.
이 달에는 시제(時祭)가 있다. 원근(遠近)의 후손들이 산소를 관리하는 재실(齋室)에서 반병(飯餠 또는 餠)과 주찬(酒饌)을 마련하여 집단으로 지낸다. 따라서 일명 회전(會奠)이라고도 한다. 이 경비는 묘소에 소속된 전답에서 나오는 수확으로 마련하였다. 시제 때에는 많은 자손이 모이는 것이 자랑이며 풍수설에 의하여 묘터가 명당(明堂)일수록 후손이 복을 받는다고 전해온다. 또 길일(吉日)이나 마일(馬日)을 택해서 집을 지키는 곧 집안의 안녕을 관장하는 신으로 알려진 성주신(城主神·成造神)에게 제사를 지낸다. 햅곡식으로 술과 떡을 빚고 과실을 준비하여 상을 차린 다음 주로 주부에 의해 지내는 경우가 많다. 이 날에는 마루 구석이나 방안에 둔 성주단지(일명, 조상단지)에 신곡을 갈아넣고 대들보기둥(또는 동자기둥)에 한지(韓紙)를 실로 매기도 하고 또는 햇솔순을 꺾어다 대고 흰 실을 매기도 한다.
(11) 십일월(十一月)
11월은 농한기에 접어드는 달이다. 수확한 농작물을 저장하고 겨울철 땔감나무 비축에 힘쓰는 시기이다.
이 달에는 동지(冬至)가 있다. 「농가월령가」에서는 <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一陽)이 생하도다. 시식(時食)으로 팥죽 쑤어 인리(隣里)와 즐기리라 새 책력(冊曆) 반포하니 내년절후 어떠한고 해 짧아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루하다.> 하였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지를 아세(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 불렀으며 11월을 동짓달이라 할만큼 동지는 유명하였다.
태양신(太陽神)을 숭배하던 옛날에는 이 날을 설날로 삼았던데서 나온 말이다. 가정에서는 동지 팥죽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팥죽은 팥을 삶아 으깨거나 채로 걸러서 그 물에 찹쌀로 새알만큼 만들어서 죽을 쑨다. 이 단자는 새알 또는 새알심이라고 하며 어린이들에게 많이 먹이기 위해서 나이 수대로 먹어야 된다고 하였다.
팥죽은 차례(茶禮)를 지낸 다음 제액초복(除厄招福)을 위해 방마루 광 같은 데 한그릇씩 떠다 놓고 또 벽에나 문에 뿌리기도 하였고 악귀(惡鬼)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하여 부적으로 「蛇(사)」자를 써서 거꾸로 붙이기도 하였다.
동지의 유래는 고대 중국 공공(共工)이란 사람의 아들이 동짓날 죽어 역귀(疫鬼)가 되었다. 그런데 이 역귀는 팥을 무서워했으며 동짓날 죽었으므로 이 날이 되면 팥을 쑤어 귀신을 쫓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동짓날 눈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그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해 온다.
(12) 십이월(十二月)
12월은 본격적인 농한기에 해당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다. 이 달에는 납향(臘享)과 제석(除夕)이 있다. 납향은 납일(臘日) 또는 납평(臘平)이라고도 하며 동지 뒤 세째 술일(戌日)로 이 날에는 한 해 동안 지은 농사 형편과 그 밖의 일을 여러 신(神)에게 고하는 납향(臘享), 곧 납평제(臘平祭)를 지내는 날인데 보통 납일이라 한다. 납향에 쓰는 고기는
멧돼지와 산토끼를 쓴다고 한다.
조선조 태조(太祖) 이후 셋째 미일(未日)을 납일로 하였는데 그것은 동방의 성덕(盛德)이 목(木)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수광(李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중국 후한(後漢)의 문인(文人) 채옹(蔡邕)의 설을 인용하여 「청제(靑帝)는 미일(未日), 적제(赤帝)는 술일(戌日), 백제(白帝)는 축일(丑日), 흑제(黑帝)는 진일(辰日)로써 납일로 하였다」고 하고 우리나라가 미일(未日)로 정한 것은 동방(東方)오행(五行) 중에 목(木)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면 우리나라는 납일이 원래는 미일(未日)이었는데 어느 때 술일(戌日)로 바뀌었는지 왜 술일로 다시 정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아직 찾지 못했다.
납일(臘日) 밤에는 고기잡는 족대를 가지고 지붕 추녀를 찾아다니며 참새를 잡는데 그물을 새 집(구멍)이 있는 추녀에 대고 막대로 추녀를 치면 새가 구멍에서 나오다 족대에 걸린다. 특히 납일 밤에 새를 잡아먹는 것은 어린이들에 마마 같은 역질(疫疾)을 물리칠 수 있다는 속설(俗說) 때문이며 또 겨울철 참새는 맛이 좋다고 한다.
그밖에 납일에 내린 눈은 약이 된다고 하여 받아 두었다가 김장독에 넣으면 맛이 변하지않으며 또 옷과 책에 바르면 좀을 막을 수 있고 또 그대로 두었다가 환약(丸藥)을 만들때 쓰기도 하고 그 물로 눈을 씻으면 눈이 밝아지고 눈병(眼病)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12월 30일 곧 섣달 그믐을 제석(除夕)또는 제야(除夜)라 한다. 이 날은 묵은 해를 보내는 송년의례(送年儀禮)가 행해진다. 집 안팎을 대청소하고 밤새도록 불을 밝혀 놓는데 이것은 잡귀(雜鬼)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며 또 웃어른께 구세배(舊歲拜) 즉 묵은세배를 드리는데 이것은 이 해의 마지막까지 무사히 지나간다는 인사이며 또 남의 돈을 빌린 사람은 해를 넘기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이날 모두 청산한다.
이날 밤 집 안팎 등불 아래서 집안 식구 모두가 닭소리를 들을 때까지 자지 않는데 이것을 수세(守歲)라고 한다.
어린이가 졸면 야단을 치면서 「그믐달 밤에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한다.
(13) 윤월(閏月)
윤월은 윤달, 군달이라고도 하며 윤년(閏年)에 드는 달을 말한다. 즉 지구가 태양을 일주하는데 365일 5시간 49분 46초 걸리므로 그 단수(段數)를 모아 태양력(太陽曆)에서는 4년마다 하루 늘려(4백년에 97일) 2월을 29일로 했는데 태음력(太陰曆)에서는 평년을 354일로 정하므로 계절과 역월(曆月)을 조절하기 위하여 5년에 두번의 비율로 1년을 13개월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윤달은 “군달” 또는 “썩은 달” “남의 달”이라 하는 것 같다.
윤달에는 아무 일을 하여도 탈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모든 일을 해도 꺼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렇게 부정(不淨)이 없는 달이기 때문에 화장실 또는 집 대문을 고치기도 하고 수의(壽衣)를 짓고 묘지 이장(移葬)을 하기도 한다.
위와 같이 세시 풍속을 월별(月別)로 대략해서 서술하였다. 이러한 크고 작은 명절로서 즐기는 민간속절(民間俗節)은 모두가 마을 공동체사회(共同體社會)가 중심이 된 농경사회에서 생산과 재생산(再生産)의 사이에서 행해지는 사회적 행동체계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