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군 액
조선시대 전 기간 동안 이 지역은 연안방어의 요충지로써 그 군사적인 중요성을 인정받아 첨절제진이 설치되어, 오늘날의 상비군과 같은 유방군 2여(旅)가 상시(常時)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바다에서는 연해의 방비를 위하여 축산포진과 오포진의 수군진이 설치되어 동해안의 해로를 확보하고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역할을 한 이 지역의 방어를 위한 지방군과 중앙군을 위한 군비(軍備)의 정도를 알 수 있는 것이 군액의 크기이다. 군액이란 군인의 숫자를 말한다. 영덕현과 영해부에 소속된 군액의 정도를 기 발행된 각종 「읍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전기의 군액은 전기의 군제편에 「세종실록지리지」를 통하여 언급하였기에 여기에서는 임진왜란 이후의 군액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우리 지방의 전기의 군액에 대하여서는 자료의 부족으로 상세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후기 군액의 규모로 보아 전기에도 이와 필적할 만한 군액이 이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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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현〉 |
훈련도감포수보 109명,유황군 4명,장락원악공정군 1명,보 19명,호조장인 1명,어영수포군 42명,별파보 5명,제번정군 8명,자보 8명,상번정군 13명,자보 14명,복마보 1 명,병금위영수포군 35명, 제번정군 4명,자보 4명,군기시 별파보 49명,병조내취군 35명,충순보유청군 2명,균역청선무 70명,총융청의승군 2명,순영성정군 8명,작령군관 21명,영수솔군 6명,물선군 49명,사천 19명,춘등병영물선군 66명,사천 19명,추등수영선장군 7명,수군 611명,무학 208명,여사부 4명,속오군 205명, 마대군 20명, 봉군 1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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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영덕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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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장위 1명,기병 44호 보 93명,보병 33호 보 57명, 2인병 보 89명,낙강여정 1명,봉군 17호 보 16명,사복제원 2명, 율생 4명,의생 5명,서원 4명,약부 3명,공조장인 23명,악생 2명 보 10명,선공감장인 2명,수군 34호 보 67명 경포 보 55명,어영군 34호 보 72명,호련대보 5호,금위별대 8호 보 26명,경상보병 2호 보 2명,금위보직 14명,비변사장인 13명,사옹원장인 3명,호조야장인 1명,속오군 233명,별대 1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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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승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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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부〉 |
금위정군 6명,자보 6명,마보 1명,관납보 6명,어영정군 20 명,마보 1명,어보 2명,훈련도감포보 54명,승호포수 1명,병 조납금보 5명,보충대 1명,사복제원 22명,장락원악공정군 1명,보 4명,균역청선무군관 61명,충익부충익위 5명,순영 물선군 43명,중영유황군 11명,병영물선군 53명,수영수군 28명,중영수군 8명,부산진탄사부 450명,봉군 200명,속오군 242명,별대 4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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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영해읍지, 영영승람은 1832년의 영해읍지의 것과 동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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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군액을 살펴보면 정군(正軍,兵)으로 역을 수행하는 경우와 군역 및 기타 재정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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