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조업

  일제 강점기부터 식민지 수탈과 일제의 대외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한반도에는 조금씩 공업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공업화도 한반도 전체의 균형적인 발전에 따른 것이 아니고, 원료조달과 노동력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입지적 여건에 따라 일제의 자의적인 의도 아래 한반도 각처에 공업화가 시작되었으며, 특히 북한지역은 중공업 위주로, 남한지역은 경공업 위주로 공장을 지었기 때문에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고 나서는 기형적인 형태의 공업구조가 되었다.
  이러한 실정에서 본격적인 공업화가 시작된 것은 5.16군사정권이 들어서고 부터라고 할 수 있다. 5.16군사정권은 제2공화국시대에 작성되었던 경제개발계획을 보완하여 제1차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세운 후, 그 재원을 우선 일본에서 구하기로 하였다. 우선 일제가 한반도에서 36년간 수탈해간 보상금을 1차재원으로 하여 한일회담의 타결에 따른 차관을 도입하여 공업화의 시동을 걸었다.
  이러한 중앙정부 차원의 공업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역은 특별한 부존자원이나 공업단지가 들어설 만한 입지여건을 갖추지 못하여 공업화의 소외지역이 되었다. 한때는 영해평야 일대가 제2제철소의 부지로 선택되었다는 소문이 돌아 지역주민들을 꿈에 부풀게하였으나, 소문으로만 끝나 지역민들을 실망시키기도 하였다.
  따라서 광복 이후의 영덕군의 공업수준을 살펴보면 대기업체는 없으며, 수산물 가공이 대부분인 중소기업 중심의 1차 가공 제조업체들이다. 1998년 말 현재 제조업체 수는 106개 업체인데, 그 중 음식료품 제조업이 84개업체인 것으로만 보더라도 이러한 사실은 명백히 드러난다.
  그나마 106개의 제조업체 중에서도 현재 공장이 운영되고 있는 것은 63개 업체에 불과하고 나머지 21개 업체는 휴업 중에 있으며, 건립 중에 있는 업체가 12개 업체, 현재 폐업한 업체가 10개 업체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전체 29%에 이르는 31개 업체가 운영 도중의 자금난과 원료조달과 생산품의 판매의 애로사항에 의하여 휴·폐업하고 있는 실정에 있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1998년 12월 31일 현재 군내에 등록되어 있는 각종 업체들을 살펴보면 다음의 <5-52> 와 같다.

2. 영덕 신공업단지 조성

  농촌의 유휴인력을 활용하여 지역민들의 소득을 높이는 한편,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가져와 살기좋은 영덕군을 만들고자 하여 영덕군에서는 신공업단지 조성을 계획하고 입지여건이 맞는 군내의 여러 곳을 검토한 결과 7번 국도에 인접하여 원료의 운송과 제품의 입출입이 용이한 영덕읍 남산리 일대를 적격부지로 확정하고는 1996년부터 단지 부지조성 공사를 시작하여 현재는 4만 4천평에 이르는 공단부지를 조성하여 우수업체 및 무공해 제품을 생산하는 유망업체의 입주 신청을 받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이들 업체를 유치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8년 12월 31일 현재 영덕신공업단지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으며, 신공업단지가 정상적으로 가동이 된다면 지역의 경제적 발전에 많은 보탬이 될 것으로 군민들은 기대를 하고 있다.
  다음은 1998년 12월 31일 현재 영덕신공업단지에 대한 현황이다.

〈영덕신공업단지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