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통혼례(傳統婚禮)

   조선시대의 모든 의식에는 음양사상(陰陽思想)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 혼례에 있어서도 남자는 양(陽)이며 여자는 음(陰)이다. 낮(日)은 양이며, 밤(月)은 음이다. 옛날에는 혼인의식 시간을 양(陽)인 낮과 음(陰)인 밤이 만나는 곧 음양이 만나는 저무는 시간에 거행했기 때문에 날저물혼(昏)자를 써서 혼례(昏禮)라고 기술하였다.
  또 혼인의 조건에 있어서도 동성동본(同姓同本)간은 금지하였으며 이것은 어길 수 없는 혼인윤리였다. 만약 같은 혈통(血統)이 부부가 되면 그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는 지능(知能)이 떨어질 뿐 아니라 유전병의 발생률이 높기 때문이다.
  혼인연령은 남자는 18세, 여자는 16세 이상이 되어야 했으며 또, 근친(近親)의 상중(喪中) 곧 4촌 이내 상복을 입은 기간에는 혼인을 하지 않았다. 혼인 절차는 모두 3종류의 설(說)이 있다.
  주육례(周六禮)라 하여 지금부터 3천여년 전 중국 주(周)나라 때의 혼인 절차로 납채(納采:剛書를 보내는 것) 문명(問名: 청혼과 허혼의 절차 신랑 또는 신부 이름을 묻는것) 납길(納吉: 남자측에서 허혼(許婚)을 여자측에 전함), 납징(納徵:남자측에서 여자측에 허혼(許婚) 징표로 물건을 보냄), 청기(請期:남자측에서 혼인 날짜 청함), 친영(親迎:예식을 올림)이다.
  주자사례(朱子四禮)라 하여 지금부터 약 8백여년 전 중국 송(宋)나라 학자 주희(朱熹)가 주육례(周六禮)가 번잡하다하여 그것을 4가지로 축소한, 즉 『주자가례(朱子家禮)』의 혼례로 의혼(議昏):남·여 양측이 혼인할 것을 의논함) 납채(納采:남자측에서 여자측에 허혼(許婚)함을 알림), 납폐(納幣):남자측에서 여자측에 예물을 보냄), 친영(親迎:예식을 올리는 절차)이 있다.
  이러한 혼인례가 4가지로 된 『주자가례』를 숭상하면서도 육례(六禮)를 갖춘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우리의 전통관습에 의한 혼인 절차가 육례로 되었기 때문이다. 육례란 혼담(婚談:남자측에서 청혼, 여자측에서 허혼한다는 절차), 납채(納采), 납기(納期:여자측에서 택일해 보내는 절차) 납폐(納幣), 대례(大禮:신랑이 신부집으로 가서 의식을 행함), 우귀(于歸:신부가 시댁(媤宅)으로 들어가는 절차)가 있으며, 또 납채(納采), 문명(問名), 납폐(納幣), 청기(請期),친영(親迎), 신영(新迎:신행) 등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방마다 또는 문중(門中)마다 명칭에 있어서는 대동소이(大同小異)했으나 의식은 같았다. 간략하게 몇가지 기술해 보기로 한다.

1) 납채(納采)

  납채란 남자측에서 청혼하여 여자측에서 허혼(許婚) 했을 때, 정혼(定婚:約婚)을 해야하는 그 절차가 납채로 남자측에서 여자측으로 보낸다.
  먼저 남자의 생년(生年), 생월(生月), 생일(生日), 생시(生時) 곧, 사주(四柱:四星)를 두꺼운 한지에 붓으로 써서 5칸으로 접어 봉투에 넣으나 봉하지 않고, 또 납채한다는 취지에 편지인 납채서(納采書)를 두꺼운 한지에 붓으로 써서 청홍(靑紅) 겹보로 싸는데 홍색이 밖으로 나오게 싼 다음 중간 부분을 청홍색실로 나비매듭으로 묶는다.

 
 
 
  엎드려 다시 아뢰나이다. 선생님께서 사랑을 베푸시어 저희 한미함을 얄보지 않으시고 청혼에 따르시어 따님을 저의 아들 아무의 아내로 허락해 주시니 광영이옵니다. 이에 옛 예절에 따라 납채의 의식을 행하오며 감히 혼인 날짜를 청하오니 선생님께서 어여삐 여기사 굽어살피시기를 바라오며 다 펴지 못하나이다.

  봉투 서식은 앞면은 상장(上狀) 본관 아무 존택(尊宅) 하집사(下執事)라 쓰고 뒷면은 본관 아무 재배(再拜)라 쓴다. 납채를 보낼 때 사당(祠堂)에 고하는 축문(祝文)이 있다.

2) 납기(納期)

  여자측에서 택일하여 남자측에 보내는 절차를 말한다.
  택일(擇日)에 있어 옛날에는 기러기를 올린다는 뜻인 전안(奠雁)을 하는 시기를 간지(干支)로 썼으나 현대로 내려오면서 혼인일시를 숫자로 썼다.
  택일은 두꺼운 한지에 붓으로 쓰고 5칸으로 접어 봉투에 넣으나 봉하지 않고 청홍겹보로 싸는데 청색(靑色)이 밖으로 나오게 하고 중간부분을 청홍색 실로 나비 매듭을 하여 묶는다.

 
 
 

엎드려 다시 아뢰나이다
선생님께서 사랑을 베푸시어 저희의 누추함을 버리지 않으시고 큰아드님 OO 군의 배필로 저의 둘째딸 OO 를 가려 짝지으시니 용렬한 터에 또한 가르치지 못하였으나 이미 채택하심을 입었으니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듭 혼인날짜를 청하시니 따로 적어 올리나이다.
엎드려 선생님께서 어여삐 여기사 특별히 살피시기를 바라오며 다 펴지 못하나이다.

봉투서식은 납채와 같다. 여자측에서도 사당에 고한다.

 
 
3) 납폐(納幣)

  납페란 남자측에서 여자측에 예물(婚需)을 보내는 절차이다.
함에 신부(新婦)의 옷감인 예물, 곧 채단(綵緞)은 청단과 홍단으로 하며, 포장은 청단은 홍색종이로 싸고 홍단은 청색종이로 싸서 중간을 청실홍실로 나비매듭하며, 함안에는 흰종이를 깔고 청단과 홍단을 넣은 다음 흰종이로 덮고 그 위에 납폐의 종류와 수량을 적은 물목기(物目記)를 적어서 넣는다.

 
 
 

  함은 청홍겹보를 싸는데 홍색이 밖으로 나오게 하고 매듭에는 “근봉(謹封)”이라 쓴 봉함지를 끼우고 무명 1필로 멜끈을 만들어 묶는다.
  또 남자측에서 여자측에 예물을 보낸다는 취지의 편지인 납폐서를 쓰는데 일명 예장지(禮狀紙)라고도 하고 혼서지라고도 한다. 이 예장지는 두꺼운 종이에 붓으로 써서 봉투에 넣는데, 봉투는 아래와 위를 틔우고 상·중·하 세곳에 “근봉(謹封)”이라 쓴 봉함지를 끼운다.

 
 
 

엎드려 생각하오니 초여름이온데 높으신 몸 기력 안녕하오신지요. 저의 큰아들 OO는 나이가 들었으나 아직 배필이 없더니 존자가 따님을 아내로 허락해 주시니 이에 옛사람의 예를 따라 삼가 납폐의 의식을 행하옵니다. 엎드려 (선생님)께서 굽어살피시기를 바라오며 삼가 절하면서 글월 올리나이다.

  납폐서 봉투는 청홍 겹보로 홍색이 밖으로 나오게 싸고 더러는 다른 상자에 넣어서 겹보로 싸기도 한다.
남자측에서는 사당 소탁 위에 납폐함을 올려놓고 축문으로 조상에게 아뢴다.

4) 대례 (大禮)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는 의식인 혼인예식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새출발 이기 때문에 가장 큰 의례라는 의미로 대례(大禮)라 한다.
  중국의 혼례는 남자가 여자를 데려다가 남자 집에서 혼인예식을 하기 때문에 “친히 맞이한다.”는 뜻으로 친영(親迎)이라 하였는데 우리나라의 혼인례는 여자 집에서 혼례를 행한다.
  혼례의 절차를 대략해 보면 먼저 신랑이 신부집에 기러기를 드리는 의식인 전안례(奠雁禮)가 있고, 신랑과 신부가 처음 만나서 맞절하는 절차인 교배례(交拜禮)가 있고, 하늘과 땅에 행복한 부부가 될 것을 서약하는 절차인 서천지례(誓天地禮)가 있는데, 여기서 신랑은 신부에게 읍(揖)하고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않고 신부는 신랑에게 몸을 굽혀 답례하고 서쪽자리에서 동쪽을 향해 앉는다(東婦西) 즉, 하늘은 양(陽)이고 땅은 음(陰)이듯이 동은 양이고 서는 음이다.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므로 음양사상에 의해서 의식이 진행되었다. 따라서 신부는 두 번 절하고(婦先再拜) 신랑은 한 번 절한다.(答一拜) 이것도 음양사상(陰陽思想)에 의해서 한 것이지 남성우월주의, 즉 남존여비(男尊女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1은 양수(陽數)이고 2는 음수(陰數)이다. 따라서 여자는 음이기 때문에 두 번 절한다는 뜻이다.
  그 다음으로 훌륭한 남편과 아내가 될 것을 서약하는 절차인 서배우례(誓配偶禮)와 부부가 되었다는 선언적인 절차인 근배례(杯禮·合禮)가 있고 첫날밤을 보내는 합궁례(合宮禮)가 있으며 신랑을 따라 시댁(媤宅)으로 들어가서 며느리로 치르는 의식인 우귀례(于歸禮)가 있다.

 
5) 하객(賀客)

  그 마을에 혼례(婚禮ㆍ大禮)나 신행(新行)집이 있으면 감주(甘酒,단술) 또는 술 떡(餠) 등 현물을 집에서 정성스레 마련하여 부조(扶助)로 혼인집으로 가져가며 혼인집에서는 국수와 떡 술 등을 정성껏 상에 차려 왔다. 하객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잔치집에서 마음껏 즐기면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전통혼례는 거의 볼 수 없지만 서울에서는 명륜동 성균관(成均館)정원이나 충무로 한국의 집에서 가끔 거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2. 신식혼례(新式婚禮)

  1960년대 이후부터 전통혼례 대신 서양식 혼례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시대조류에 따라 남녀관계도 중매보다 연애혼인이 많아졌으며 부모의 허락은 형식에 불과하였다. 그것은 혼인연령과도 관계가 있었다. 대부분 남자는 28∼29세 여자는 24∼25세로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양가에서 약혼식을 하고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된다. 식장에는 주례(主禮)와 사회자 그리고 양가부모 하객(賀客)이다.
  절차는 대략해서 신랑입장 이어 신부입장이 있는데 아버지가 딸을 인계하는 의식이다. 신랑ㆍ신부 맞절(相見禮)이 있고 결혼선서 주례사(主禮辭), 신랑ㆍ신부 하객에게 인사하는 순이다. 약 30분이면 식은 모두 끝난다.
  하객을 초대하는 안내장은 청첩장(請牒狀)ㆍ초청장(招請狀)ㆍ초대장(招待狀) 모시는 말씀 등 다양하다. 서식(書式)의 예를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혼일 날짜는 대부분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이다.
  하객은 봉투에 “축화혼(祝華婚)” “축의(祝儀)” “축 성전(祝盛典),” “축 성혼(祝盛婚)”등 이라 쓰고 현금을 넣는다. 이러한 현금부조 때문에서인지 초대장을 함부로 보내는 혼주도 가끔 있다고 한다. 청첩장은 친척이나 아주 절친한 사이가 아니면 보내지 말아야 한다. 실례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