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명한 여인 장 씨(張一氏) : 본관은 안동으로 장흥효의 여식으로 재령 이씨 석계 이시명의 처다. 품성이 정숙하고, 지혜로웠다. 경전과 사서에 능통하였으며, 붓글씨와 시문에 능하였다. 슬하의 존재 이휘일, 갈암 이현일 등의 여섯 아들을 모두 이름난 학자로 키웠다. 문집이 있다. 이 씨(李一氏) : 본관은 전주로 어모장군 이천일(李天逸)의 여식이다. 현종 2년(1661)에 왕세자의 유모로 간택되어 지성으로 돌보았으며, 숙종이 1675년에 등극하자 봉보부인(奉保婦人)으로 봉해졌으며, 숙종 25년(1699)에 숙종대왕의 탄신을 축하하고 난 후에 병을 얻어 죽었다. 숙종이 애도하며 직접 장례제수를 하사하였다. |
2. 우 애 김국보(金國寶) : 본관은 야성으로 김남중(金南重)의 아들이다. 동생들인 국채, 국삼, 국근, 국건들과 우애가 남달라 한집에 살면서도 재물에 있어서 네것 내것이 없었다. 영조대에 선조 김선호의 공훈으로 통덕랑을 음직으로 받았다. 김기연(金基淵) : 본관은 야성으로 호는 채화정이며, 정랑 김계손의 후손이다. 효성과 우애로써 가정과 스스로를 다스렸으며, 근엄하고 조용한 곳을 좋아하였다. 동생들인 기의, 기리, 기갑 등과 군의 남쪽 장령산(長嶺山)에 은거하며, 책상을 맞대고 강마, 궁구하며, 평생을 보냈다. 김이봉(金履鳳) : 본관은 김녕으로 통정대부 김득선의 6세손이다.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 네것 내것이 없었으며, 착한 행위를 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았으니, 하늘이 먹을 것을 주어 가난하지 않았다. 한문호(韓文昊) : 본관은 청주로 참판 한계선(韓繼善)의 후손인 한상언(韓相彦)의 아들이다. 원래 선비 집안으로 대대로 가범(家範)을 지켜왔으며, 천성이 청렴결백하였고, 일찍 학문을 하여 효성으로 부모를 받들었으며, 여러 동생들과도 우애가 깊었으며, 화목함을 가정의 근본으로 삼았다. 규범을 잘 지킴으로 향리에서 비유하여 강주가법(江州家法)이 있다고 하였다. 김기수(金璣洙) : 본관은 김해로 호군 김시태의 5세손인 통정대부 김치수(金致洙)의 동생이다. 타고난 성품이 우아하고 고결하였으며, 효성으로 부모를 모시고, 형을 공경하여 4형제들과 상을 나란히 하여 천륜을 독실히 닦아 나가니,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였으며, 두려워 반성하는 의미로 사자옹(四玆翁)이라 하였다. 김종석(金鍾奭) : 본관은 경주로 참봉 김정곤(金定坤)의 아들이다. 본성이 순후하였으며, 효성으로 부모를 모셨고, 형제 5인과는 한 베개를 베고 잘 정도였으며, 혹 색다른 맛의 음식이 있으면 반드시 가져와서 서로 나누어 먹으니, 사람들 모두가 쉬운 일은 아니다 라고 하였다. 김현식(金玹植) : 본관은 김해로 가선대부 김제원(金濟元)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효성으로 부모를 모셨으며,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하였다. 동생들인 연식, 영식, 일식, 과는 우애가 돈독하여 유산도 균등하게 나누었으며, 자식과 조카들 사이의 교육에 있어서도 차이를 두지 않았다. 가정에 화기가 애애하여 강주가의 법을 본받았다고 하였다. |
3. 아름다운 행위 서련순(徐璉淳) : 본관은 대구로 참봉 서경치(徐景穉)의 후손으로 서책과 농사를 겸하며 산 밖의 일에는 간여를 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숨은 은사라고 칭송하였다. 경세진(景世鎭) : 야와(野窩) 경정윤(景正允)의 증손이다. 뜻이 독실하였으며, 스스로를 지키며, 명리를 멀리 하고 서책과 사서로서 스스로를 즐겼다. 김련이(金蓮伊) : 본관은 김녕으로 김해수의 처이다. 성품이 단정 정숙하였으며, 30의 나이에 지아비가 죽자 시부모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어려운 삶을 영위하면서도 시부모를 지극히 모셨다. 이 씨(李一氏) : 본관은 영천으로 이광규(李光珪)의 여식이다. 배정찬(裵綎燦)의 처다. 나이 24살에 지아비가 병들자 온갖 정성으로 구완하였으며, 하늘에 대신 아프길 빌며, 몇 번이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이는 등의 정성을 기울였으나, 종래에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 마침 젖먹이가 있어 따라 죽지 못하고 삼년 동안 죽기를 각오하고 삯바느질 등으로 재산을 모아 제기와 농토를 마련하고 비를 세우고, 3대를 정성껏 받드니 원근에서 칭송을 하였다. 배효강(裵孝綱) : 본관은 김해로 참봉 배두찬(裵斗燦)의 아들이다. 문행이 있었다. 김 씨(金一氏) : 본관은 광산으로 김영조(金永祚)의 여식이다. 나이 19살에 밀양 박영상(朴永祥)에게 겨우 초례를 치르고 우귀를 가기 전에 지아비가 병을 얻어 요절하였다. 바로 죽으려고 하였으나, 부부의 의리보다 시부모를 모실 사람이 없어 지극한 예로서 장례를 치르고 모진 목숨을 부지하며 시부모를 모셨다. |
4. 의 술 이상욱(李尙旭) : 본관은 월성으로 호는 양와(養窩)고, 호군 이장춘(李長春)의 6세손이다. 본성이 총명하였으며, 입신양명을 뜻을 갖고 일찍이 자치통감을 읽다가 어진 재상이 되지 못하면 마땅히 어진 행의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구절을 보고는 정성을 다하여 편작과 창공의 기법을 연구하여 증세를 살펴 조제를 하여 투약하면 금방 효험을 보았다. 소문에 기사회생의 명의 이상욱이라 하였으며, 잡증기방(雜症奇方)이 집안에 비장되어 있었다. |
5. 명 필 주 열(朱一烈) : 본관은 신안으로 글씨를 잘썼다. 김하구(金夏九) : 본관은 수안으로 예서를 잘 썼으며, 서법의 책이 남아 있었다. 김의봉(金儀鳳) : 본관은 야성으로 김응황(金膺璜)의 아들이다. 7살에 자획을 이루었으며, 점차 크면서 6법에 능통하였으며, 만년에 명필로 이름이 났다. 송대만(宋大萬) : 영덕읍 화개리 출신으로 조선시대 말엽의 인물이다. 명필가이면서 한학자로 이름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