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향토 문학의 맥락

1) 문학의 이해

“선생님 시인이시군요”. 그 소녀는 말했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뜻이 달라요.” 하고 소녀는 이어서 “선생님이 소설이나 시를 쓰시는 탓으로 시인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랍니다. 나무가 속삭이고 골짜기에 햇빛이 내려 쬐는 것이 다른 분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이지만 선생님은 그 속에 생명 속에서 나무와 산과 함께 살고 계시지 않으세요.”
   이 말은 독일의 시인이며 소설가인 헷세의 소설 「향수」에 나오는 말이다. 높은 참된 의미에 있어서 문학하는 것이란 < 구경적인 삶의 형식이다>고 소설가 김동리씨는 말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구경적인 삶의 형식이란 무엇이냐? 우리가 산다는 것의 형태에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가 생명현상으로서의 삶, 둘째가 직업적인 삶, 셋째가 구경적인 삶이다.
   그러면 첫번째로 무엇이 생명현상으로서의 삶인가? 생명현상으로서의 삶이라 함은 금수나 축류(개, 돼지, 소… 등)가 사는 것과 같은 넓은 의미로 모든 생명현상을 통털어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 마리의 개나 멧돼지나 참새처럼 생명이 깃들어짐으로 살아있는 그들의 사는 것, 그것이 생명현상으로서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로 직업적인 삶이란 어떤 삶을 말하는 것일까? 직업적인 삶이라 함은 < 그들은 나서 자라서 직업 혹은 실업(實業)과 가정 혹은 실연을 갖게 되고, 그 다음은 먹고 잠자고 직업적인 일을 하고, 그러다가 무슨 놀이(유흥, 위안)을 가끔 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늙어서 그만인-이것은 인류라는, 동물의 영위라는 가장 일반적인 삶의 형태인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구경적인 삶이란 어떤 삶을 말하는가? 구경적인 삶이라고 하면 < 비교적 안일하게, 비교적 편리하게, 비교적 여유있게, 비교적 즐겁게 몇 10년을 사는 대로 살다 없어져 버리는 것> 그것에서 삶의 의욕이 끝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이상의 것을 바라게 될 것이다. 그들은 죽음으로써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것에 삶이 이어지기를 희구하고 김동리씨의 말을 빌린다면< 자아 속에서 천지의 분신을 발견하려고>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 한사람씩 천지 사이에 태어나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천지 사이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통하여 적어도 우리와 천지 사이엔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 유기적 관련>이 있다는 것과, 그리고 이 유기적 관련에 관한 한 우리들에게는 공통된 운명이 부여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에게 부여된 우리의 공통된 운명을 발견하고 이것의 전개에 지향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이 사업을 수행하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천지의 파편에 그칠 따름이요, 우리가 천지의 분신임을 체험할 수는 없는 것이며 이 체험을 갖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천지에 동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우리의 이 공통된 운명을 발견하고 이것의 타개에 노력하는 것, 이것이 곧 구경적 삶이라 부르며 또 문학하는 것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빵 이외의 욕망을 탐구하기에 불행하고도 행복한 것이 아닐까? 이 말은 시인 신석정의 말이다. 그는 <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글에서 위에서처럼 말한 것이다. 그리고 < 시를 쓴다는 것은 삶에 대한 불타오르는 시인의 창조적 정신에서 결실하는 것이므로 대상하는 인생을 보다 더 아름답게 영위하려는 의욕과 그것을 추구 갈망하는 데서 제작된다면 그 시인의 한 분신이 아닐 수 없다>라는 것이다.
   위의 말을 통하여 어름하게나마 < 문학이 무엇이라> 함을 짐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 직업적인 삶> 이상의 것, 혹은 불행하고도 또한 행복한 < 빵 이외의 욕망을 탐구> 하는 것, 즉 < 구경적인 삶> 이거나 < 인생을 보다 더 아름답게 영위하려고 의욕하고 그것을 추구 갈망하는 것>이나 간에 문학이란 보다 더 높고, 아름답고, 착하고, 선하고, 보람있는 삶에 대한 갈구요, 그 갈구하는 정신에서 우러나는 사실에는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문학이라는 것의 가장 터전이 되고, 기본이 되고, 줄기가 되는 것이다.
   이 높고 아름다운 삶에 대한 갈구로 말미암아 그것을 추구하는 강렬한 의욕으로써, 우리는 인생에 대한 한결같은 깊은 체험을 쌓고 밝게 살피며 참된 인생, 깊고 전체적인 인생의 뜻을 캐게 되리라. 이런 갈구로써 우리는 자기의 영혼과 문답을 하게 되고 우리의 삶이 넓혀지고 깊고 너른 인생과 동화되는 이 숭고하고 장엄한 작업이야말로 문학한다는 것이며, 그것에 종사하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시인이며, 참된 소설가며, 참된 예술가일 것이다.

2) 현대시에 대하여

   시에 대한 모든 정의는 애매한 것과 오류의 역사라고 지적한 < 엘리엇>의 말을 그대로 시를 문학이라는 말로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이야기를 되돌려 헷세가 그의 소설에 어느 소녀를 통해서 시나 소설을 쓴다고 시인이 아니라고 말한 것에 해답은 이미 위에서 밝혀진 것이다.
   서두에서 나무가 속삭이고 골짜기에 햇빛이 내려 쬐는 것이 다른 분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이지만 선생은 그 속에 생명이 있으며 그 생명 속에서 나무와 산과 함께 살고 계시지 않으세요.
   이 말이야말로 떠 흐르는 구름에 인생의 무상을 깨닫고 자연에 귀의하여 그 품안에서 법열을 느끼고 영혼의 의식과 안(內界)으로 깊이 침잠한 고독한 인생의 순례자로서 그가 그의 문학적인 소신을 가장 단적으로 밝힌 구절이다.
   헷세가 「향수」라는 소설에 나오는 어느 소녀라 함은 이름이 < 에리자베트>다. 그 < 에리자베트>는 헷세의 영원한 소녀이며 영혼의 사모자이기도 하다. 그 에리자베트를 노래한 시는 다음과 같다.

높은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인양
당신은 아득합니다.

에리자베트여
구름은 떠가며 헤매이건만
당신은 눈여겨 보지 않습니다.
허나 어둔 한밤중
구름은 당신 꿈속으로 흘러 떠나리다

구름은 흐르고 흐르는 구름의 너무나 눈부신 은빛
그 후로는 노상
당신은 우러러 흰 구름에 나긋한 향수를 느끼게 되오리다.

  높이 떠가는 구름을 우러러보며 아득한 사모를 보내는 이 자세, 이것은 < 에리자베트>라는 여인을 사모하는 것이기보다 바로 헷세가 참 삶을 꿈꾸며 갈구하며, 그러나 인생 그 자체를 쓸쓸한 미소를 보내는 그의 영혼의 모습이며, 그의 작품 속에 담겨진 찬란한 세계의 상징적인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정말 시는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개를 느껴야 하며 아침에 벌어지는 작은 풀꽃의 수줍음까지 알아야 한다. 한 줌의 모래 속에서 자연을 발견하고 들에 피는 한 포기의 꽃속에서도 자연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 시작의 태도이다.
   우리는 어떤 사물에서 감동을 받게 된다. 그 감동에서 새로운 것,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 최선의 것이라는 공식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모든 사물을 감동이 깃든 눈으로 봄으로써 그것이 < 처음 발견된 것> 처럼 싱싱하고 새로운 존재로서 우리에게 비치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시를 쓰는 일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물이나 사실에 대하여 너무나 쉽사리 ‘아는 것'으로 처리하게 된다. 그러므로 “물은 불을 꺼주는 것이”며 “불은 물을 데워주는 것”의 놀라운 사실 - 물과 불의 관계를 우리는 평범하게 생각해 버리고 만다.
책상은 책을 두는 편리한 물건에 불과한 것일까? 집은 과연 사람이 거처하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오랜 방황 끝에 부모 형제가 사는 집에 돌아와 발을 들여놓자 문득 발견한 자기 집에 대하여 형언할 수 없는 반가움과 다정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 집은 우리가 거처하는 단순한 집이라기보다 “아아! 그리운 나의 집” 하고 부르짖을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사물에 대하여 너무나 굳어버린 지각의 두터운 막을 쳐두기 때문에, 그것의 참된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사물에 어떤 감동을 느끼는 순간, 이 통속적인 시각의 막은 무너지고 우리는 전혀 < 새로운 것>으로 집을 혹은 노란 꽃이 핀 들판에 날아드는 한 마리 나비를, 물과 불의 관계를 느끼게 된다.
   새롭다는 것은 사물의 참된 존재를 발견하는 일이며, 사물과 사물 사이의 참된 관계를 감동을 통하여 우리에게 깨우치게 된 인식의 세계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누구나 다 인식하는 < 집>이 아닌 참된 그 집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 때 부르짖는 < 찬탄의 소리>는 어떤 사물이나 사물과 사물의 관계에 대하여 누구나 다 느낄 수 있고, 아는 사실로서가 아닌 우리 생명의 가장 순수한 소리요, 마음의 진실한 소리이다.
   그러므로 참된 시는 진실된 마음과 참되게 느낀 것이라야 하고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말이라야 하며 혀끝에서 지껄이는 말이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지적한 < 진실된 마음>이나 < 참된 느낌> 이라는 것은 곧 감동이 깃든 작자의 마음이나 그 느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동 속에 시가 배태되는 것이며 그것을 언어로 나타낸 것이 시(시작품)라 할 수 있다.

3) 향토문학의 맥락

   한 고을이 한 나라의 지방이듯이 향토문학은 곧 우리 민족문학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역 문학의 맥락을 살펴본다는 것은 민족문학이라는 숲을 이루고 있는 지방이라는 나무들의 건전성을 살펴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 지역은 옛날부터 문풍(文風)이 풍부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고려말 이유헌 신득청(申得淸)의 「역대전리가(歷代轉理歌)」라든가 역동 우탁, 가정 이곡, 목은 이색, 근재 안축, 운곡 원천석 등의 문사들이 이 지역에 우거 혹은 유람하면서 지역의 문풍를 일으키는데 일조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유교가 통치이념이 되면서, 유교의 기본경전인 「사서삼경」 등을 알고 시와 부(賦)를 지을 수 있는 소양을 가진 자라야 지배층으로 편입될 수 있는 풍토가 됨에 따라 지역마다 많은 학교와 사숙이 생겨 문풍을 진작시켜 나갔는데, 우리 지역도 이러한 흐름에 따라 많은 문학인이 배출되었다.
   또한 중앙정계로부터 죄를 얻어 이곳으로 유배 온 이들에 의해서도 우리 지역의 문풍이 보다 풍부해지기도 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가성(歌聖)으로 불리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를 들 수 있다. 고산은 이곳에 귀양 와서 잠시 머무는 동안 20여 수에 이르는 주옥같은 시와 부를 남겼으며, 귀양기간 동안 지역의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시대에는 그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민족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논설 위주의 동인지 < 야봉(野峰)>이 1920년대 말부터 3집까지 발간되어 지역의 문풍을 날렸으며, 지품면 원전리 출신의 임영창(林泳暢)이 1933년도에 〈종교시보〉란 잡지에 시조 「일편단심」을 발표하면서 근대 시문학이 본격적으로 움트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제시대에는 우리 말과 글의 사용조차 금지된 가혹한 압제와 지역문인들의 수가 많지 않은 관계로 뚜렸한 문학적인 성취를 이루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1945년 광복이 되어 우리 글과 말로 우리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시대가 도래하면서부터 지역의 문학활동은 장족의 발전을 보게되었다. 특히 우리 지역에서는 광복 정국의 어수선함과 6.25한국전쟁이란 미증유의 불행한 기간을 거치면서 지역문학이 배태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시기에는 최해운이 〈문예〉지에 「유성(流星)」으로, 박윤환이 〈신문학〉지에 「매아미에게」가 각각 추천 등단함으로써 문단에 등단한 시인이 배출되기 시작하였으며, 나아가 6·25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5년에는 최해운을 중심으로 지역의 문학애호인들이 모여 ‘토벽(土壁)'이라는 동인지를 내면서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지역문학 활동이 움트기 시작하였다.
   이후 영해에서는 박윤환, 최복해, 남병규, 권경달, 남용진씨 등이 주축이 되어 젊은 의욕과 활기로 건전한 문학 풍토를 마련하겠다며 ‘향림'이라는 동인지를 만들어 문학활동을 하였는데 이 동인지는 제4집까지 발간되면서 지역의 문학동인들의 발표의 장이 되었다.
   이후 1953년에 종합문예지 < 문예>와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 고장 출신의 시인 최해운씨가 대구에서 < 예술집단>이란 문예지를 3집까지 내어 주목을 받으면서 지역 문단의 역량을 드러내어 주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1957년께 최해운씨의 주도 아래 향토에서 최초의 시화전을 청운다방에서 일주일 동안 열어 지역인들에게 문학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는 계기를 마련하였는데 이때에 참여한 이 들로는 최해운, 박윤환, 이장희, 이태희, 김대두, 장성화 등이었다.
   또한 < 신문학>지의 추천을 받은 박윤환 시인이 1953년도에 < 전설>이란 시집을 펴내면서 지역에서 본격적인 문학인들이 배출되기 시작하였으며, 이장희가 〈서정의 여로〉라는 시집을 펴내면서 지역의 문학활동은 보다 성숙한 단계로 접어들 게 되었다.
이러한 향토문학의 배양토 속에서 1960년도 초에 < 꽃조개>라는 문학 동인회가 탄생하였다. < 꽃조개>는 순수한 창작모임이 아니고 문예연구회였지만, 이 고장에 뿌린 씨앗을 결코 헛되지가 않았다.
  < 꽃조개>는 군내 학생들의 정서 교육을 기름지게 하고 동인들의 자기 연수를 위해 1960년 8월 2일에 영해 대진해수욕장에서 창립을 보았는데, < 꽃조개>의 창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이장희였으며, 대표적인 참여문인으로는 남권모(대구 월성국교장), 이용직(안동고교 교감) 등이며, 주로 초·중고등학교 국어 담당교사로 구성된 < 꽃조개>는 참여문인들의 남다른 정열로 15집까지 발간되었으며, 향토 시화전, 아동시화전 등 다채로운 문화 활동을 했던 것이다.

 
  < 꽃조개>의 전성기는 1960년대 중반기였다. 김녹촌씨가 이곳에 장학사로 부임해 오고 손춘익, 권용철, 권오삼씨 등이 교사로 부임해 오면서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 꽃조개> 동인에서 참여하였던 많은 동인들이 이후 문단에 등단하여 아직까지도 현역에서 맹활동을 하고 있는데, 지금도 중견작가로 무게있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 꽃조개> 동인 출신으로 문단에 등단한 이들을 밝혀보면 권용철(경향신문), 손춘익(조선일보), 김녹촌(동아일보), 권오삼(월간문학)씨 등이 있으며, 영덕읍 남석리의 이장희가 〈아동문학〉지에, 강구면 강구리의 이태희가 〈현대문학〉지에 추천을 받아 문단에 등단하였으며, 1970년도에는 앞의 이장희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지역의 문학활동은 「칠령문학회」가 담당하였는데, 1968년에 창립한 칠령문학회는 1972년부터 「칠령」이란 제호로 문학지를 창간하여 1983년까지 제11집을 발간하고는 다시 제12집부터 제25집까지는 「칠령문학」 제호로 발간하였으며, 제26집부터는 「영덕문학」이라는 제호로 꾸준히 문학지를 발간하여 오고 있다.
  칠령문학 회원 가운데는 초대 회장인 박윤환씨가 3권의 시집을 냈고, 평생회원으로 가입한 < 시문학>지 추천으로 등단한 김재진씨가 6권의 시집을 냈으며, 육수범 회원이 1989년에 시 전문지인 < 시와 의식>지와 종교문예지인 < 문학> 양지에 각각 당선됨으로 등단되어 금년 내로 첫시집 < 일어나는 흙의 신화>를 발간하게 된다. 그리고 1990년에 김도현 회원이 월간 < 농민문학>지와 1991년에 월간종합문예지인 < 문학세계>지 양지에 각각 당선되었으며 1993년에는 시집 < 그리운 물빛 판화>를 발간하였다.
  한편 영덕읍 남석리 출신의 정라곤은 1984년 대구매일 신춘문예(시부문)와 현대문학을 통하여 등단하였으며, 1989년 < 꽃의 이름으로>라는 시집을 발간하는 등 맹활약을 하고 있다. 또한 창수면 오촌리 출신의 권동기는 처녀시집 「천행시」로 문단에 나와 현재까지 제7시집을 출간하는 등 창작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4) 현대 문학의 순례

   현대의 영덕문학의 흐름은 크게 시를 쓰는 시인과 수필을 쓰는 수필인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시는 사물을 보고 느낀 바와 자기의 감성을 언어를 조율하여 나타내는 문학의 한 장르이며, 수필은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여러 감상을 촌철살인의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다. 특히 우리 지역은 낙동정맥이 급경사를 이루며 그 뿌리를 동해에 수직으로 담그고 있어 해안선이 아름다운 지세를 가지고 있으며, 강하게 불어 치는 남태평양의 저기압, 소금기 머금은 해풍의 소용돌이 등의 자연환경이 만들어주는 영향으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심성들이 다정다감하게 변하여 이성적인 성찰이 필요한 소설가보다 감성이 풍부한 시인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
   다음은 우리 지역에서 배출된 시인과 수필인들의 작품들이다. 문학이란 것은 어떤 의미에서 삶의 지표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지역 출신으로 문학활동을 하고 있는 숫자가 군민 전체에 비하여 아주 적은 수이기 때문에 여타 제약 조건에도 불구하고 현재 생존하여 활동하는 인물까지 그 범위를 넓혀서 이번 군지에 싣기로 하였다. 또한 등재된 문인들 이외에도 많은 문인들이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사료되나, 과문한 탓으로 전부 싣지를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양해가 있길 바란다.

◆ 임영창(林泳暢 1917∼2001)
   호는 일묵(一默), 또는 한가람. 필명은 임삼(林三)이고 지품면 원전리 태생의 시조시인이다. 건국대학교 정치과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 효성여자대학교, 한국항공대학, 마산대학 등의 교수, 대구일보와 영남일보 논설위원, 마산일보, 한국경제일보 주필, 거사불교(居士佛敎) 주간, 불교문화 발행인, 전국문총함안지부장(51), 한국문협 마산지부장(65), 성남시지부장(81), 현대시조시인협회장(84) 등을 역임. 한국불교문인협회를 창립하여 16년간(1985∼2001) 회장을 맡아 이끌어 왔음.
   시조 (일편단심< 종교시보,1933>), (흰눈앞에서<1934>), (어머니< 중앙일보,1934>)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성남예술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시집 「연륜」, 「세월따라 인연따라」, 「오후의 시」, 「한 70 살다보니」, 「삼보송」, 「나」, 「벙어리」, 「뻐꾸기」 등이 있고, 불교 선집으로 「문장(文章)의 초원을 거닐며」(1986), 「룸비니의 꽃향기」(1986), 「사파여로(娑婆旅路」(1986) 등이 있음. 작품 경향은 동양정신 특히, 불교사상이 기조가 되어 심층의식의 내면적 형이상학에 입각하고 있으나, 이미져리에서 유머어와 시니크가 배합되어 있으며, 표현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데서 이루어지는 (실험적이 아닌) 모더니즘을 지향하고 있다.

사군자송(四君子頌)


옹졸한 모습이오나 거칠은 몸매오나
매운 눈보라 속에 봄이 그려 애타는 맘
자그만 꽃망우리에 뜻을 부쳐 피오니


잎새 못되어서 함박 꽃잎 못되어서
어리고 수집은 몸 행여 누구 탓할세라
바위 틈 그늘진 곳에 두 손 모아 앉으오니


꽃은 피면서 지는 잎은 푸르듯 누르고
누리 고운 꿈이 갈래갈래 찢기울 제
맑은 달 서릿김 속에 홀로 향내 풍기오니


곧이 살으오리 푸르러이 살으오리
텅 비인 속이오나 마디만은 지니오리
한 줄기 푸른 하늘로 뻗어 올라 사오리니

가을산조(散調)
보름새 무명도포에 메투리 신발로
가을은
패랭이꽃 핀 언덕을 넘어서 온다
청자 항아리에 성리학을 담아 들고
계면조 시조 한 가락을
흥얼거리며 찾아온다.

창백하던 대추볼이
조선조의 수집음으로 발그레하고
열사흘 달과 교접한
박덩어리의 알몸은 만삭이 되어간다

기러기 한 떼가
청모시 같은 하늘을 자질하는데

꽃보다 더 붉은 단풍이
마지막 정염(情炎)으로 불을 태운다
찢어진 비닐 우산처럼 시시한
어느 오후
땅을 기는 회색의 파충
오한에 떠는
EGO.
먼바다 돛단 배에는
표류하다 지친 낭만

석양이 시해(屍骸)를 끌고
늘어져 기댄 오후.
퉁겨 나오는 심장을
붕대로 묶어 두면
이윽고
선혈(鮮血)이 엉키고
열띤 비명
치는
EGO.

열애도
막걸리도
다 시시한 어느 오후.
시선을 체내(體內)로 돌려
영혼을 진찰한다.
타서는 재가 되어, 다시 재가 되는
EGO는
불사조.
주) EGO : 자아(自我)

 

◆ 신진규(申鎭奎 1926∼1997)
   호는 송담(松潭). 지품면 속곡리에서 태어났으며 영덕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하고 제3종 교원시험에 합격하여 초등학교 교사, 교감, 교장을 역임. 교육계에 재직하면서 면려표창, 우수공무원표창, 푸른기장,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수상했으며, 사회봉사활동으로 칠령문학회장, 경북문협이사, 영덕문화원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송담산고(松潭散稿)」, 「송담산필(松潭散筆)」 등이 있다.

이 농(離農)

따사로히 모여 살던
내 고향 우리 속실
한두 해 그 저간에
지남지북 떠나 버려
흙담 썩은 골목길
어디가 내 터던고?

땀을 심은 논밭 이랑
묵은 잡초 뒤엉키고
정담을 주고받은
추녀들은 비바람에
쓰러진 채 누웠으니
보름달이 그립다.

산 그림자 밟고 오다
영모대 맑은 물에
하염없이 발 담그고
옛 사연 줍노라면
물 바람이 흰머리만
빗겨 주고 가더라

봄 산행

솔바람이 물바람을
마중 나서는 산길
안개 걷힌 산자락은
꽃 소식 새들의 노래
새봄이 오는 소리
가벼워라 정든 산길

숭덕사 산문 밖의
개나리는 벌써 피어
늦은 인사 꾸짖는데
법당 앞 흰 목련도
간밤에 피었다고
유한적게 웃는구나

오십천은 굽이돌아
더 맑고 더 푸르니
호호대 봄 언덕은
우리 선인 노니시던
옛 정을 그리는가
노송(老松)은 말이 없다.

토요일 오후
서산에 지는
가을 해가
웬지 아쉬워

여름 한나절의
햇살을
생각다 보면

낙조(落照)의 그림자는
벌써 창 밖에
다가와 섰다.

세월이 핥고 간
깊은 자욱을
드려다보니 맑고

나 혼자 큰 붓 들고
세불아연(歲不我延)거듭 써 보는
토요일 오후

◆ 백의석(白義石 1920∼ )
   남정면 도천리 태생의 수필가이며 교육자이다. 일본동경 중앙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영덕중고교 교사, 안동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교감, 강구중학교·영주여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대구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경북교육연구원장(1971), 경북교육청 학무국장(1972), 대구여자고등학교 교장(1972), 대구삼락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 시문학(1977)>, < 현대문학(1978)> 지에 수필을 발표하여 등단했다. 상훈경력은 < 녹조근정훈장(1960)>, < 금오대상(교육보문-1961)>,< 한국일보교육대상(1985)>, < 국민훈장동백장(1986)>, < 대구교육감상(1994)> 등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수필집 「퇴근길」, 「소리없는 목소리」, 「황혼의 오솔길」 등이 있다.

추 모(追慕)

해 한
세상이 어지러워 쉬어서 오다 보니
갈 길은 천리인데 반 길도 옷 왔구만
백발이 제 먼저 가는 길을 막는구나

이래도 한 평생 저리 가도 한 평생을
숨마저 물아 쉬며 달려온 길이건만
어이타 한일없이 한숨만 쌓였는고

조부 앙모 (묘전(墓前)에 엎드려서)
산천은 의구하나 인걸은 간 곳 없고
자취를 찾았으나 잡초만 우거졌다.
인생이 허무함을 모르는 바 아니오나
그리는 정 가슴에 차 눈물이 하염없다.

아버지 추앙(推仰)
지난날 아픈 추억 배움에 시름 묻어
되려던 성현의 길 지척에 남겨 두고
어이타 병마가 가는 길을 막는구나
애닯다 어이하리 누대의 쌓은 업적
회오리 난리통에 잿더미로 화했으니
무심다 공든 납이 수포가 되었구나

어머니 추앙
자식 위한 일판단심 가시밭 길 마다 마다 않고
걸어 온 한평생이 헛되지 않았구나
첩첩이 쌓인 공적 태산이 무색하네
하해가 넓다하고 그 누가 말했는고
아무리 넓다한들 모애에 비할손가
생전에 무심했던 정 두고두고 한이 된다.

그리운 추억
파란 하늘을 쳐다 보노라면
어린 시절을 마음껏 불러보고 픈 마음이 이네
맑은 물을 들여다보노라면
고향을 듬뿍 건져보고 픈 마음이 이네
불러도 건져도 소용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흰구름되어 날아라도 가고 픈 마음이네

◆ 방태석(方泰錫 1926∼1985)
   영덕읍 화개리 태생의 시인으로 호는 서하(曙霞)임. 동인지< 토벽>, < 꽃조개>, < 칠령>, < 동해남부시>, < 경북문협> 회원으로 작품활동. 1947년 남호초등학교 교사로 출발 1985년 지품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중 타계했다. 저서는 유고시집 「복사밭 내력」이 있고, < 영덕군지>, < 내고장 전통 가꾸기> 등 향토교육자료에 집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늦이매기 산마루

할아버지
왕고모 보고 싶어 넘어가시던 고갯길
내가 오늘
누님 찾아 혼자 넘어 가는 길
부엉이 울 때
겁에 질려 외길 달려가면
다람쥐
떡갈잎 돌탑 틈에 놀라 뛰어가고
구름이
늦이매기 산마루 미리 와서 쉬어 간다.

복사꽃 필 때

뒷뜰의 복사꽃
가지마다 망울졌다.

훈풍에 윤기돌아
송이송이 붉었구나

수줍은 그 님 닮은 듯
웃고 반길 뿐이다

짖궂은 꽃샘바람
못다 핀 꽃 떨어지랴

삼진날 제비오면
만나자고 기약한 님

하마나 아니오실까
꽃 그늘에 앉았네.

◆ 박윤환(朴允換 1927∼ )
   호는 지산(芝山), 축산면 도곡리 출생의 시인. 청구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 대학원 행정연구과정을 수료했다. 초등학교, 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행정공무원, 회사간부, 기업경영대표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3년 『신문학』 추천으로 등단하였으며 칠령회 회장(초대), 한국문협·경북문협·국제펜클럽·동해남부시 회원, 한국문협영덕지부 고문 등을 역임했다.
   그의 시는 인간과 자연친화를 나누는 순결한 신화적 공간의 깊은 사색의 흔적이 두드러져 자연에 대한 외경을 즐겨 읊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화랑무공훈장, 경북문학상(공로부문)을 수상했다. 저서는 시집 「전설」, 「고래산 그림자」, 「산이야 말하겠는가」, 「어린날의 꿈을 묻으리」, 「내 고향에 바치는 노래」 등이 있고, < 영덕군지>, < 내 고장 전통 가꾸기> 등의 집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산이야 말하겠는가

산이야 말을 하겠는가
스치는 바람은
천년이 한결 같고
하늘은 마냥 사랑을
속삭이는데

산자락에 사는 사람
가도 그만 와도 그만
아웅다웅 욕지꺼리를 하면서
낯뜨거운 짓을 하건 말건
구름에 띄워 보내는 뜨거운 사연

지열이 끓어오르는
응어리가 있지만
말없이 지켜온 이끼 푸른 세월

산이야 말을 하겠는가

신라 사람

신라사람은 태고천황씨
열두살 어린 소년에게 정치를 맡기고도
오손도손 의논스리 살았으니
신라사람은 바보멍청이
아내를 빼앗겨도 노래만 부르고
양식이 떨어져도 거문고만 뜯고

신라사람은 미련한 돌부처
탑 하나 깎으려고
고운 아내가 한숨쉬고 기다려도
돌보지 않았으니

못난 신라사람들이
마알간 가을 하늘에
점점이 떠 있는 구름으로
천년이고 만년이고
우리 가슴에 살아있네.

매아미에게

소나무 가지마다 쭈루룩 땀이 흐르도록
매아미야
소리를 짜내어 따가웁게 울어라
멀리 잃어버린 꿈을 더듬어
주렁주렁 희망을 엮으면서…

별처럼 쓰러진 젊은 혼들이
황막한 벌판위로 일렁거려 오른다
어지럼처럼 어지럼처럼 일렁거려 오른다

태양을 꿰뚫어
매아미야
천심에 금빛 꽃무늬를 수놓으며, 매아미야
여릿여릿 녀릿녀릿 장송곡(葬送曲)을 불러라
혼돈히 헝클어진 땅
지구가 쭈루룩 땀을 흘리도록
매아미야
소리를 짜내어 따가웁게 울어라.

고래산 높이

가까이서 보면
바로 뛰어오를 수 있는
정다운 산

십리 밖에서 보면
십리 만치 높고

20리, 30리 밖에서 보면
그만치 웅장한 산

고향을 떠난 사람에게는
가슴을 꽉 메우고 있는 산
고래산은 멀리서
더욱 그리운 산.

◆ 이장희(李章熙 1929∼ )
   호는 운천(云泉). 청송군 진보에서 출생하여 영덕유치원에 입학하여 유소년기를 영덕에서 보냈고 국학대학 문학부 수료. 1963년 월간 『아동문학』 추천(조지훈)을 거쳐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당선되어 등단했다. 경제일보기자, 교육계 등에서 활약하면서 1960년 “꽃조개” 문학동호회를 창립하여 동인지 < 꽃조개>를 15집까지 발행하였고, 1972년에는 < 영덕문학, 일명 칠령(七嶺)>을 창간하였으며, 현재 31집(2001)째 발간하고 있다.
   그의 작품 경향은 절제된 언어와 섬세한 감성으로 평이하면서도 맑고 경쾌한 분위기로 자연과 화해의 공간을 소박한 구문(構文) 속에 다져 넣음으로써 동해의 물빛과도 같은 공해없는 시세계를 현상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예술교육문화상(문예부문,1968), 5·16민족문학상(시부문,1972), 경상북도문화상(문학부문,1985), 금복문화예술상(문학부문,1990), 국민훈장동백장, 한맥문협상(시본상,1996), 한국불교문협상(시본상,2000) 등을 수상했으며, 한국참전시인협회영덕지부장 겸 중앙위원, 한국농민문학회 경북지회장·이사·자문위원, 포항MBC자문위원, 영덕청송신문논설위원 제17회 세계시인대회 고문, 문협·국제펜클럽시분과회원, 산문과 시학문인회 회장(대구), 대구문인협회이사, 경북문인협회이사, 한국문협영덕지부장(초대)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서정의 여로」, 「수채화 속의 라목(裸木)」, 「낮게 흐르는 악보」 등이 있다.

광 장

길은 걷다가 문득
넓고 훤한 광장에 서 본다
이 광장에는
마음을 스쳐간 눈빛,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발자국이 남아 있다
탱크의 바퀴와 군대의 행진
데모의 행렬과 불의에
절규하던 청춘의 대열이
그리고 빈곤한
생활의 수레가 동행한
온갖 자취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지나간 나의 발걸음의 자취와
내가 살아온 눈물의 자욱
그것을 보면서
광장을 걷고 있다
그 날의 체취가
광장의 하늘을 덮고 있다.

소중한 겨울
오십천 일대에
눈이 내린다
서쪽은 저승이다

한 마리 겨울새가
서쪽 묘지쪽으로 울고 간다
눈이 내리는 하늘을 가르며
금호들판이 하얗게
하늘과 맞 닿았다
소중한 사람의 영혼이
연결되는 시간이다

고난에 찼던 어머니의
생애를 건강하게
표백해 주고 있다
멀리 장림목 너머까지
눈송이는 끝을
내리지 않고 있다.

그 해 겨울

그 해 겨울
바다가 보이는 찻집에서
우울한 팝송을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입력된 팝송을 정리하면서
황혼까지 쾌감으로 보냈다
눈이 내리는 거리
중세기의 고전 같은 눈송이는
내 슬픈 꿈을 방황하게 인도하지만
눈송이는 창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가로등 사이로 흐르는
불빛의 리듬처럼 해안의 모래 위로
아름답게 소멸하고...
잔잔한 파도는 일상의
음계를 두드리며
베일을 벗긴 사자의 영혼을
잠재우고 있었다
목조의 찻집 문을 열었다
금세기로 이어지는 눈송이는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하염없는 눈송이 속에
침묵의 기도는 모든 것을
덮어주고 있었다.

◆ 박남훈(朴南薰 1932∼1993)
   본명은 응춘(應椿)이고, 강구의 시인이다. 홍익대학을 중퇴하고, 동아산업(주), 삼성교통(주)사장, 우성산업(주)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1957년 동인지에 < 야성(野城)>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 맥(脈)>, < 전쟁문예> 동인이며 동인지 < 월영(月永)> 주간, 계간 시전문지인 < 시와 의식> 편집장, < 서세루> 동인으로도 활동, 한국문협, 현대시인협회 회원. 1990년 종합문예지 < 문학세계> 창간, 1991년 시전문지< 시세계> 창간. 출판사 < 시세계>를 경영하였다. 1993년 1월 5일 타계하였다. 저서로 시집 「동해바다」(1992), 「불면의 시」(1993)가 있다.

폐선(廢船)

보아라
남루한 수의를,
손목에서 발끝까지
맥 잘려
뻐걱이는 천형의 몰골을

암초 뿌리 내린
질척한 어둠 속
녹슨 닻으로 박혔다.

보아라
한 목숨의 슬픈 끝남을
불혹 바다 위로

솟구쳐 오르는, 한 마리
돌고래의 물보라
한 자락
남루한 수의의 펄럭임인 것을,

보아라
휘날리는 눈보라
한 생애 위에 떨어지는 천형을
내 무덤 뒤덮는 눈보라를.

내 시·1

날 선 대패로 나무 속살을 벗긴다.
한 꺼풀 또 한 꺼풀
속 무늬에 숨겨진 속살의 관념,
내 살갗을 벗긴다.
무엇으로 가려져 있는가
저 숲에는 나뭇잎도 떨어지고
이 땅에는 나무들 다 잠들었는데
날 선 대패로 나무 속살을 벗긴다.
마지막 나무 한 토막에
달라붙은 어둠도 벗겨내고
발 밑에 쌓이는 대패밥,
드디어 나의 넋 한꺼풀 한꺼풀
다 벗겨낸다.

동 해·35

-오포리의 비-

저문 바다를 짓밟는 소나기
한 줄기 갈매기 하얀 털 적시고
바다 목소리를 적시고
절망을 뿌리는 바람이 서슬을
적시고 있다.

수궁가 한바탕 읊는 막막한
동해 끝자리 암담하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휘말려 오포는 젖어
뻘 밭에 박힌 닻 한 가락
꿈 적시며 어두울 뿐
몸부림치는 무당처럼 제당 숲
부엉이도 젖은 밤을
밤새 적셔주고 있다.

◆ 최해운(崔海雲 1934∼2000)
   영덕읍 출신으로 1953년 < 문예(현대문학 전신)> 추천을 거쳐 동아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다.
   1954년 대구에서 최초의 종합문예지 < 예술집단>을 3집까지 발간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광주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한 바 있고 월간 < 고시계(考試界)> 편집장, 도서출판 < 현암사(玄岩社)> 편집장을 지내다가 1960년대에 도서출판 < 예문관> 경영주로 출판계에 투신하여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출판문화협회 이사로 활동하였다.

유 성

별이 떨어지는 것은
밤마다 별이 떨어지는 것은
한 번은 내가 죽는다는 것이다

별이 떨어지고 난 장소에
밤마다 막을 수 없는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 속속에 내가 자리하여

차라리 아프지 않은
상처를 여미고 있는 것이다
별이 깨알같이 박힌 저 안에도
더 푸르고 차운 저것은

내가 죽어 가는 날
사양없이 내게로 떨어져올 나의 별

내가 죽다가 살아나면
아- 저기
또 하나 다른 별이
활활 타오르며 떨어져 가는 것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에
베들레헴 머언 고장의 밤이 묻어 왔다

바다 밑 같은 조용한 어둠의 밑자리
얼비치는 별 하나
조강한 조강한 불빛으로 열려

하나님은 조용히 옷깃을 여미시고
아벨을 죽인 카인을 보호하신 손으로
기근의 식탁에 포도의 즙(汁)을 따루시면
창밖엔 무화과 그늘의 부끄러운 속삭임 같이
쌓여 가는 싸락눈…
길은 한없이 머언 곳에서도
이 날로 통하고
나는 길이 잘 든 한 마리의 어린 산짐승

산채과(山菜果) 내음새를 뿌리며
내려 오실지도 모를
마리아 당신의 길목을 찾아 나서면

창 밖은 당신을 맞는 밤의
거룩한 합창소리
화이트 크리스마스
화이트 크리스마스

제삼혁명

오욕(汚辱)의 누리
오욕(汚辱)으로 들끓는
육체의 내부 가득히
하늘의 뭇 용태(容態)로 진좌(鎭座)한
달빛은 수런거리며 속삭이며
노역으로 구축된
의지의 소왕국
나의 사랑하는 것들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칠흑의 함정에서
천지를 지배하는
달빛의 자태
해방된 관념의 괴뢰(傀儡)들이
온갖 불평을 하면서도
달빛으로 포섭(包攝)된다
비어있는 두 개골 속에도
교통하는 달빛
그러면
갇혀있던 음모가
조용한 함성으로
끓어오른다

음모는 도처에 깃들어 있다
공동변소나
비어 있는 창고속에도
사랑을 사수한
여인의 혓 바닥위의 단 것이나
닳아진 하품에도
하품이
마비되게
식도를, 위장을, 항문(肛門)을
도장(塗裝)하라

두 개골 속의 앙상한 달빛
달빛 속의 조용한 자유만큼이나
앙상한 갈빗대의 앙상한 관념에서
사자(死者)들의 곁으로 떨어져 간
나의 평지
붕괴된 나의 사랑의 소왕국을
달빛으로 충격한
모독의 의지여
오늘 나는 너를 정비한다
정비한다

◆ 김대두(金大斗 1934∼ )
   강구면 출신의 시인으로 연세대학교 문과를 졸업했다. 1960년대초 국가공무원으로 자리를 잡게된 그는 사표를 내고 국비로 호주 유학을 다녀왔다. 그의 작품 경향은 사물이나 상황을 논리적 접근이 아닌 감성의 교류로 그 사물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나 조건을 아주 단편화시키는 방법에 익숙해 있으며 따듯한 인간의 원형적인 삶의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다. 저서는 시집 「불온의 李節」 등이 있다.

 

서시

우린
다시 돌아가야 하느니
진눈 개비 속을
어깨 주무르며

사랑하는 내 이웃들
더러는 그날 죽고
더러는 그날 이후 행방을
감추어 버린

피바람 속에서도
가당찮던 사람들

가선
갈대 숲에 숨어있던
그 무덤도 찾아보고
누구는
정라진에서 보았다 하고

누구는
답십리 뒷골목에서 외면을 하더라던
앞집의 덕이 아제
그 아제 행방도 수소문하고
우리 모두 그날처럼
가슴 풀고 살아가야 할

묻어버린 세월
발목 잘린 세월
세월의 물굽이나
지켜보며
살아가야지

회향기(懷鄕記)

분명한 것은
내게도 한때는
심상찮게 돌아가던

고향이 있었고
어느 산허리에는
지금도 썩고 있을 그
검정 고무신이

바람 불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끌려가던
신작로를 지켜보며
뒷재를 타 넘었던
그 날 밤부터

내 이름은 고향에서
“행불”로 처리되고
사람들은
그 때마다
입들을 다물었다

이명(耳鳴)으로 남아있던
산골짝의 신음소리
남 몰래 찾아든 후미진
골목에서
때로는 공사판의 목도질도
해보고
때로는 목로집의
물지게도 매었다.

이름갈고 살아온
사십년 세월
이젠 저것들 클만큼
컸고
국밥집도 그런대로
뿌리를 내렸다만

바람결에 실려 온
고향 소식 있던 날은
혼자서
소줏병을 너덧개나 비우고
질정없는 생각에서
밤잠을 설쳤다.

더더욱 뼈저리다 생각하는 것은
전중이 같은 이 자식 때문에
평생을 외면으로 살아오시다
돌아 가시던 날
호롱불 가물가물
바람벽만 응시하던
어머니
당신의 가슴 속
못이 박힌
그 돌덩이 같은 응어리를…

가로 잘린 산허리여
도마위에 엎드린
숨죽인 세월들이
바람 없는 어느날
얼굴가린 주검으로

다시 돌아갈 때
산 마을엔 조용히
솔개미가 뜨고
사람들도 그 때처럼
화안하게
비탈길을 내려설까

◆ 강문종(姜文鍾 1935∼ )
   영덕읍 출신으로 충남대학교 문리과대학 국문과를 2년 중퇴하고 영덕군청, 태안건업주식회사에 다년간 간부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성보레미콘주식회사(울진군 후포면) 사장을 맡고 있다.
1995년에 월간문예지 < 한맥문학> 신인상 상으로 등단하여 한국문협 경북지회 회원, 한맥문협회원, 한국문협 영덕지부 수필분과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3인공저 시집 「그리움으로 영근 화음」이 있다. 1973년 보이스카우트 모범지도자 표창(대통령)을 받았다.

겨울단상

눈이 내린 뜨락에
예리한 달빛 쏟고
무음의 목이 쉰 산에
마른 숲속 짐승 우는 소리
눈 덮인 대밭까지 환한
까랑 까랑한 달밤
달빛이 추위에 몰리고
윙윙대는 서북풍
동지섣달 푸른 찬 하늘
먼 이웃마을 개짓는 소리
발걸음 사각사각 들리는
기침소리 긴 골목

초하(初夏)

해긴 날 구겨진 봄
구름 끼고 가다가
꽃잎을 바라보고
너를 잃은 길모롱이
으스름
빛살을 흔들며
가슴 타고 꽃이 진다
바람은 꽃잎 잡고
사랑을 나누는데
번저오는 여름 문턱
이 한밤에 우는 벌레
참으로
속 깊은 가슴
아카시아 잎이 진다.

어느 영혼

아무도 모르는
꼭꼭 숨은 비경의 세계
정든 벗 하나 둘
떠나가는 소식이다

살기 어려운 세상
뜻 이뤄 쉽게 살아가는
복된 나의 삶

꽃이 피는
깨달음이 미화를
속깊이 새기면서

태양처럼 밝고
이슬같은 맑은
무한의 삶에

거듭되는 삶에 체험은
티없는 소녀같은
눈물지닌 축복의 영혼으로

오늘도 내일도
기도와 감사의 마음으로
무한대의 사랑과
관대의 정으로
이어지게 바라리

◆ 이태희(李太熙 1938∼ )
   호는 영강(盈江)이고 강구면 출신의 시인으로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시사통신 사회부장, 보건신문사 편집국장 등을 역임했다. 시 < 변신초-현대문학(1963)> 등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고, 문화공보부장관 표창(1988)을 받았으며, 저서는 「한국의 경제관료(공저,1977)」가 있다.

가을 그리고 고독한 잉태(孕胎)

무엇인가 가득 차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텅 비어 있다
텅 비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무엇인가 가득 차 있다.
천년을 우러러, 하늘을
길어 부어도 길어 부어도
빈 가슴을 채우지 못하는
탄식의 가을이며,
가장 고독한
가장 소중한 약속을 태초의 말씀을 담아
마침내 가을 안에 던져진
빈 항아리 한 점
변신하는 몸짓으로
자유를 탐닉하는가
울음을 삼키고 잠시
머물다 가버린 빈자리에서
우리들은 약속을 저버리는 것
사랑이란 참말로 그런 것인가

가을이 다시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을이 세월을 정지시킨다 하더라도
사랑은 퇴색하지 않는 것,
사랑은 조작하지 않는 것,
사랑은 고독할수록 더울 빛나는 것.

가장 고독한 잉태를 위하여
가을은 아직 내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밀항(密航)의 계절

해협을 구비 돌아
가슴에 무너지느 파도소리…
달이 기울이는 밤마다
갈매기
해벽에 나래쳐 울어라

참말로는 웃음이 아니다
텅 빈 가슴을 꽃으로 쓰다듬는
역겨운 기억의 노예들
멀리서 손짓하여 부르는
연민의 노래를
아직도 잊을 수 없는가

바람이 정지하는 나무가지마다
태양이 내려앉아
조용히 문을 여는 아침
사랑은 견딜 수 없는 고요.

움직이는 모든 것들의
원형질(原形質) 같이
크레용으로 빨갛게
태양을 칠하면
허허한 빙원이 열리는
가슴의 바다.

저 황막한 광야에 서서
목이 타는 꽃포기마다
무게를 꿈꾸듯
어둠 속을 비상하는
피묻은 나래쭉질 흔들어
빼앗긴 자유를 선언한다.

영겁(永劫)의 세월을 다스리는
침묵한 바다는
적막한 고도에서 묘비를 가꾸는
황제의 무덤
탐욕한 입술 언저리의
영상을 세워라
일몰에 서서
파도에 밀려간 부표(浮標)를 생각하는
비에 젖은 밤의 순례자
피곤하여 혼자 돌아가는 길은
지옥이라 할지라도 외롭지 않다.

비어 젖은 밤
피곤하여 혼자 돌아가는 길은
지옥이라 할지라도 외롭지 않다.

◆ 김재진(金在鎭 1938∼ )
   남정면 사암리 출신의 시인으로 성균관대학교 국문과를 수료했고 < 시문학>, < 해동문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청탑(靑塔) 동인회장, 한국불교문협이사, 경북문협회원, 영덕문화원이사, 한글문학회 동해남부 지부장, 해동문인협회 영포지회 상임고문, 한국현대시인협회회원, 주간 우리군민신문 논설실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보리고래를 넘는 바람아」, 「입동이후」, 「장작을 패면서」, 「울음의 왕국」, 「선도산 노을」, 「산촌일기(공저)」가 있다. 작품 경향은 단형적 서정이 짙게 깔려 있는 한편,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향토색은 맑은 존재의 개념으로 함축성 있게 동화되어 종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백제행

내가 진종일
마음에 들지않는
삼남의 하늘을
아침에 눈이 내리고
저녁에 비가 내리거나 맑거나

이불도 없이
벌거숭이로 누운
외양간 요셉이의
새벽기침 소리에도
백제는 무너지고

그냥
눈보라가 치는
세한도 속의
어둠에 갇힌
늙은 추사처럼
내가
백제로 줄행랑치는
아침에 비가 내리고
저녁에 눈이 내리거나 말거나.

만추에

왼종일 텅빈 가을들녘의
배추밭에 혼자가서
노랗게 알이 찬
배추포기나 보러가리

배추나비도 날지않는
배추밭은 배추밭이 아닌데

정말
실하디 실한
조선배추 뿌리나 보러가리

바람은 불지 않고
열 두평 배추밭이
배추밭 답지않는 그런날의
배추김치 생각이 절로나면.

바다로 가는 자전거
파전 한 접시 생각나는
해도 무지개공원
벤취에 앉아보면
맨날
저 혼자 신명나게
바다로 굴러가는
자전거의 행렬이 있다.

십구공탄처럼 새까맣게 때묻은
우리들의 일상이
바람에 나부끼는 점심때
보신탕집 개짖는 소리 시끄럽고

내가
한 개 바퀴가 되어
매양 굴러가고 싶은
키 작은 공화국의
거리마다
개 같은 인생이 가고
근로기준법을 껑충 뛰어 넘은
일기불순한 저녁답에도
나는 미열이 오르고

가을 연가

뼈를 맞대고 누워 하늘을 보고 있다.
해그름은 밀려 비명의 원경.
모든 살아 있는 살륙들이
저렇게 캄캄한 얼굴로 사라지고
우수에 젖어있는 노래들,
몇마리 날새가 물고 내려 앉는다
때때로 어둑어둑한 구름이 몰려와서는
영혼의 빈 가지 끝에 앉아 있는
가마귀 검은 부리를 적시고
차디찬 입술이 소리치는 강물에는
젖은 생애가 흘러내린다
이미 창틈으로 새어나간
초저녁의 불빛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대 풍요한 가을빛 속살도 돌아오지 않고
밤마다 침상을 흔드는 바람소리,
꿈을 꾸면서 잠을 깬
새벽녘의 밝아오는 어둠이
조금씩 조금씩 사물 속으로 숨는다
허공에는 세월이 잠시 가꾼 꽃이 걸려있고
그 너머로 희멀건 반달을 보고 있다.
누운 의식을 훌훌 털고 일어나
아무래도 반달밖에 볼 수 없는…
황량한 벌판의 어디쯤에
맹목의 잎들이 쓰러진다.
아, 저렇게 사라지는 살륙들의 현장에서
우리들의 뼈를 맞댄 사랑이
마른 이불을 쓴 풀잎 속으로 숨는다.
마침내 풀잎이 죽는다.

 

◆ 육수범(1943∼ )
   영덕읍 출신의 시인으로 포항수산대학을 거쳐 한국방송통신대학을 졸업했다. 1989년 계간문예지 < 시와 의식>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하였으며, 한국문인협회회원, 경북문인협회감사, 경북공무원문학회 운영위원, 한국문협영덕지부 부지부장, 영덕라이온스클럽회원, 영덕문화원이사 등을 역임했다. 1970년 우수공무원표창(내무부장관), 1974년 내무행정발전유공(내무부장관), 1985년 농촌청소년 육성공로(농수산부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시의 경향은 외향적인 움직임 보다는 항상 내향적이고 안으로 감추는 정적인 향진성의 특징이 우선하면서 시의 색깔을 채색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일어나는 흙의 신화」, 「그리움으로 영근 화음(공저)」등이 있다.

일어나는 꽃의 신화

살아 있는 흙이 일어선다.

부드러운 손길의
착한 바람이
한줌 흙에 스치면
살아서 일어서는 꽃

어디서 떠돌이로 찾아온
낯선 바람에
꽃으로 일어나는 한줌 흙
살아 숨쉬는 꽃의 신화여

한 무더기 바람과
한 무더기 햇살을 안고
내 누이 무덤 위에
빗방울로 떨어지는
눈물마냥
무지개 빛 아롱진
초이레 이슬 머금은 아침 꽃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한 마리 나비처럼
손바닥만한 아침을 핥다가
밤이면 그 향기 젖은
달빛과 입맞추며
작은 기폭으로 나래를 펴고
흙 냄새 진한 꽃으로 일어선다

태초의 흙

신비로움 가득한
태초의 흙
그것으로 빚어
생명 불어넣고
에덴 동산에서
세상 거느릴
큰 축복 있었네.

빛이 있어라 하여
낮과 밤을 나누고
궁창 위와 그 아래
물을 나누고
땅과 바다를 구별하여
풀과 종류대로의 씨 맺는 채소
종류대로의 열매 맺는 나무들
광명 있는 수많은 별들
물고기와 날으는 새
육축과 기는 것과 짐승들
그 지으신 모든 것
가득 담아 주시며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감탄하셨네.

신비로움 가득한
태초의 흙이 아직도 살아
풀잎으로 피어나고
하늘 향한 고마움
꽃으로 피어 향기 풍기며
열매 맺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니
더욱 풍성하여라.

우물 속에 빠진 아침 하늘

빈 들판을 서성이다 돌아온
연지볼 붉은
바람이, 수줍게
강가
아침마다 그리움으로 물든
작은 노래 하나
흔들거린다.

온 누리에 가득한
사랑의 빛깔
햇살. 나팔꽃만큼
활짝 피어나고
우물 속에 빠진 하늘에는
생각 한 자락
아침노을로 타고 있다.
노오란 병아리의 울음으로 눈부시게 열리는
아침 하늘
먼 산자락 끝에
내 초년의 연두색 기억 하나
지금, 지워지고 있다.

 

◆ 김도현(金道顯 1943∼ )
   호는 하원(何園)이고 영덕읍 출신의 시인이다. 교육행정공무원으로 교육청, 중고등학교 서무과장·행정실장, 도립영덕군민도서관장과 1990년 < 농민문학>, < 문학세계> 신인상 당선으로 문단에 등단. 한국문인협회, 경북문인협회, 자유시인협회, 한맥문인협회 회원, 영덕문화예술협회장, 영덕·청송신문자문이사회의장 등을 지냈다. 그의 시의 경향은 서정의 문법을 중심으로 정적인 공간구축의 개성이 짙고, 바다와 강의 이미지를 배치한 풍경화적인 표출이 특색이다. 저서는 시집 「그리운 물빛 판화」, 「그리움으로 영근 화음(공저)」 등이 있다.

새 떼 떠는 갈대밭

새 떼가 갈밭 머릴
어지럽게 헤맨다
마파람이 숲을 흔들어
평온을 잃은 보금자리.
불을 지른 듯한 바람이
가슴과 가슴 짓이기는
아픔으로 출렁이고
허허로운 먼 하늘을
바라보는 허탈 한 줌.
투명한 내란(內亂)의
스산한 바람이, 그래도
해저문 강산처럼
오후의 햇살 속으로
나직이 빨려 들고 있다.

비의 추억

하루종일 비는 내리고
가까이 교회당에서
찬송가가 흐른다

아득한 소년기
물레방아가 있는
비 내리던 고향
국민학생 소꿉동무
손을 잡고 돌다리를
건너던 날은
우산이 없어 옷이 촉촉했지

첫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던 날
하루종일 비는 내렸다
소녀의 서운한 작별
눈물 같이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고 향

꽃가루 분분한 윤사월
그리움으로 차오르는
복사밭 백리길은
화사한 봄 천지
예나 지금이나
쉰 갈래 굽이굽이
감도는 오십천
넘실넘실 시원한 바다

사시사철 새벽잠 털며
칡뿌리 같은 의지 흙속에 심어
땀방울 흥건한 덕곡리
마음으로 한바퀴 돌아도
끝을 알 수 없는 금호리 들판

법없이 살아가는 흙을 닮은 이름

오래 오래 살기 좋은
천연의 고향
오늘도 복사 빛 강은 저물어
동해로 내려가고 있다.

◆ 이재훈(李在薰 1949∼ )
   창수면 출신의 시인이다. 영남대학교 공과대학 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럭키상사 대표이고, 시 < 사과밭에서>, < 보리>, < 그길로 나아가면-시문학(76)> 등으로 등단해서 < 형상(形象)>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한국문협 회원 및 한국문협대구지부 시분과위원장을 역임했다.

달성공원에서

이제 너는 산다운 산이 되라고
휴일날 아들에게 말했다.
너의 형뻘인 팔공산이 되거나
형의 형뻘인 지리산 설악산이 되라고
바다에 우뚝 솟아오른 한라산이 되라고
아들의 친구인 달성공원에게 말했다.
산도 아니고 언덕도 아닌
맨날 노인처럼 쪼그리고 앉아
아이들의 놀이감이 되거나
새장의 새 우리 속의 짐승이 되지 말고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숨어서 울고 숨어서 소리치는
산울림은 되지 말고 로봇은 되지말고
큰 슬픔에 울부짖는 큰 짐승이 되라고
야성의 숲에서 피어나는 절망의 꽃이 되라고
휴일날 달성공원에서 아들에게 말했다.

 

◆ 유국진(劉國鎭)
   강구면 출신의 시인. 경북대학교를 거쳐 건국대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남아메리카 볼리비아로 이민갔으며 1989년 문예지 < 우리문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재미시인협회 회원이며, < 천단시> 동인으로 활동. 시의 경향은 고향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 이민생활의 특별한 체험으로 인간의 삶의 모습을 진지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저서는 시집 「민들레 고향」, 「초혼집」 등이 있다.

먼 나라에 와서

꽃을 보면
내 어린 날의
꽃님이 생각나고

참꽃을 꺽어
몰래 주고 싶던
그 아이 생각이 나고

내 이제 머언 나라에 와서
감꽃 줍던 고향 봄날을 그리나니
곱게 울던 샐비어 뜰 앞에 와서 서느니

그날 그때 꽃님이는 날개를 접고
불살 내리는 내 눈앞을
곱게곱게 하롱이느니.

작시법(作詩法) 5

시인은 장사를 하더라도
장사꾼이 되어서는 안된다

인간이기에 명예, 약할 수밖에 없지만
참된 시인은
명예의 웃옷을 훨훨 벗어 던져야 한다

육신이 조락(凋落)할수룩
꿈을 잃어서는 안된다.

이 풍진 세상에서
이 풍진 세상에서

시인의 분노는
하늘과 땅이 함께 흔들리는
고결한 사념을 지녀야 한다.

민들레 고향

우리는 고향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
앞산 자락밭에 반짝이는 은모래알이 되어야 한다.
삽작 거리는 바람에게조차도 갸날프게 흔들리는 영롱한
이승방울이 되어야 한다.
봄마다 떨다 떨어지는 꽃
뒤란의 살구꽃으로 피어 있어야 한다.

달맞이꽃의 함묵에 다가와 흔들리는 밤물결처럼
살찐 토양에서 자란 열매로 돌아가야 한다.
그 살찐 유방에서 자란 보옥(寶玉)처럼
모향(母鄕)의 눈빛을 닮아야 한다.

진즉 우리는 철새였나 보다
스스로 자궁 속으로 들어가 죽고 싶은 뱀이었나 보다
길가에 홀로 핀 민들레꽃의 바람씨였나 보다.

 

◆ 조종문(趙鍾文)
   영덕읍 출신의 시인이다. < 불교문학> 신인상,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KBS TV “우리들의 새노래” 작사 작곡 2회 수상과 교원 실기대회 운문부 금상을 수상했고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경상북도문인협회 회원, 영덕문학회 총무, 경북아동문학회원, 영덕문화예술협회 문학분과위원장, 한국문협 영덕지부 아동문학분과위원장, 우리군민신문 칼럼리스트 등을 지냈다.

설 화

눈이 내린다
무심히,

마을 하나 텅 빈자리에
고요한 그리움 떨구며
아스라한 몸짓으로 다가오는
여린 춤사위들.

이 겨울
잿빛 하늘 접어 내며
씨받이로 남아 섰는
나목들의 사랑은
목련보다 더 진한
흰 눈으로 꽃을 피우고

긴 겨울 밤
여인네 하얀 젖무덤을 호미질하는
차가운 바람소리는
잊혀진 사념의 언덕을 물레 잣는데
전설 같은 하얀 너울은
자꾸만 자꾸만
파리한 입술을 떨며
홀로 사랑을 앓는다.

희디흰 설화가 되어
나목의 사랑을 찍어 내리고 있다.

풀 꽃

산새가 떨구고 간
파릇한 들길 위에
한 줌도 못되는
세월을 붙잡고
곱게 가녀린
제 몸 하나
뜨개질하며
소리없이
소리없이
그렇게 피어
머언 하늘
노을 빛 품에 안고
바람 속 그림자로
별을 그리다가
수줍게 돌아눕던
그 들길의
풀꽃이여.

낙엽 속에 지는 달

어젯밤
한 잎
낙엽 끝에

늦가을 하늘이 내려앉아
빈 뜨락 위
마른 외줄기로 숨소리 가다듬는
귀뚜라미 울음소리 들었다.

잔잔한 여울 같은
희미한 달빛 밟으며
차마,
흘러 보내지 못할
깊은 시름의 강을 건너며
혼자서 감당 못할
쓸쓸한 노래를 들었다.

먼 여로의 그림자를 지우며
소리없이 지는
낙엽의 적막 속에
산사의 풍경은
심전(心田)을 아리게 하는데
지난 옛이야기는
아,
작은 모닥불로 지펴지는
낙엽이여!

달빛이 지고 있다
달빛이 곱다.

◆ 이명숙(李明淑 1949∼ )
   남정면 출신으로 1997년에 <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한국문인협회, 대구문협, 대구여류문학회 회원, < 은시> 동시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바지랑대

너 그거 아니!
온몸에 허연 비늘이 푸석 푸석 일어나던 계절
세상이 온통 꽝꽝 얼어버린 날
우리 무작정 엄마에게 매달렸다
허기진 계절
어린것들은 당신이 말려야 할 젖은 빨래였다.
가녀린 두 어깨로 나부대는 슬픔을 지탱하셨다
그 겨울의 빨래
줄에 널자 말자 얼어 버리는
대책 없는 뻣뻣함이란
넌 알 거야! 바지랑대가 받치지 않았으면
땅에 질질 끌려 패대기쳐졌을 빨래
매운 칼바람 속에서 언 옷들이 보송보송 마를 때까지
야윈 어깨로 떠받치던 하늘
이젠 탈수기로 건조되어
축 늘어진 슬픔 없는 빨래
올 가을 추석
고향 집 뒤 곁
무심결에 발에 걸려 넘어질 뻔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귀찮은 존재
지금 다만
혼자 검게 썩어 가는
잊혀진 바지랑대,

그곳으로 갈 일이다

사는 일
기진맥진 할 땐
고삐 풀고 그 곳으로 갈 일이다
세상 시름이 파도가 되고
온 세상 파도가 잔잔해 지는 곳
해당화 가시가 손가락에 박힌 곳
긴불 백사장
침몰한 군함이 뭍 혀 있는 곳
좌절한 지식인이 낚시대 드리운 곳
서럽고 붉은 노을이 그리로 지는
그곳에서
파도를 안주 삼아 취해 볼일이다
마음은 절로 파도에 취하고
놀에 취하여
백사장에 주저 않아
하염없이 파도가 되어 볼일이다

방파제 가장자리엔 작은 배가
그물을 싣는다
붉게 떨어지는 일몰을 건지려 바다로 간다
그러나 그물에 걸린 건
끝없는 파도소리 뿐
너무 가까운 사이가 아득히 느껴질 땐
그곳으로 갈 일이다
내 긴 태(胎)가 부르는 곳
그 곳에선
산도 하늘도 나무와 집들도
사람들의 얼굴도 모두
하나가 된다
바다가 된다

퇴행성 관절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나
발목엔 족쇄가 덜거덕거린다.
생활은 포개놓은 찻잔처럼
언제나 똑같은 흐름이다.
풀풀 날리는 마음은
말린 프리지아 꽃잎처럼
바스러질 것 같다
조금씩 녹슬어 가는 시간은
이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
병 속에 갇힌 메뚜기처럼 입구를 향해
나는 튀어 오른다.
까마득한 하늘을 향해
튀어 오를수록
내 병은 깊어지고
노랗게 빗금 친 안전지대 하나
마련하지 못한 삶.
서서히 무릎이 굽는다.
퇴행성 관절

◆ 박승렬(朴承烈 1955∼ )
   영해면 사진리에서 출생한 시인이다. 한국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 및 안동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계간 < 시세계(1994)> 시부문 신인상 수상, 월간< 문학세계(1998)>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한 시인이며 수필가이다. 1987년 국민교육이념구현 표창(문교부장관), 1993년 모범공무원 표창(국무총리)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전국공무원문학협회, 문학세계문인협회, 영덕문화예술협회 회원이며 한국문협영덕지부 사무국장을 맡았다. 영덕, 영해, 강구면사무소(1975∼1981) 포항, 울진, 후포중학교, 영해여중, 창수, 병곡중학교, 영덕교육청 관리과 등에 근무했다. 저서로는 「폐교재산의 효율적 활동방안」이 있다.

 

까치밥 추억

먼 하늘에
별이슬이 내려
까치밥과 소곤거리면
모래알 추억들이
달빛에 익어 갔는데

엊그제
그대는 왜 만났는지
지금도
그대와 왜 같이 있는지
달라진 일상과
무딘 세사에 말문이 닫혔다.

벌거숭이 내어놓고
모래알 위 추억을 싹 쓸어 간
따갑던 태양도
한가닥 추억을 간직하려면
홍시도

이젠
까치밥 되어
찬이슬에 녹아 나고
생을 위해
주워 담은 실오라기 하나
자유롭고 싶은 욕망에
먼 하늘로 치닫는다.

불혹의 난간에서

살랑이던 여울목에
찬바람이 세차다

문득 비온 뒤의 산이 그리웁고
때묻지 않는 연화(蓮花)가 부럽다

성현의 말씀
미혹하지 않는 인생락(人生樂)이라
불혹인 난간에서 무얼 하였는가

이 생에 찾아뵈올 사람은 가까이 있지만
덧없는 세월이 찰나인 것을

난향 그윽하니 바람 한결 부드럽고
이순 넘은 어머님의 귀밑
백발이 무심하구나

내고향 오십천
향토줄기 오십천
태고에 신시 내려
두견새 울음에
도화 만발하였고나

오십천 정기에
머무는 구름아
이곳에 비 뿌려
옥답 일구었구나

영혼 서린 삼천 궁녀
도화 볼이 어리고
태백준령 비구름도
넘나 쉬어 가는 곳

고올 물굽이 넘쳐
복사 향 더욱 짙다
내고향 오십천

◆ 이운락(李雲洛 1961∼ )
달산면 대지리 출신 시인이다. 대구대학교 인문대학 영문과(1987)를 졸업하고 청송여자종합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였고, 계간 < 시세계(1992)>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경북문협, 문학영남회원, 한국문협청송지부사무국장을 역임했으며, 국제와이즈맨 청송클럽사무국장 등을 맡았다. 저서로는 시집 「연이 하나 걸려있는 풍경」, 동인문집 「호박닙」이 있다.

하나님 전상서

예레미야 33장 3절
「너는 네게 부르짖으라」 말씀은
쏟아지는 소나기가 되어
내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만 8년만에 돌아온 탕자는
청송읍 교회 2층 대예배실에서
벙어리처럼 눈을 감은 채
마른 입술로 찬송가를 더듬었다.

날마다 기도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천장을 뚫고 어둔
저 하늘가로 향하는 시간을 의식하며
잘 모아지지 않는 손을 애써
탁자 아래로 감추며
나를 위해 기도한 아내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는 말씀은
기도하지 않았던 시간의 공백을 메꾸며
나를 향해 부르짖었던 영혼들 곁으로
성령들이 일어서고 있었고
믿음으로 돌아 선 이 밤
가뭄도 어둠 속으로 꼬리를 내렸고
8년간이 눈물을
하나님이 대신 울고 계셨다.

젖은 얼굴로 쓰여진 시

그는 젖은 얼굴로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젖은 바지가랑이는 종아리에
들러붙어 사정없이 구겨지고
속이 아프다며 그는 우유를 나는 커피를 마시며
어항 속의 금붕어를 쓸쓸하게 쳐다보았습니다.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은 차츰 초점을 잃어가고
바위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산사람처럼
몹시 초조하고 긴장된 표정이었습니다.
나를 찾은 그의 먼 걸음을 얼굴에 담아 놓고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바닥에 던져진 우산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터미널에서 여기까지 신문지를 쓰고 달려왔다며
애써 뭔가를 전하려는 그의 눈가에 눈물인 듯
빗물인 듯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그의 등뒤로 전화기에 매달린 손님의
다정한 목소리가 자그마한 행복임을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희미한 웃음을
내게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루를 산다는 것이 그에게는 벅찬 일이었고
마주하면서도 한 잔의 커피만한 따스함도
건넬 수 없는 수수깡 같은 내 사랑을
우산 속에 가두고
다시 비를 맞으며 터미널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에 아스팔트는 하얗게 넘어지고
돌아서서 내가 젖어야 할 하루를 기억하려고
나는 시를 쓰는가 봅니다.

절대금연시대(禁煙時代)

만 9개월 3일째 나는 금연을 하고 있다. 일기(日氣)는 흐린 후 갬이다. 이 땅의 진정한 지성인은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몸에 약이 되는 정도로 마시며 2차는 완전사절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절대금연시대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하라고 동료들이 핀잔을 준다. 간혹 그들의 유혹에 넘어갈 뻔 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 나는 가룟 유다 같은 배신자일 지도 모른다. 점 찍힌 자 왕따 변절자 금연 후에 상상할 수 모든 언어를 다 동원하여 나를 흡연의 녹색지대로 끌어당기지만 나는 더 이상 줄다리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줄은 잡지만 언젠가는 놓아야 한다.
금연시대를 위하여 연작시를 계속 써야한다. 시를 쓰는 것도 일종의 중독이다. 니코틴 대신 시를 쓰는 절대금연시대를 향하여 자 라이터를 끄자.

◆ 김동원(金東圓 1962∼ )
   남정면 구계리에서 태어나서 대구에서 성장한 시인이다. 경산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월간문예지 < 문학세계(1994)>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민족작가회의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문학계간지 < 시하늘> 편집위원을 지냈고 < 글맥> 동인이기도 했다. 저서로는 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풍경」 등이 있다.

 

구 멍

구멍은 어찌 보면 참 많은 것을 가졌다. -저 광활한 우주의 별들이 생겨나고 또 죽어서 스스로 돌아가는 몰락과 생성의 두 구멍이 있는가 하면, 우리같이 수컷들이 알이나 새끼로 자라서 흘러나오는 저 한정없는 암컷들이 한없이 깊고 넓고 편안한, 그 한길 구멍도 있다.
좁게 부끄러운 짓거리를 했거나 크게는 온 나라를 망쳐서 말아먹은 자들이 으레히 숨어서 들락거리는 쥐구멍 같은 것도 있고, 참 착한 것들이 두 귀를 쫑긋거리고 봄나들이 길을 나서는 그 아늑한 수풀가의 토끼 구멍도 있다.
구멍은 또, 여름 밤 도시 옆구릿길의 복개천 아래로 몰래 쏟아놓은 퀴퀴한 인간들이 썩는 오물냄새 나는 수챗구멍에도 있고, 꽝꽝 얼어붙은 겨울 연못가 도랑 밑에 흐르는, 졸졸졸 소리 나는 맑은 봄기운을 흡입하는 그 생기 도는 버들 뿌리의 작은 공기 구멍에도 있다.

구멍은 어찌 보면 참 많은 것을 가졌다. - 이따금 난 산이 몸부림치는 이상한 소리를 바람 부는 뒷산의 동굴 구멍 안쪽 벽에서 들었는데, 어찌 들으면 그 소리는 태초의 첫구멍 내는 소리 같기도 하고, 또또 어찌 들으면 많이 쓴 구멍들의 흥건한 절정의 끄트머리에서 흘러나오는 그 야릇한 소리로, 수만년 제대로 키워온 자연의 그 순리 구멍의 신음쯤으로 알아들었다.
어쩌면 좋은가. 이 하늘과 땅의 그 많은 구멍 중에서 우리는 어떤 구멍을 가져야 하는가. 오뉴월 개도 걸리지 않는 삐삐거리는 콧물소리 내는 콧구멍이 되던가, 아니면, 달빛이 걸어가는 대숲 속에서 은은히 흘러 소리되어 나오는 그 멋진 대금의 피리 구멍 가락이 되던가, 아니면 또, 저 동해 바다 한가운데를 마음껏 휘젓고 다니는 그 고래들의 마구마구 뿜어 올리는 무한 자유의 숨구멍이라도 되던가.

참으로 그 구멍이 하는 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 -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그 무슨 질퍽거리는 운명의 진흙 구멍 속에라도 들어가야만 하고, 또 그 구멍 밖으로 안간힘을 다해 기어나와야만 한다. 마치, 저 백두산 천지 복판에서 날마다 힘차게 밀고 올라오는 그 생수 구멍의 당찬 힘처럼, 우리도 언젠가 한 번은 찬란한 기쁨의 인생을 위해, 온몸으로 어둠의 구멍을 뚫고 나가야만 한다.

 

한국의 가을 사과

조롱조롱 새털구름이 매달려 있는 대추나무 곁이다. 허리 둘레엔 윤기 흐르는 마을 두르고, 여러 가락의 아주 멋진 생각을 두르고, 지방 과수원에는 사과가 첫 생리한다. 꼬옥 물들어 가는 것이 열여섯 계집아이 부끄럼 같다.

…… 햇살에 풍겨드는 고운 몸의 향내는.

그렇다. 어쩜 우리도 착하고 소박하게, 담담하고 둥글게, 속 깊은 하늘이 쓰다듬는 대로 익어 가다 보면, 한 번은 물이 들어도 아주 이쁘게 든다. 마치 꽃밭 속 다투어 피는 꽃들처럼, 한결같이 몸 둘레가 고운 저 한국의 가을 사과처럼, 붉게붉게 물이 든다.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시간 걸리는 저녁 풍경 사이로 구름이 만지고 가는 내 고향 노을은 언제나 싸아하니 복사꽃 향내가 묻어 온다. 살금살금 개울을 밟고 오는 어스름 곁으로 산새들 다투어 밥짓는 연기 피어오르고, 풀벌레 모여 사는 뒷산 숲속엔 사운대는 초여름 솔바람 소리가 좋다.

  이윽고 하나 둘 마을에 불이 켜지면 저만큼 동구밖 달님은 아이들을 모으고, 초록 가지 힘을 주는 느티나무 아래엔 밤도와 늦도록 개 짖는 소리 들리고, 키 낮은 사람들의 어깨 위로 도란도란 별들이 곱기만 하다. 두 줄도 아니고 세 줄도 아니고, 까맣게 몰려가는 시간 속으로 개구리도 제 울음 구령에 맞춰, 논두렁 나란히 한 줄로 섰다.

◆ 김현옥(金賢玉 1963∼ )
   영덕읍 남석리 태생이다. 경북대학교 영문과를 졸업(1985)했고, 경북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졸업, 대구상서여자중학교 영어교사를 지냈다. 영일문학상(1995) 수상과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1997)으로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회원, < 시·열림>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집 그리고 길

햇살 푸르른 따스한 풀밭
드러누워 한없는 단잠에 생을 누이고
길고 긴 꿈의 집 짓고 싶은 마음이여
그 집의 아늑함이 너의 감옥이리니
이 지상 어떤 풍경에도
너의 아름다운 집 꿈꾸지 말고
마음이여, 세상은 네 일생의 거대한 다리일 뿐
헤매임의 여울목에서 똥 같은 욕망과
오줌같이 지린 생각들을 밀어내고
말간 내장과 핏줄 속으로 자맥질하는
너의 투명한 음악이 이끄는 대로
가라, 무소의 뿔처럼 홀로
너의 얼어붙은 슬픔과 불행이
네 잠의 발목 잡아끌어도, 가라
네 미망의 집 뒤돌아보지 말고
길 위에서 네가 부르는 노래
네 생의 연꽃으로 인화되리니
머잖아 누구에게나 밤은 당도하는 것
네 마음이 꽃들, 축제의 등불로 널 지켜 주리니
네 속의 길들 피안으로 발뻗은 때까지
간혹 초대된 잔칫집은 피곤한 길들의 간이역

생의 신발

어떤 깊은 슬픔도
건너고 보면
얕은 개천 같은 것

어떤 높은 벽도
문 하나 달아 놓으면
든든한 울타리 같은 것

발뻗을 때마다
네 발에 걸려드는 쓸쓸함,
신발 삼아 신어 볼렴

자그맣고 둥근 평화

뚫어진 창호지 사이로 새어 나오는 순한 등빛처럼
등빛에 묻혀 나오는 방안의 자잘한 웃음소리처럼
그 웃음소리 닮은 안개꽃 흰 망울처럼
자그많고 둥근 평화 속에
나, 새알처럼 얌전하게 담기고 싶네
자그많고 둥그 평화, 까치집 같은

택시값 없으면 버스 기다리고 버스 그냥 통과해 버리면 걸어가고 걸어가다 지치면 쉬어가고 누에처럼 쉬면서 나비를 꿈꾸는 노래속에 담길

자그맣고 둥근 평화,
내 맘속 투명한 물방울로 맺혀 있는
그대 웃음 같은

◆ 박기현(朴起炫 1964∼ )
울진군 후포항에서 태어나 병곡면 원황리에서 자란 시인이며 화가이다.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으며 개인전 7회와 미술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시집 < 큰 바다에서 만나리(1995)>를 출간하여 등단하였다. 저서로는 「캔바스위에 사과 꽃 향기」, 「화가의 어머니」 등이 있다.

 

사 랑

사랑이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을
화약통을 메고 걷는 것이리라
사랑이란 펄펄 끊는 심장 가지고
이 땅을 풍화시키며 흘러가는 것이리라
사랑이란 또 다른 나를 위해
나의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이리라
사랑이란 나를 먹여
너를 누리게 하는 것이리라

인 생

어떤 여인이 날 찾아와
어머니라 했다.

어떤 여인이 날 찾아와
애인이라 했다.

어떤 여인이 날 찾아와
아내라 했다.

어떤 여인이 날 찾아와
아버지라 했다.

쓰레기를 보며

살다가 죽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해 아래 젖은 마음을
펼쳐 보였어

햇볕이 밝게 내게 얘기했어
아직도 어두운 면이 많아
그림자가 생긴다고

흙 속에 육신을
묻어 두고
오래도록 분해되기를 기다렸어

흙이 따뜻이 끌어 않으면 말을 했어
지상에서 분해 될 수 없는 것은
이 흙 속에서도 영원히
분해 될 수 없다고

다시 살기로 했어
온전히 분해 될 수 있고
온전히 소멸 될 수 있는 날까지
맑고 투명하게 살기로 했어

◆ 유영갑(劉永甲 1965∼ )
   영덕읍 화수리 출생의 시인이다. 청주교육대학교와 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덕초등학교, 야성초등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95년 < 문학세계>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한국문협영덕지부 회원을 지냈으며, 교원예능실기대회 시부문 금상(1998)을 수상했다.

팽 이

나를 두들겨 패라
나는 맞아야 산다
내가 네가 첫 입맞춤을 했거든
그 정렬로 나를 패라
삶이란 외부로부터의 자극이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여
나를 패라.
미친 듯이 맞을수록
미친 듯이 일어서는
나는 팽이다.

나그네

감나무가
까치 밥을 남길 때쯤
세월은
세상 이야기 꼭꼭 박힌
나이테를 하나씩 가지지만
서른 고개를 넘어서는
나의 행장은 허전하다.

깨알도
흰 속살 꼭꼭 채우는데
생채기뿐인 지나온 날들
가을볕에 툭툭 털어 버리고
다시 길을 떠난다.
내 삶의 행장을 채우기 위해

드라이프라워

향기에 취해 날 안아 줄 땐
넌 나의 행복이었어

항상
너의 시선이 가장 먼저 닿는 곳, 그곳에서
아름다운 너의 모습 보며
행복한 너의 꿈속을 찾아간다는 것은
내겐 기쁨이었어.

가끔 내게 주던
그 다정한 눈빛 하나만으로도
내 삶은 행복의 바다였었지.
하지만
일상의 먼지가 나를 감싸 오고
네 마을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 요즘
지금도
너는 나의 전부이지만
나는 너의 벽에 붙은
빛 바랜 장식품일 뿐이야.

◆ 정라곤(鄭羅坤 1950∼ )
   영덕읍 남석3리 출생의 시인으로 영덕초중고를 거쳐 단국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과(행정학 석사)를 졸업했다. 1968년 제13회 학원문학상 입상, 1971년 제10회 신라문화제 일반부 시 차상을 계기로 대구지역 문인들과 동인활동을 한 바 있으며 1984년 대구매일 신춘문예(시부문)와 현대문학 발표를 통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한국시인협회 회원이며, 동협회 사무국 총무간사, 섭외간사직을 4년간(89년∼93년) 역임한 중견시인으로 시집으로는 「꽃의 이름으로」(89)가 있다.
   1969년도에 영덕군 창수면에서 공직을 시작한 이래 대구시, 경북도청을 거쳐 현재 행정자치부에서 서기관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그간 우수공무원표창(내무부장관) 2회, 대통령표창 1회, 녹조근정훈장을 받은 바 있다. 정 시인의 시의 경향은 순수서정성을 바탕으로‘내재율'적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으며, 너무도 쉽게 분노하고 떠들어 대고 과시하려는 우리의 현실속에서 안으로 다스리는 삶의 아름다움을 깨닭게 한다. 특히 시‘공지천에서 띄우는 초대장'은 1993년 한국시인협회가 뽑은 「올해의 시」로 선정된 바 있으며, 현재 영덕신문사 칼럼니스트, 재경영덕읍민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사랑이 깊을수록

사랑이 깊을수록 외로움도 깊다더니
알게 모르게 세상살이
외로워지는 까닭은
세상 모두를 사랑하고 싶어서다.
저녁연기 맵게 타 올라도
눈물 모르던 때나, 혹은
다시 만날 길 없는 친구의
옛 편지 한 귀절이 생각나고
커 가는 아이들의 고운 눈빛이 바로
시(詩)가 되려 할 때 아, 아
나는 외로워지거늘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다더니
세상 살아갈수록 매양
외로워만 지는 것을
사랑도 그만큼 깊어서라 한다면

그로 해서

비속을 헤집고 저편에서
가을하늘보다 청명한 모습으로
그리운 사람 손흔들고 떠난다.
그로 해서
내 가슴엔 호우경보도 없이
순식간에 몸의 구석마다 황톳물이 넘치고
마침내 영혼까지 쉽게 침수된다.
내 마음은 장마철도 한창 때
생각의 모두는 젖어 있어서
우리, 어려운 시절의 만남이나
우리, 가난했던 날의 따스한 숨결도
제대로 떠올릴 수 없고
사랑의 이름조차 이젠 불러볼 수 없다.
그로 해서 기뻤던 날의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그로 해서 슬퍼지는 날의 예측,
차마 떨칠 수 없는 그림자 하나
홀연히 떠나가고 있다.

한 줄의 詩가

시(詩)라면 단 한줄도 읽은 적이 없고
시인의 이름이라면
성(姓)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돌이 아버지가
어디서 구했는지 구겨진 신문을 바름질하며
“출세했으니 소주나 한 잔 사라”고 한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바빠
시가 무엇인지 통 아는 바 없지만
그러나 시라는 것은 모르긴 해도
사람의 마음을 햇살처럼 비춰주는 거라 한다면
아 암, 흘러간 옛 노래만큼 좋은 시는 없제
하루 세끼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에게
시라는 것은 정말 배부른 소린기라
그저 욕심 부리지 않고 분수대로 살면 되능기라”

김씨의 푸념같은, 그러나 꾸밈이 없는 말은
바로 칼날이 되어 가슴에 그대로 와 박힌다.
저렇듯 생활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시절을 뼈아프게 사는 사람에게
한 줄의 시가
가난과 아픔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그들에게 빛과 위안을 주지 못한다면
사실이지, 시란 공허(空虛)할 뿐이고
시인이란 이름은 부끄러운 거지

「詩란
순수하고 깨끗해야 하는 만큼, 그만큼 시인은
생각하는 바 가치의 기준이 높고, 참되어야 하며,
동시에 한 사회나 인간의 삶에 빛과 소금으로서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
시의 본질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잠시, 김씨는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고
돌이의 장래를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같다며
저녁일을 나선다.
어저꾸 저쩌구한 시 한편과 사진이 나란히 붙은
신문 나부랑이가
겨울 햇살이 반쪽 걸린 마루바닥 위에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다.

그래도 오늘을 살며
우리의 진실을 증언해야 하는 한 줄의 詩는
모든 영위중에서 가장 무책임하긴 해도
상주(常住)하는 것은 그러나
시인이 건설한다.

◆ 권동기(權東基 1962∼ )
필명은 람휘(擥輝)·초농(草農)이며, 창수면 오촌리 출생으로 서울에서 신문사, 잡지사, 출판사 등 편집생활을 다년간 한 뒤, 대구에 내려와 잡지사 및 출판사를 운영하였다. 그 후 처녀시집 「천행시」를 출간, 귀농하여 농업에 종사하면서 시문학 창작활동에 꾸준히 정진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천행시」, 「명보시」, 「고성시」, 「추억시」, 「향수시」, 「귀농시」, 「전원시」 등 제7시집이 있다.

농민을 우습게 보지마라

헐벗은 듯이
초라한 듯이
보이는 농민의 뜨거운 가슴을
그대들은 모르리라.

깨끗한 듯이
단정한 듯이
보이는 당신들의 얄궂은 마음을
우리들은 알르리라.

멋진 옷주름을 훗날 벗고나면
그대들은 뭘 하려는가.
그렇지만
농민들은 죽는 그날까지 국민을 향한 신념속에
피땀으로 생명산업을 고수하리라는 믿음을
냉혹히 떨쳐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농민을 우습게 보지마라
언젠가는
천농지락(天農地樂)이 무엇인지 알으리라.

돌아 온 들녘

농로의 저편
맥박소리
타오르고

활짝 핀
전답위에
솟아나는

농심의
뜨거운
열정

들녘에
희망으로
부풀고

전원마다
꿈을 여는
흙지기 사랑.

◆ 임충빈(任忠彬 1946~ )
   지품면 출신으로 시와 수필을 쓴다. 영덕농고, 한국방송통신대학, 단국대 경영대학원, 중앙대 산업경영대학원(식품제조)을 수료하여 경영학 석사를 취득하였다. 1972년에 전우 추천으로 등단하여 왕성한 작품발표를 하고 있으며, 현재 문인활동은 물론, 한국발전연구원, 한국콩연구회, 한국도덕성회복중앙본부 지도위원 등 사회참여를 하고 있다.

장독간

고즈넉히 옹기종기 앉아
따사한 햇살속에 행복을 품고
세월을 되씹으며 곰삭혀
맛과 향(旨味)을 돋운다.

다소곳이 올망졸망 모여
소금같은 지혜를 풀고
인생살이 안살림을 가늠하며
어머니의 손길을 반기며 익어간다.

안방에서 시어머니의 꾸중 듣고
너의 품에 안겨 눈물 흘렸고
남편, 자식 잘돼라고 정화수 떠 놓고
지극정성 빌던 곳, 장독대

제3회 영덕군민의 날에 부쳐
- 복사꽃잔치, 대게큰축제 -

충과 효는 칠보산같이 지켜왔고
예와 절은 오십천처럼 흐느네
예주는 더욱 곱고 아름다워라.

포구에는 대게가 길손의 발길을 잡고
산하에는 연분홍 복사꽃 물결이
오가는 이 가슴을 부풀리며
야시홀의 봄은 익는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로이 어우러져
한마당 큰 잔치를 펼쳐
꽃망울보다 더 탐스럽게
잎사귀보다 더 싱싱하게
우리의 영덕은 살맛난다.

아! 우리의 영덕은
새봄과 더불어 새 옷을 입는다.
새 천년과 함께 새 맘을 닦는다.

(2000. 4. 17.)

◆ 손숙희
지역 출신 문인으로 수필을 중심으로 문학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여성문인이다.

  오랜만에 감꽃을 주웠다. 까맣게 잊고 살아온 세월의 저쪽에서 아침 안개를 걷고 또렷이 나타나는 작은 꽃들. 이슬 내린 아침 마다에 아기자기한 무늬가 박힌 커텐처럼 펼쳐진 추억의 꽃들이 도심의 한 가운데에서 고향의 정취를 한 폭 그림으로 안겨 준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 배달된 우편물 속에 뜻밖의 편지가 하나 있었다. 동기동창회를 한다고 고향 동기생이 보낸 안내장이었다. 30년이 훨씬 더 지난 세월이다. 이름도 많이 잊었고, 모습도 많이 변하여 알아보기 어려울 벗들의 만남이다. 모두들 보고 싶었다. 그 동안 무엇을 하며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다. 풍문으로 근황을 알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가끔 고향에 갔을 때 먼발치에서 보아 온 토박이도 있지만 성장 후 각지로 흩어져 소식 모르는 친구들도 얼마나 많은가.
   50년내의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서 철없는 모습으로 웃고 있는 개구쟁이들이 이제는 지천명의 나이를 앞에 두고 고향 그리움에 가슴이 젖는다면서 보고 싶단다. 쫓기며 바쁘게 살아온 일상 속에서도 틈틈이 고개를 쳐들고 되살아나던 옛날 동네. 곱게 물든 저녁 노을과 미루나무 숲에서 오는 바람을 안고 달리던 방천둑. 오십천 맑은 물에서 은어떼의 유영을 따라 헤엄치던 추억들이 꼬리를 물고 영상처럼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냇물을 건너고 산을 일곱 개나 넘어 학교에 오던 산골 아이의 순하고 맑은 눈빛이 그립고, 먼 거리를 달려서 통학하던 씩씩하고 건장한 체구의 급우가 궁금하였다. 동화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정답고 친밀한 사랑이 그 시절 우리 마음 안에도 꼭 묻혀 있었던 것을 왜 지금에서야 인정하게 되는 걸까.
   신록이 물결처럼 천지를 덮어 오는 어느 휴일이었다. 아침 안개가 뽀얗게 도시를 누르고 있었다. 해 뜨면 화창해질 맑은 날의 예보였다. 일찍 서둘러 집안 일을 마치고 약속된 장소로 달렸다. 넓은 운동장과 구내식당이 아주 좋은 ㅈ공장이었다. 아침부터 도처에서 동기생들이 모여들었다. 전날에 도착하여 전야제를 벌인 팀도 있었다. 모두들 쌓인 회포에 만남의 감격이 너무나 길었다. 잡은 손을 굳게 쥐고 놓을 줄 몰랐다. 삶의 이력이 짧은 시간에 표출되는 시간적인 단면에 서서 서로가 변해버린 모습을 쳐다보며 옛날의 기억을 더듬고 서로를 확인시키는 장면은 이산가족의 만남을 재현하는 기분마져 들었다. 모두들 훌륭하게 성장하여 삶의 기반을 다져놓고 있었다. 여러 분야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든든하게 다지고 사회의 일익이 되어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자랑스러웠다. 그것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체험과 역경과 인내로 이어지는 인생의 수레바퀴를 돌린 종행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위의 대가는 없는 것이기에.
   우리 동기생들은 6·25가 휴전되던 그 해 봄에 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전란의 피해가 학교의 구석구석에 산재하여도 교정에 봄은 찾아왔고, 우리는 원색의 꼬리표를 가슴에 달았다. 무척 힘든 시기였다. 부족한 물자를 아껴 써야 했고 궁핍한 생활을 인내해야 하는 시대적 운명을 함께 겪어야 했기에 극기심, 근검, 협동은 불문율이었고 생활 그 자체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서로 더 친밀한 인간 관계를 맺게 되었고, 혈맥이 아니라도 가족 같은 정을 느끼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모임에 참석한 동기생들은 백여 명이 되었다. 반에도 못 미치는 숫자이긴 하지만 성황을 이룬 분위기와 어떤 큰 일도 해낼 것만 같은 힘이 있었다. 넓은 운동장에는 벌써부터 축구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거주 지역별로 유니폼을 통일하여 푸른 풀밭을 뛰면서 학창시절의 혈기를 되살리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학반 대항 축구 시합이나 동네별 운동경기에서 열전분투하던 그 모습 그대로 였다. 과거와 현재가 한눈에 드나들었다. 남녀 혼성조의 경기 프로그램도 흥미 진진하였다. 스커트 아래에 구두를 신고도 잔디 위을 달리고 공을 굴리고 풍선을 터뜨렸다. 갖가지 경기가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식당에서 준비한 점심, 그 많은 사람들이 먹고도 남은 푸짐한 간식과 또 지역별로 마련해 온 정성어린 선물들, 정말 대단한 성의로 준비한 행사였다.
   행사 장소로 사용한 ㅈ공장은 풀밭 축구장뿐만 아니라 둘레의 조경이 공원화되어 있어 놀라웠다. 입구에는 플라타너스 길이 길게 뻗어 있어 운치가 있었고, 그 양 옆에 가꾸어 놓은 화단에는 장미꽃과 철쭉, 키 큰 나무, 작은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며 향기를 흩날리고 있었다. 건물 사이사이에까지 수목이 울창하여 도시 속의 전원이었다. 고향의 풍경, 옛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무심히 걷던 중 발 밑에 수 없이 깔린 감꽃을 보았다. 깜짝 놀라 하늘을 쳐다보았다. 감나무였다. 새로 나온 잎새들 사이로 노란 꽃이 한창이었다. 고향에 온 느낌이었다. 고향 마을엔 감나무가 많았다. 안개 덮인 오월 아침이면 감꽃이 마당 가득 내려 앉았다.새벽 여명이 문살에 오르면 눈 비비고 마당에 내려와 밤하늘 별 같은 모습으로 내려앉은 감꽃을 주웠다. 그렇게 새날을 맞이한 유년기를 그리며 감꽃을 손수건에 주워 담았다.
   성장한 후에도 추억은 동심의 근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한 그리움의 샘은 언제나 어린 시절에 가 있었다.
감꽃과 새소리, 물소리, 바람과 구름으로 가득 채운 정감 어린 수채화의 화면 같은 세계.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감꽃을 길게 실에다 꿰었다. 송이마다 추억을 담고 그리움을 꿰었다. 멧방석 깔고 앉아 작은 왕국의 주인공을 연출하던 유년시절의 유희를 흉내내며 꿈속을 달리고 있었다. 고향의 푸른 하늘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사철 다른 소리로 흐르던 시냇물 소리가 귓전을 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하루가 고향의 감나무 아래에서 머물고 있었다.

◆ 김경숙(金敬淑 1955∼ )
   병곡면 원황리 출생의 수필가이다. 계명대학교 가정과를 졸업(1979)하고 경북 영주 동산여자상고에서 교편을 잡았고, 푸른방송 문화센터 < 글쓰기 지도자 과정>의 강사를 지냈다. 1993년에 대구일보 작품공모에 수필 「도룡뇽을 키우는 아이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대구문인협회, 영남수필문학회, 대구여류문학회 회원을 지냈다.

퍼즐 풀기

  누구에게나 특별히 좋아하는 일이 한 가지쯤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게 된다. 또한 직업이나 취미도 아주 다양하다.
   나에게는 남다른 취미가 있다. 그리 별난 것은 아니지만 낱말 퍼즐을 푸는 것이다. 그것도 조금씩 남아도는 자투리 시간에 그걸 풀어나가다 보면 재미도 있지만 다 맞췄을 때 성취감이 생겨 더욱 좋다. 더러는 국어사전을 찾아본 뒤에 맞추지만 대개 가로의 한 글자, 세로의 한 글자가 아주 유력하게 작용하여 쉽게 풀리도록 도와주기에 금방 풀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발자국 하나, 머리카락 한 올이 단서가 되어 미궁에 빠질 뻔했던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나는 나의 생활 공간 속에서 좀더 즐겁고 활기차게 살아보려고 이 취미를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구독하고 있는 신문에서는 고맙게도 1주에 1편씩 낱말 퍼즐을 다뤄주니 반갑고, 우리 집으로 부쳐온 몇 회사의 사보에서도 퍼즐을 만날 수 있으니 1주에 1편 이상 즐거움의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다. 어느 때는 가족들 뒤치다꺼리에 바빠서 늦은 아침밥을 억지로 먹게 되는데 그럴 때 퍼즐을 풀며 먹으면 맛있는 반찬이 있기라도 하듯 얼른 먹을 수 있어 좋다. 그 짧은 10여분의 시간이 나의 생활을 상큼하게 만들어 주는 셈이다.
   어느 모임에서 자신의 취미를 발표할 시간이었는데 내 차례가 되어 일어섰다.
“제가 어렸을 때는 별다른 장난감이 없어서인지 무엇이든 만들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밀짚을 땋아 모자 만들기, 여치집 만들기, 털실로 주머니 짜 만들기, … . 하지만 이제는 치매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낱말 퍼즐을 즐겨 풉니다. 그것이 저의 취미가 되었습니다.”
   듣고 있던 사람들은 약간 의아한 눈빛이더니 이내 웃음을 띤 채 고개를 끄덕이며 참 특이하다고 했다.
   오늘은 참 희한한 날입니다.
   오며가며 자주 들리던 서점에서 가서 선물할 책을 하나 샀더니
“참, 지난번에 퍼즐만 엮어둔 책 찾으셨죠? 서점 대청소하면서 책 자리도 바꾸고 정리하다가 오래된 퍼즐책 하나 챙겨뒀어요. 요즘엔 이 회사가 없어졌는지 이런 책 안나오는 것 같아요.”하며 누리끼리한 책 한 권을 건네주어서 받아왔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내가 혹시 퍼즐 책은 없냐고 슬쩍 한 번 물어본 기억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은 기뻐서 더 바빠졌다.
   오자마자 그 책을 거실에 있는 책 바구니에 담아두며 얼마나 뿌듯해 했는지 모른다. 여느 때 꼭 사고 싶었던 책을 사들고 오면 빨리 보고 싶어서 다른 일을 후딱 해치우던 그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자투리 시간마다 퍼즐을 한 편씩 풀면서, 사전을 뒤적이게 되고 모르는 걸 새롭게 알아내는 즐거움에도 빠질 것이다. 그리고 나의 생활 속에서 가끔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일을 만나도 결코 겁내지 않을 거다.
   세상 속에서 우리 앞에 맞서는 어려운 시련들도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가 보시기엔 한 편의 퍼즐과 같으리라.
   우리가 그 문제를 끌어안고 헤쳐나갈 때 더러는 혼자의 힘으로 쉽게 풀기도 하겠지만, 더러는 가로의 한 글자가 힘이 되어 풀리고, 더러는 세로의 한 글자가 힘이 되어 풀리고, 그래도 안 풀리는 것은 사전의 힘을 빌리듯 창조주께 의지하면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시인할 때, 자연스레 풀려지는 그런 퍼즐 한 편인 것을 실감나게 깨우친다.
   우리의 일상이 날마다 가족의 도움, 이웃의 도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니 그 분들이 각각 가로 글자, 세로 글자가 되어 주어 어려운 난관도 견뎌내며 이겨나가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퍼즐을 풀 듯 나의 앞에 나타날 크고 작은 문제들을 조심스레 풀어나가며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