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절 음직 및 일천 (蔭職 及 逸薦) 음직이란 고려시대 이래 공신과 5품 이상의 고급관료 자제들에게 부조(父祖)의 공훈을 참작하여 자손들에게 주어지던 관직으로 대개 실무와 관계없는 한직이거나 산직이었다. 또한 일천은 중신이나 지역의 수령, 그리고 유림에서 학식과 덕망이 있는 선비를 추천하여 관직에 나가게 하는 것으로 이도 대개 한직이나 산직이 대부분이었으며, 주로 참봉, 감역, 교관, 주사와 같은 하위 관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한직과 달리 능력에 따라 정승, 판서에도 진급할 수 있을 정도로 품계의 상승에는 제한이 없었다. 김승중(金承重) : 본관은 수안으로 조선 초기의 인물로 부친은 현감을 지낸 김성정(金成鼎)이다. 학문이 깊었으나 벼슬길을 단념하고 은거하였으며, 품계로는 통덕랑에 올랐다. 김정몽(金正蒙) : 본관은 수안으로 부친은 통덕랑 김승중이다. 현감을 지냈다. 김의령(金義齡) : 본관은 야성(영덕)으로 전서를 지낸 김처령(金處齡)의 동생으로 통덕랑의 품계를 받았다. 배문희(裵文) : 본관은 김해로 조선 초기의 인물이며, 부친은 야은(野隱) 배담(裵湛)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능하여 경향 각지에 문명이 있었으며, 단종 폐위 때에 향리에 내려와 음풍농월하며 세월을 보냈으며, 기자전참봉을 지냈다. 이여우(李如瑀) : 본관은 영천으로 학문과 덕행으로 공조정랑을 받았다. 신의제(申義濟) : 본관은 평산으로 호는 삼우정(三友亭)이며, 부친은 선교랑 신봉상(申鳳祥)이다. 임진왜란 때에 화왕산성진에 참가하였으며, 선무랑의 품계를 받았다. 신득서(申得瑞) : 본관은 평산으로 풍림 신규년의 둘째 아들로 성격이 호탕하였으며, 부친 신규년의 순절에 따라 평생토록 연회와 음악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아들 신영남(申英男)의 훈공으로 기자전 참봉을 제수받았다. |
김광국(金光國) : 본관은 수안으로 부친은 주부 김흔(金昕)이다. 김천도찰방과 장악원정을 역임하였다. 김세명(金世鳴) : 본관은 야성으로 부친은 진무공신이며, 참의로 증직받은 김선호(金善豪)이다. 문행(文行)이 있었으며, 부친의 훈공으로 인조 26년(1648)에 충의위를 제수받았다. 박홍달(朴弘達) : 본관은 강릉으로 부친은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박인걸(朴仁傑)이다. 선무랑의 품계를 받았으며, 금정도찰방을 역임하였다. 김정구(金鼎九) : 본관은 야성으로 부친은 충의위 김세명이다. 조부 김선호의 훈공으로 현종 13년(1672)에 부친의 충의위를 이어 받았다. 김남성(金南星) : 본관은 야성으로 부친은 충의위 김정구이다. 증조부 김선호의 훈공으로 숙종 31년(1705)에 충의위를 이어 받았다. 박윤려(朴潤麗) : 본관은 밀양으로 첨지중추부사 박만채(朴萬采)의 손자이다. 영조대에 통덕랑의 품계에 올랐다. 김의현(金義鉉) : 본관은 김해로 충선공(忠宣公) 김성하(金成夏)의 증손이다. 선조의 훈공으로 영조대에 선무랑의 품계를 받았다. 김계몽(金啓蒙) : 본관은 수안으로 부친은 통덕랑 김승중이다. 품계는 선교랑, 전연(典捐) 참봉을 제수받았다. 박대붕(朴大鵬) : 본관은 강릉으로 부친은 부위 박자창(朴自昌)이다. 숭인전 참봉을 제수받았다. 김 호(金虎) : 본관은 야성으로 부친은 진사 김응하(金應河)이다. 문명이 화려하였으며, 일찍부터 필력이 웅건(雄健)하여 사림의 추천으로 중종대에 기자전참봉을 제수받았다. |
김한문(金漢文) : 본관은 수안으로 부친은 선교랑 김계몽이다. 관직으로 광평 권관을 지냈다. 김안례(金安禮) : 본관은 수안으로 부친은 주부 김인제(金仁濟)이다. 관직이 군자감 판관에 이르렀다. 김 륙(金一) : 본관은 수안으로 부친은 군자감 판관인 김안례이다. 품계는 충의위에 이르렀다. 김순조(金順祚) : 본관은 김해로 부친은 김광중(金光重)이다. 관직이 금부도사에 이르렀다. 강입봉(姜立奉) : 본관은 진주로 부친은 강모노(姜模老)이다. 영조 29년(1753)에 종사랑에 이르렀다. 원복문(元福文) : 본관은 원주로 좌익공신예조판서 원산군 문정공 김효연(金孝然)의 후손이다. 증직으로 참판을 제수받은 김태구(金泰龜)의 현손으로 선조들의 공훈으로 병조정랑을 제수받았다. 차복주(車輻柱) : 본관은 연안으로 자는 원중(圓重)이다. 영조대의 인물로 부친은 절충장군 차일도(車一道)이며, 율와(栗窩) 차복신(車輻信)의 동생으로 형과 함께 책상을 맞대어 강론하며, 토론하여 학문을 이루었으며, 품계가 통훈대부에 이르렀다. 김 정(金一楨) : 본관은 수안으로 김하구의 5세손으로 선공감가감역(膳工監假監役)에 이르렀다. 김한고(金漢高) : 본관은 김해로 현감 김영서(金永瑞)의 9세손이다. 사복시정에 이르렀으며, 교하(交河)에서 영덕으로 이사와서 살았다. 김정채(金正采) : 부친은 가선대부 김유남(金有楠)으로 원릉참봉을 지냈다. 원석준(元錫俊) : 본관은 원주로 부친은 병조정랑 원복문으로 생부는 가선대부 원유문(元有文)이다. 장릉참봉을 제수받았다. |
최흥춘(崔興春) : 부친은 호군 최봉한(崔鳳翰)으로 성품이 곧고 법률에 밝아 사람을 대할 때는 성인의 법을 본받아 하였다. 헌종대에 사직을 제수받았다. 최익기(崔翼基) : 본관은 경주로 초시에 급제하여 통사랑 감역으로 벼슬에 나아가 사헌부감찰과 통훈대부를 받았으며, 도원도찰방을 역임한 후 통정대부에 승급되었다. 김동락(金東洛) : 본관은 경주로 승지 김봉(金鳳)의 현손이다. 호는 만송(晩松)으로 일찍부터 전원생활을 즐기며, 스스로를 위안하였으며, 명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원세찬(元世燦) : 본관은 원주로 부친은 참봉 원석준(元錫俊)이다. 고종대에 영릉참봉을 제수받았다. 김정무(金政武) : 본관은 경주로 부친은 김세락(金世洛)이다. 가학을 이어받아 세상의 성공을 따르지 않고 학문에 힘써 유학자들로부터 추앙을 받았으며, 호를 관심헌(觀心軒)으로 지었다. 참봉에 제수되었다. 오상욱(吳尙郁) : 본관은 해주로 부친은 가선대부 오성관(吳性寬)이다. 고종 19년(1882)에 무과에 급제하여 고종 20년(1883)에 선략장군부사과에 올랐다. 김도택(金道宅) : 정숙공 김인경(金仁鏡)의 후손으로 고종대에 전화과(電話課) 주사를 지냈다. 윤자철(尹滋哲) : 본관은 파평으로 효성과 우애가 있어 칭송을 받았으며, 부사직을 제수받았다. 한제인(韓悌仁) : 본관은 청주로 영의정 한효원(韓效元)의 후손으로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 신석주(申錫周) : 본관은 평산으로 부친은 중직으로 통정대부를 제수받은 신명경(申命敬)이다. 충의참봉을 제수받았으며, 통정대부에 승급되었다. 남재하(南在夏) : 본관은 영양으로 부친은 도정 남건수(南健壽)이다. 훈련원주부에 제수되었다. |
민병인(閔丙仁) : 본관은 여흥으로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의 후손인데, 장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김호권(金浩權) : 본관은 김녕으로 김명남(金命南)의 5세손이다. 품계는 장사랑에 충훈부도사를 제수받았다. 김수한(金壽漢) : 본관은 중화로 당악부원군 김철(金哲)의 후손으로 평양감리를 지냈다. 최익래(崔翼來) : 본관은 경주로 부친은 도사 최진하(崔震夏)이다. 우애가 있었으며 친족간에 화목하였다. 명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이규철(李圭哲) : 본관은 월성으로 익재 이제현의 후손이다. 덕성이 있고 중망이 있어 도사를 제수받았다. 박봉래(朴鳳來) : 본관은 죽산으로 문정공 박원정(朴元貞)의 후손이다. 검소하고 순박하였으며, 사릉참봉을 제수받았다. 편무진(片茂臻) : 본관은 중국의 절강으로 부친은 동지중추부사 편치한(片致漢)이다. 지릉참봉을 제수받았다. 김치곤(金致坤) : 본관은 경주로 호군 김한추(金漢秋)의 현손이다. 금부도사를 제수받았다. 신태린(申泰麟) : 본관은 평산으로 통정대부로 증직된 신명경(申命敬)의 손자이다. 경릉참봉을 제수받았다. 남재식(南在) : 본관은 영양으로 계공랑을 지낸 남승정(南承鄭)의 8세손으로 가학을 이어 받아서 고종대에 궁내부주사를 지냈다. 황기준(黃基駿) : 통정대부 황충로(黃忠老)의 6세손으로 고종대에 궁내부주사를 지냈다. 황도현(黃道鉉) : 통정대부 황충로의 8세손으로 원릉참봉을 지냈다. |
강영근(姜永根) : 본관은 진주로 종사랑 강입봉의 7세손이다. 장릉참봉을 제수받았다. 정진도(鄭鎭道) : 부친은 가선대부 정치교(鄭致喬)이며, 참봉을 지냈다. 정치환(鄭致煥) : 부친은 호군 정유형(鄭裕衡)으로 재주가 있고 영민하였으며, 혜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강대하(姜大夏) : 본관은 진주로 정제환(鄭齊煥)의 5세손으로 고종대에 사재감참봉을 지냈다. 강원중(姜元中) : 본관은 진주로 부친은 도정 강대우(姜大寓)로 고종대에 건원릉참봉을 지냈다. 오시섭(吳始燮) : 본관은 고창으로 현감 오석복(吳碩福)의 후손이다. 후릉참봉을 제수받았다. 남재정(南在楨) : 본관은 영양으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현릉참봉을 지냈다. 박노백(朴魯伯) : 문도공(文度公) 박훈(朴薰)의 후손이다. 참봉을 제수받았다. 박노철(朴魯哲) : 문도공 박훈의 후손으로 주사를 지냈다. 신중식(申重湜) : 본관은 평산으로 동지중추부사 신삼균(申三均)의 손자이다. 사릉창봉을 제수받았다. 김의식(金義植) : 본관은 의성으로 부친은 동지중추부사 김낙문(金洛文)이다. 목릉참봉을 제수받았다. 김두환(金斗煥) : 본관은 의성으로 부친은 목릉참봉 김의식이며, 궁내부주사를 제수받았다. 김현백(金顯伯) : 호군 김송지(金松支)의 증손으로 충훈부도사를 제수받았다. 김현업(金顯業) : 충훈부도사 김현백의 동생으로 기자전참봉을 제수받았다. |
김현득(金顯得) : 기자전참봉 김현업의 동생으로 표훈원(表勳院) 주사를 지냈다. 오일섭(吳日燮) : 부친은 통정대부 오현교(吳鉉敎)이며, 기품과 법도가 있었으며, 일을 처리함에 두루 영민하였으며, 중추원의관을 제수받았다. 이헌태(李憲泰) : 본관은 영천으로 의릉참봉을 지냈다. 최건식(崔健植) : 본관은 경주로 동지중추부사 최남수(崔南壽)의 손자이다. 영릉참봉을 제수받았다. 조용화(趙鏞和) : 본관은 함안으로 참의 조천도(趙天道)의 후손으로 참봉을 제수받았다. 차희수(車熙壽) : 본관은 연안으로 차복신의 증손이다. 본성이 근검하였으며,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장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차규진(車奎鎭) : 본관은 연안으로 차복신의 5세손이다. 가난하였으나 부모를 봉양함에 지극정성을 다하였다. 효자란 소리를 들었으며, 혜릉참봉을 제수받았다. 이규춘(李圭春) : 부친은 동지중추부사 이태영(李泰榮)이며, 통덕랑의 품계를 받았다. 김덕수(金德守) : 부친은 통정대부 김도택으로 효성과 우애가 있었으며, 참봉을 제수받았다. 장영곤(張永坤) : 본관은 인동으로 제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이희영(李熙榮) : 부친은 이상욱(李尙旭)으로 명릉참봉을 제수받았다. 이시우(李時雨) : 본관은 경주로 문효공 이천(李)의 후손이다. 삼황오제의 서책에 몰입하여 명리를 초탈하였다. 후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양화복(梁化福) : 부친은 가선대부 양덕구(梁德九)로 건릉참봉에 제수되었다. 박본곤(朴本坤) : 통정대부 박기학(朴起學)의 6세손으로 참봉을 제수받았다. |
박주곤(朴周坤) : 통정대부 박기학의 6세손으로 근검하고 우애가 있었으며, 구휼하기를 좋아하고 가난을 떠나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였다. 참봉에 제수되었다. 김정식(金晶植) : 부친은 동지중추부사 김응여(金應呂)로 부사용에서 충훈부도사에 승급되었다. 박병인(朴炳寅) : 본관은 밀양으로 청재(淸齋) 박심문(朴審問)의 후손으로 장릉참봉을 제수받았다. 김인배(金仁培) : 본관은 김해로 부친은 증직으로 참의에 오른 김현치(金顯致)로 음직으로 부사용에서 의금부도사로 승급되었다. 이일핵(李日核) : 본관은 영천으로 밭갈고 독서함을 좋아하여 대둔산에 들어가 힘써 후학을 지도하였으며, 참봉을 제수받았다. 최성수(崔成壽) : 본관은 경주로 근검절약하고 우애가 독실하였으며, 고종대에 중추원의관을 지냈다. 이수영(李秀榮) : 본관은 경주로 부친은 가선대부 이응협(李應協)이며, 표훈원 참봉을 지냈다. 이유영(李有榮) : 본관은 경주로 부친은 가선대부 이응협이다. 건원릉 참봉에 제수되었다. 최술조(崔述祖) : 본관은 경주로 가선대부 최우흥(崔宇興)의 손자이다. 혜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김두환(金斗煥) : 도사 김학로(金學魯)가 부친으로 효성과 우애가 있었으며, 관리서 주사를 제수받았다. 이우준(李雨俊) : 본관은 경주로 효성과 우애가 있었으며, 고종대에 참봉을 제수받았다. 박해성(朴海成) : 충청남도 관찰부 주사를 지냈다. |
신석호(申錫浩) : 본관은 평산으로 장절공 신숭겸의 후손이다. 공릉참봉을 제수받았다. 강우형(姜右馨) : 본관은 진주로 통정대부 강태형(姜泰馨)의 동생이다. 청렴하고 베풀기를 좋아하였으며, 학문에도 힘썼다. 주사에 올랐다. 김상련(金尙鍊) : 본관은 김녕으로 충은당(忠隱堂) 김응일(金應一)의 손자이다. 봉직랑의 품계에 올랐으며, 임금으로부터 효경 1부를 받았다. 윤상국(尹相國) : 본관은 파평으로 부친은 가선대부 윤석동(尹錫東)이다. 혜릉참봉에 제수되었다. 함경섭(咸景燮) : 만호 함득선(咸得善)의 후손으로 효성이 있었다. 호를 화헌(華軒)이라 하였으며, 현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강철규(姜喆奎); 본관은 진주로 월은(月隱) 강유(姜楡)의 손자이다. 늙으막에 수석을 가려 문앞에 전시하여 눈을 즐겁게 하였으며, 장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윤석렬(尹錫烈) : 본관은 파평으로 통정대부 윤립(尹立)의 7세손이다. 혜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오익수(吳益壽) : 본관은 해주로 오계근(吳啓根)의 손자이며, 사헌부감찰을 제수받았다. 오재흥(吳在興) : 본관은 해주로 사헌부 감찰 오익수가 부친으로 지릉참봉을 제수받았다. 남 재(南一在) : 본관은 영양으로 송정 남수(南須)의 후손이다. 효성이 있어 향리에서 칭송이 있었으며, 도사에 이르렀다. 윤상문(尹相文) : 본관은 파평으로 혜릉 참봉 윤석렬이 부친으로 원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강국형(姜國馨) : 본관은 진주로 통정대부 강태형의 동생이다. 성품이 법도가 있었으며, 단아하여 친구들로부터 중함을 받았다. 장릉참봉에 제수되었다. |
이규명(李圭明) : 통정대부 이휘영(李徽榮)이 부친으로 후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강희수(姜曦秀) : 본관은 진주로 부원군 강석덕(姜碩德)의 후손이다. 경학에 전념하였으며, 행동을 올바르게 하였다. 호를 송령(松嶺)이라하였으며, 참봉에 제수되었다. 윤인하(尹仁夏); 본관은 파평으로 부친은 윤치동이다. 조상을 모시고 자손을 가르침에 법도로 하였으며, 정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권병전(權丙銓) : 본관은 안동으로 서적과 역사에 관심을 두고 스스로 즐기며, 학문을 하니 많은 성취가 있었으며, 명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신태려(申泰驪) : 본관은 평산으로 고종대에 장릉참봉을 제수받았다. 윤원하(尹元夏) : 본관은 파평으로 부친은 가선대부 윤명동인데, 참봉에 제수되었다. 강영희(姜寧熙) : 본관은 진주로 부친은 가선대부 강시형(姜時馨)이다. 성품이 너그러웠으며, 학문이 정박하였다. 고종 25년(1888)에 장사랑의 품계에 영릉참봉을 제수받았다. 오병수(吳秉秀) : 본관은 고창으로 현감 오석복의 후손으로 사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권명훈(權明勳) : 본관은 안동으로 성품이 활달하였으며, 충성을 힘써 함으로써 몸의 근본을 삼았다. 명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강태영(姜太永) : 본관은 진주로 청렴하고 검소하였으며, 스스로를 지키며, 산림과 더불어 즐겼다. 고종 11년(1874)에 참봉에 제수되었다. 이일문(李一文) : 본관은 경주로 명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임병춘(林炳春) : 본관은 평택으로 부친은 임주식(林柱植)인데, 장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최수조(崔洙祚) : 부친은 최인진(崔麟鎭)으로 문학과 사장에 능하였으며, 고종대에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 |
김현윤(金顯允) : 통정대부 김정식(金政植)이 부친으로 궁내부 주사를 지냈다. 김상호(金相浩) : 부친이 김흥락(金興洛)으로 효성과 우애가 있어 친척들로부터 흠모와 존경을 받았는데, 참봉에 제수되었다. 남기조(南箕朝) : 본관은 영양으로 광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김현택(金顯澤) : 궁내부주사 김현윤의 동생으로 제릉참봉에 제수되었다. 남재정(南在晶) : 몸소 밭갈고 독서하며, 양친을 극진히 받들었으니, 동료들이 모두 칭송하였다. 순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이양춘(李陽春) : 본관은 영천으로 학문이 박식하여 여러 번의 천거로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김흥규(金興圭) : 본관은 김녕으로 성품이 순박하였으며, 일찍부터 가훈을 이어받았다. 송은(松隱)이라 호를 붙였으며, 창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이기호(李璣) : 본관은 영천으로 학행이 있어 산림의 천거로 가선대부 돈녕부 첨정을 받았다. 남익조(南翼朝) : 본관은 영양으로 방산 허훈의 문도이며, 효성과 우애가 독실하였으며, 산수를 즐겼다. 명릉참봉에 제수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