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민 담(民譚)

(1) “이랴” 소리의 내력

  옛날 한 시골에 아이를 장가 보냈는데 며느리가 어찌나 힘이 센지 장사라고 할 정도였다. 하루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시장에서 큰 소 한마리를 사가지고 몰고 오는 데 소가 움직이지 않았다.
  며느리가 소를 번쩍 들어 머리에 이고 한참 오다가 내려놓으니 소가 마지못해 꾸벅꾸벅 거리며 가다가 얼마쯤 못 가서 다시 소가 또 움직이지 않았다. 며느리는 또 소를 번쩍 들어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내려놓으니 얼마쯤 가다가 또 움직이지 않자 며느리가 큰소리로 「이랴!」
  하고 말하자 소는 또 머리에 이고 갈까 겁을 먹고 꾸벅꾸벅 갔다고 한다.

<1971. 8. 김차남(권성희) 병곡면 원황리>

(2) 도루묵(도루메기)의 유래

  옛날 임금님이 평복 차림으로 백성들이 어떻게 사나 싶어 시골 어느 한 집에 들어가서 밥상을 받았는데 그 고기를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
  대궐로 돌아온 임금님은 또 그 고기가 생각나서 자초지종의 시골집 이야기를 하고 그 고기를 구해 오라고 하였다. 임금님이 그 고기 맛을 보니 시골 농부의 집에서 먹던 때보다 맛이 없었다.
그래서 임금님은 “도루 가지고 가라” 했다 해서 이름을 도루메기라 하였다.

<1971. 8. 김영근(김금자) 축산면 축산3리>

(3) 백일홍의 전설

  옛날 한 마을에 마음씨 착한 아버지와 두 동생을 보살피는 누이가 살았다.
  어느날 아버지가 산에 나무하러 가다가 구렁이 한 마리를 죽여 버렸다. 그 뒤부터 아버지의 성격은 점점 거칠어 졌고 포악해져 갔다. 어느날 밤 누이의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서 “옥매화를 따서 다려 먹이면 너희 아버지의 병은 낳을 것이다.”하고 꿈 속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누이는 이튿날 그 꽃을 찾아 온 산천을 헤매어 다닌지 어느 듯 석달 열흘(백일)이 가까워지자 누이는 지칠대로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또 노인이 어렴풋이 나타나서 「빨리 일어나 보아라」 하였다. 누이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둘려 보았다. 노인은 간 곳도 없고 이상스럽게도 바위 위에 한떨기 예쁜 꽃이 피어 있었다. 너무 기뻐서 바위 위로 급히 뛰어 오르다가 그만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누이가 죽은 그 자리에 한 떨기 빨간 꽃이 피어났다. 그래서 꽃 이름을 백일홍이라 했다.

<1971. 8. 손진련. 영해면 성내1리>

(4) 꼬꾸랑 할머니

  옛날에 꼬꾸랑 할머니가 꼬꾸랑 엿을 팔려 가다가 꼬꾸랑 똥을 누었다. 그때 꼬꾸랑 개가 와서 꼬꾸랑 똥을 먹자 꼬꾸랑 막대기로 꼬꾸랑 개를 때리니 꼬꾸랑 깽깽하며 달아나자 꼬꾸랑 할머니는 꼬꾸랑 길로 가다가 꼬꾸랑 엿이 굴러가자 꼬꾸랑 길에서 앉아 울었다.

<1972. 남차희. 창수면 오촌리>

(5) 바보 남편과 배(梨)

  옛날에 잘 잊어버리는 남편이 있었다. 성을 가르쳐 주어도 금방 잊어버리곤 하였다. 이 사람의 성은 배(裴)가였다. 하루는 그의 아내가 성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옷자락에 배(梨)를 달아 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손님이 왔다. 그 손님이 자기 성명을 먼저 말한 다음 「자네 성은 뭔고?」하고 물었다. 갑자기 성을 또 잊어버린 그는 아내 생각을 하면서 옷자락을 내려다보았다. 배는 떨어져 버리고 꼭지만 달려 있었다. 그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손님에게 “으음” 한 다음 큰 소리로 「내 성은 꼭지가요」하더란다.

<1971. 8. 이기오. 영해면 성내1리>

(6) 바보와 승려복

  옛날에 어떤 바보가 살았다. 하루는 이 바보가 담뱃대를 손에 들고 산길을 걷는데 담뱃대 쥔 손이 앞으로 오면 「내 담뱃대 여기 있네.」 하다가 손이 뒤로 가면 「내 담뱃대 어디 갔지?」 하고 찾는 바보였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냇가에서 중(僧)과 함께 멱을 감았는데 중이 먼저 나와서 그 바보의 옷을 입고 가버렸다. 바보는 하는 수 없이 중 옷을 입고 자기를 한참 두리번 그리고 찾더니만 자기를 보고 「중은 여기 있는데 나는 어디 갔노?」 하드란다.

<1972. 9. 박응천(박길순) 병곡면 원황1리>

(7) 어리배기와 싸리배기

  옛날 옛적에 어리배기와 싸리배기라는 형제가 살았다. 집이 몹시 가난해서 두 형제는 거지로 나섰다. 한 동네 들어서는데 한 집에는 시커먼 연기가 오르고 한 집에는 맑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싸리배기는 욕심이 나서 동생 어리배기를 맑은 연기 나는 곳으로 보내고 자기는 시커먼 연기 나는 곳으로 갔다. 싸리배기가 갔는 집은 빨래를 삶는 집이었고 어리배기가 갔는 집은 정승집이었다.
  동생 어리배기는 정승집에서 밥 한그릇을 잘 얻어 먹고 와서 형인 싸리배기에게 자랑하였다. 싸리배기는 화가 나서 어리배기의 눈을 찔렀다. 어리배기는 눈에 피를 흘리면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다가 날이 저물자 어느 이상한 집에 들어가 숨어 있었다.
깊은 밤 자정쯤 되었을 때 머리에 외뿔 돋은 도깨비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얼마 뒤 도깨비들이 둘러앉아서 이상한 방망이 하나를 한 번 두드리고 < 밥 나오너라 똑딱> 하니 밥상이 나왔다. 도깨비들은 즐겁게 밥이랑 과실이랑 먹으면서
「어리배기는 정말 바보야 아까 그 바위 곁에 있는 샘물에 눈을 씻으면 곧 낳을 것을 그것도 모르고 울고 있잖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어리배기는 살금살금 밖으로 나와 바위 곁으로 가 보았다. 물이 있었다. 아픈 쪽 눈을 물에 씻으니 정말 씻은 듯이 낳았다.
  어리배기는 조약돌을 주워 들고 도깨비 집으로 다시 와서 숨어 있었다. 도깨비들이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을 때 조약돌을 밥상 위에 던지자 놀란 도깨비들은 방망이를 버리고 모두 도망쳐 버렸다. 어리배기는 방망이를 가지고 마을로 내려왔다. 형 싸리배기는 정승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리배기는 방망이를 한번 두드려 새옷을 갈아입고 또 한번 두드려 집을 지은 다음 형에게 찾아가서 절을 하고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싸리배기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였다.
  동생 어리배기의 말을 들은 형 싸리배기는 나도 그렇게 해야 되겠다고 하고 자기 눈을 자기가 까서 도깨비 집으로 찾아갔다. 방망이를 잃어버린 도깨비들은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서 싸리배기를 어리배기로 알고 대들보에 매어 달아놓고 수 없이 때렸다.
  어리배기가 갔을 때는 싸리배기는 이미 초죽음이 되어 있었다. 어리배기는 그 요술방망이로 싸리배기의 건강을 회복하게 하였다.
그 뒤 형 싸리배기는 동생을 사랑하고 또 예쁜 색씨 얻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다.

<1972. 8. 박종기 영해면 벌영리>

(8) 딸의 변명

  시집간 딸의 집에 친정 아버지가 찾아갔다. 저녁 식사 때 열무김치의 시원한 맛이 생각나서 이부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탕건만 찾아 쓰고 옷을 벗은 그대로 살며시 사돈네 부엌으로 가서 열무김치를 찾다가 그릇이 떨어지는 소리에 사돈에게 그만 들키고 말았다. 이때 딸이 일어나서 보고하는 말이 「친정 아버지가 딸의 집 부엌에 와서 반찬을 잡수시면 그 딸은 잘 산다고 합니다.」하고 아버지 체면을 세웠다고 한다.

<1972. 8. 최봉춘(강경순) 영해면 연평리>

(9) 소쩍새의 전설

  옛날 어느 집에 며느리가 밥을 하려고 하면 시어머니가 큰 솥은 모두 감추어 버리고 작은 솥만 내 주어 밥을 짓게 하였다. 며느리는 조석 때가 되면 항상 밥이 모자라 매일 굶다시피 하다가 죽고 말았다.
  장사를 지낸 며칠 뒤에 며느리 무덤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면서 “솥적다, 솥적다”하면서 나무 가지에 앉았는데 그때부터 새 이름을 소쩍새라하며 며느리 혼이 화해서 새가 되었다 한다.

<1972. 8. 김일순(이은희) 영해면 성내1리>

(10) 훈계하는 호랑이

  옛날에 두내외가 가난하게 살았다. 하루는 남편이 산에 땔감나무를 하다가 바위 밑 양지바른 곳에 큰 호랑이가 쭈그리고 앉아서 이를 잡고 있었다. 나뭇꾼은 호랑이를 못 본 채 하고 나무를 반짐만 해서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뒤안에 쿵하는 소리가 나길래 나가 보았더니 큰 멧돼지가 누워 있었다.
  이튿날 또 나무하러 갔을 때 또 호랑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며 그날 밤도 그 다음 날도 돼지가 있었다. 부인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남편에게 계속 물었다.
  남편은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호랑이가 어느 산골 바위 밑에 있는데, 아마 그 호랑이가 우리를 도우기 위해 돼지를 잡아 준 것 같소.」하였다. 이튿날 우물가에서 부인은 이웃 여인들에게 이 말을 자랑스럽게 퍼뜨렸다. 다음날 나무하러 갔을 때 호랑이가 화를 내면서 「너를 살려 주려고 했더니 니가 내말을 했으니 너를 희생 시켜야 겠다.」하였다. 나뭇꾼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생각이 그러시다면 이 나무를 집에 갔다 놓고 오거던 저를 죽이십시요.」하고 눈물을 흘렸다. 호랑이가 이 말을 듣고 측은한 표정을 지우면서 갔다 오라고 하였다.
  나무꾼은 집에 와서 새옷을 갈아입고 부인에게 「잘 살아라.」하고 눈물을 훔치면서 삽작으로 나갔다. 부인이 따라 나가면서 「왜 그러느냐?」고 계속 묻자 「나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고만 대답하였다.
  나뭇꾼이 산에 올라가자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나뭇꾼 앞으로 뛰어와서 「포수가 뒤쫓아오니 나를 좀 살려 주시요.」하면서 애걸하였다.
나뭇꾼은 호랑이와 토끼를 솔가지와 장작 속에 숨겼다. 곧이어 포수가 와서 「토끼 못 보았소?」하고 물었다. 나뭇꾼은 저쪽으로 갔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포수는 급히 가리킨 쪽으로 뛰어 갔다.
   호랑이와 토끼가 나와서 고맙다고 인사한 다음 호랑이는 나뭇꾼에게 「앞으로 남의 말 하지 말고 허욕 부리지 마시오. 한 달에 한번씩 당신을 돌봐 주겠소.」하면서 산속으로 사라졌다.

<1972. 8. 朴順姬 창수면 오촌리>
(11) 당금애기

  옛날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딸 당금이가 행복하게 살았는데 불행하게도 당금이는 세살때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아버지는 새 엄마를 데리고 왔다. 새 엄마는 어린 당금이를 짐승처럼 부리고 울리는 등 마음씨가 고약했다. 어느 해 추운 겨울 날 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새 엄마가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워 당금이를 불렀다.「당금아 내가 오늘 따라 생나물이 먹고 싶구나.」 하였다. 당금이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 눈을 헤쳐 가며 나물을 찾다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여 바위 곁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는데 바위 위에서 이상한 새 한마리가 울다가 당금이가 바라보니 어떤 바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당금이는 새가 들어간 바위 앞으로 가니 돌문이 있었다. 돌문을 밀고 들어가니 대문이 세개나 달려 있었다.
  세 대문을 모두 열었을 때 어떤 남자가 지키고 있다가 「어떻게 이곳을 알고 왔느냐?」 하고 물었다. 당금이는 「이상한 새를 따라 왔습니다.」했다. 그 남자는 잘 왔다고 하면서 이상한 풀을 뜯어 주었다. 당금이는 그 풀을 가지고 집으로 와서 새 어머니에게 다려 먹였더니 병이 씻은 듯이 낳았다.
<1972. 9. 이상열(김영숙) 병곡면 각1리>

 

참고문헌(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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