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천리(德川里)
덕천리 동명의 유래는 마을 옆으로 큰 냇물이 흐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17세기경인 숙종(肅宗) 연간에 김해김씨의 김선장(金善長)이라는 분이 은둔하기 위해 상대산 북쪽 기슭 아래 살아서 공수개(公須介) 잿듸마을로 불렀으며, 그 뒤 염전을 하기 위해 현 휘리(揮里)로 이사하였으며 이때 경주최씨가 입주하여 살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해부(寧海府)에 속했으며 대한제국 때에는 영해군 북초면(北初面) 지역으로서, 상대산 뒤쪽이 되므로 잣디, 또는 자두라고도 하며, 후릿그물로 고기를 잡았므르로 후리 또는 휘리(揮里)라 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가 자의로 전국의 행정구역을 폐합할 때, 송하동(松下洞) 일부를 병합하여 휘리1리라 하고 영덕군 병곡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90년 1월 3일 군조례(郡條例) 제1146호로 휘리리를 덕천리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른다.
덕천리의 위치는 동은 동해에 임하고, 서는 각리와 연해 있고, 남은 송천리, 북은 원황리가 있다.
▒ 사천리(沙川里)
사천리 동명의 유래는 마을 옆으로 흐르는 송천거랑(개울)에서 어살을 놓고 고기를 잡았다 하여 살면 또는 미면이라 하다가 사천으로 고쳐 불렀다.
이 마을은 15세기인 조선 태종(太宗) 연간에 신안주씨(新安朱氏), 영해박씨(寧海朴氏)가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며, 그 뒤 경주김씨 등 여러 성씨가 입주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해부에 속했으며, 대한제국때에는 영해군 북초면(北初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항리(項里, 모개)를 병합하여 사천동이라 하고 영덕군 병곡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할 때 사천리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사천리의 위치는 동은 신평리, 서는 창수면 인량리와 면계를 이루고, 남은 송천내를 경계를 영해면 벌영리, 북은 각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