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1945년 이전의 지방행정의 변천

 일반적으로 현대적 의미의 지방행정을 논할 때 그 본질적인 요소로 지방자치를 들고 있으며, 지방자치는 해당지역 주민들의 민주적인 의사가 반영되는 의회 민주정치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행정은 행정의 주체와 행정 주체의 권능이 미치는 범위에 따라 지방행정과 중앙행정으로 구분하며, 이 경우 지방행정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행위 뿐만 아니라 중앙행정기관의 파견 및 정부에 의하여 일부 공적 권능이 부여된 공공단체가 하는 행정행위도 이에 포함시킨다. 나아가서 지방행정기관이 수행하는 행정행위도 지방자치단체가 본래적으로 수행하여야 하는 고유업무와 중앙행정기관으로부터 위임을 받아서 시행하는 위임업무로 구분을 하고 있다.
 물론 고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각 지방에서도 그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와 행정이 이루어져 왔지만 당시는 중앙집권에 의한 관치행정(官治行政)으로 국가 주도의 행정에 예속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대와 같이 중앙과 지방행정이 구분되고, 행정의 업무가 고유업무와 위임업무로 명확히 구분되는 현대적 의미의 지방행정이 이루어진 시기를 대개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시대로부터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 통설이다.
 일제는 그들의 식민통치에 따른 우리 국민들의 감정을 약화시키는 한편, 그들의 식민통치를 호도하기 위하여 도(道)·부(府)·읍(邑)에 도회(道會)·부회·읍회 등을 설치하여 명목상의 지방자치를 실시하였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지방행정제도 안의 한 자치단체로써 그 기능을 펼치고 있는 우리 영덕은 수려한 산악과 청정해안 및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유서깊은 고장으로 경상북도 동북부 해안지역의 정치·행정의 중심지로써 21세기 환태평양의 주역의 역할을 다할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우리 지역은 고래(古來)로부터 동해안으로 침입하는 외적을 방비하여 온 중요한 방어의 요충지였으며, 선사시대를 거쳐 역사시대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을 받아왔다. 우리 지역은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의 주·부·군·현의 한자식(漢字式) 지명의 개편이 있을 때, 야시홀군과 우시군국이 야성군과 유린군으로 개칭(改稱)이 되었다는 기록과 함께 역사(歷史)의 전면에 등장하여 역사의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이었다.

1. 통일신라시대의 지방행정

  통일신라의 지방행정은 9주5소경(九州五小京) 제도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9주는 통일전의 고구려·백제·신라의 땅에다 각기 3주씩 설치한 것으로 이로써 통일신라는 통일후의 확대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이 당시 우리 지역은 옛 고구려 땅에 설치된 하서주(河西州, 명주)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설치된 9주 5소경에 각기 117군과 283현을 소속시켜 지방행정을 펼쳐 나갔다.
  신라의 행정제도의 대강은 삼국의 통일 전까지는 각 주군현(州郡縣)에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형태를 유지하였으나, 통일 후에는 강력한 중앙집권제의 시행으로 중앙의 지배가 지방의 각 군현에 까지 미치도록 하는 중앙집권적 행정제도를 실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각 지방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수적이었는데, 이러한 자발적인 참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 지역의 자율성을 부여하여야 하였다. 이외에도 오늘날과 같이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되지 않아 중앙에서 일괄적인 통제와 군수물자의 보급이 여의치 않은 것도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부여한 중요한 원인의 하나였다. 따라서 통일 전에는 각 지방의 군주나 태수의 책임 아래에 병력과 군수품을 조달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와 국가의 모든 제도가 전쟁수행을 중심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일반 행정적인 기능보다 전쟁 우선의 행정기능이 작동하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각 지방의 책임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여 그 지방을 통할하도록 한 것이 사실이다.
  통일후의 9주5소경 제도의 실시는 통일전의 군사행정(軍事行政) 중심의 지방제도에서 일반행정(一般行政) 중심의 지방제도로의 통치의 방법이 변경되었음을 말한다고 하겠으며, 이에 따라 보다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통치제도가 확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국사기」 중의 「직관지(職官志)」에 의하면, 각 군현의 행정책임자와 이들을 보좌하는 일부 관리는 모두 중앙에서 임명하여 각 지방단위의 행정을 펼친 것으로 나오는데, 이 때 각 군현에 파견된 관리들로는 군에는 태수를 책임자로 임명하였으며, 현의 경우는 현령을 임명하였으며, 현의 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소수(少守) 혹은 제수(制守)라는 관리를 중앙에서 임명하여 중앙에서 소규모의 지방단위에까지 중앙에서 외관을 파견하여 다스렸으며, 그 외에 군(郡)의 감찰업무를 담당하는 외사정(外司正)이란 직책을 각 군(郡)에 1명씩 배치하여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와 현지의 토착관리들의 비리를 감찰, 시정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것은 말단 지방행정 단위에까지 중앙의 외관이 파견된 것으로 중앙의 정령(政令)이 말단 지방행정 단위에까지 직접 침투한 것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제도가 성립한 것을
  한편으로 우리 지역은 통일신라의 지방제도의 변경에 따라 당시 유린군과 야성군으로 개칭된 영해와 영덕지역에서도 이 정도 수준의 중앙관리가 파견되어 중앙의 각종 시책이나 지시를 지방에 전달하는 한편, 이 지역에서 수확된 생산물에 대한 조세와 군민들에 대한 부역 등을 부과, 징수하여 중앙에 운송하는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군현에서 운용(運用)되던 이러한 행정행위 외에 오늘날의 리·면의 단위에서는 군현의 책임자들의 양해 아래에 그 지역의 재지이족(在地吏族) 등의 유지나 세력가들에 의하여 촌락단위의 행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2. 고려시대의 지방행정

  고려시대의 지방행정제도의 확립은 성종 2년(983)부터라고 할 수 있다. 즉 성종2년의 12목의 설치는 개국에 적극 협력한 각 지역의 호족세력들인 지방의 토착세력을 제도권으로 흡수시키는 반면, 주부군현의 관리직을 개편하여 종래의 대감(大監)·제감(第監) 등을 촌장(村長)·촌정(村正)으로 삼음으로써 대읍(大邑) 지역의 토착세력들은 그 세력을 공고히 한 반면 속읍(屬邑)지방의 토착세력들은 몰락을 가져오게 하였다. 따라서 지역 토착세력들의 세력변동을 가져와 이후 현종대에 이르러 116명의 외관을 파견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특히 현종대에 와서는 5도 양계체제(兩界體制) 아래서 4경·8목·15부·129군·335현·29진을 두었는데, 우리 지역은 동경 유수관내에 소속되어 있던 예주(영해)가 중심이 되어 보성부·영양군·평해군·영덕군·청부현·송생현을 통할하면서 행정을 펼쳤다.
  예주가 관할하는 지역에도 중앙에서 외관을 파견하는 영군현(領郡縣)과 외관을 두지 않는 속군현(屬郡縣)으로 나누어지는데, 영덕은 감무(監務)를 두었다 다시 현령을 두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는 예주에 예속되었다가 이후에 중앙의 외관이 파견되는 영현(領縣)으로 승격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고려시대의 지방관은 도에는 안찰사, 계(界)에는 병마사, 경(京)에는 유수, 대도호부와 목에는 사(使)가, 군에는 지사, 현에는 현령 또는 감무가, 진에는 진장을 두었는데, 이들 모두는 중앙에서 파견되는 중앙의 관리였다. 이외에 이들 중앙에서 파견되는 외관을 도와 일반 백성들에게 행정을 펼치는 주부군현의 향직(鄕職)으로는 장정의 다과에 따라 호장(戶長), 부호장(副戶長), 병(兵)·부병정(副兵正), 창(倉)·부창정(副創正), 사(史), 병(兵), 창사(倉史), 공수(公須), 식록사(食祿史), 객사(客舍), 약점(藥店), 사옥사(司獄史) 등으로 지역 실정에 맞게 향직을 구성하여 지역민들을 통치하였다.

3. 조선시대의 지방행정

  조선이 개국된 후에도 지방관제는 고려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도에는 도관찰출척사(都觀擦黜陟使)·관찰사, 또는 안렴사(按廉使)를 두었으며, 각 도 밑에는 주·부·군·현을 두어 각기 부윤·목사·부사·지군사·현령·감무 등이 다스리도록 하였다.
  이후 태종 14년(1413)에 8도체제가 확립됨에 따라 조선시대 지방행정제도의 큰 틀이 확정되었다. 특히 도에는 관찰사를 두어 도내 수령들을 규찰하고 사법·행정·병사(兵事) 혹은 해당 지역의 병·수사(兵·水使)까지 겸하게 하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였으며, 관찰사 휘하의 주·부·군·현에는 부윤·대도호부사·목사·도호부사·군수·현령·현감 등이 중앙에서 파견되어 현장의 일반 백성을 대상으로 행정을 펼쳤다.
  한편으로 우리 지역인 영해에는 종삼품인 도호부사가 임명되었으며, 영덕에는 조선시대 초기인 태종 15년(1414)에 지군사를 임명하였다가 세조 12년(1466)에 다시 종5품인 현령이 임명되어 임금으로부터 부여받은 행정·사법권을 이용하여 일반 백성들의 교화와 세금을 수납하는 역할을 맡았다.
  조선시대 후기인 고종 32년(1895) 이후에 들어와서 영해부는 영해군으로 영덕현은 영덕군으로 개칭되어 안동도호부의 관할 아래에 들어가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주부군현의 일반적인 행정제도는 부사나 현령 아래에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의 6방을 두는 체제였으며, 이들 6방의 관리는 그 지방의 향리들을 임명하였다. 특히 호장을 비롯한 이방·호방·형방을 삼공형(三公兄)이라 하여 우대하였으며, 군현의 관료를 소위 “아전”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들 관료들도 업무가 분장되어 호장소관, 6방소관, 군교소관(軍校所管), 도서원(都書員) 및 각 면서원으로 나누어 업무가 이루어졌으며, 영해부와 영덕현에 소속된 대소 관원의 관명과 인원에 대해서는 제2편의 역사편과 제3편에 상세하게 기록하였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4. 일제 강점기의 지방행정

  1910년 한일병탄 후 일제는 그들의 식민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방행정제도의 개편이 시급한 문제였다. 따라서 그들은 1910년 9월 30일 칙령 제354호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는 정무총감과 총독관방을 두는 한편, 총무부·내무부·탁지부·농상공부·사법부 등의 중앙통치기구를 개편하고는 각 도 단위의 지방제도를 개편하기 시작하였는데, 먼저 각 도 단위의 관찰사 제도를 폐지하고 도에다 내무부와 재무부라는 새로운 제도를 설치하여 각 도의 행정과 재정권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일제에 의한 강제 병탄 당시에 우리나라의 지방제도는 13도 12부 317군이었는데, 총독부 지방관 관제에 의하여 종래에 유명무실하던 면을 부군(府郡)의 하부행정 단위로 그 명칭을 통일하고는 면장을 판임관으로 대우하도록 하였다. 이 때 전국의 면수(面數)는 총 4,322개소가 되었다.
  한편 1914년 3월 1일부터 시행된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하여 도의 관할구역과 부군의 명칭과 위치 등이 개편 통합되었는데. 이 때 영해군이 영덕군에 통폐합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914년 3월 1일 당시의 우리나라 행정구역수는 13도 12부 220군 2,521면으로 되었는데, 병탄 당시와 비교하여 보면 97군 1,804,면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광복되기까지 몇 번의 지방제도의 변경이 있었으나 대체로 이 때에 결정된 행정구역과 명칭이 그대로 유지된 채 이후의 식민통치가 이루어졌다.
  특히 일제 강점 아래 전기간 동안 그들 식민수탈의 최첨병(最尖兵)의 역할을 한 하부 단위의 행정기관으로는 군·도(郡·島)와 각 읍·면이 있었는데, 이들 군·도와 읍·면의 행정기구로는 먼저 군에는 주임관(主任官)인 군수를 두어, 도지사의 지휘감독을 받아 법령을 집행하고 관내의 행정사무와 예하 관리들을 지휘감독하였으며, 읍·면에는 판임관 대우의 읍·면장을 두어 각 동리의 구장(區長) 혹은 이정을 통할하며 식민통치에 협조하도록 하였다.
  군의 조직으로는 서무과와 내무과 혹은 산업과를 두어 군수의 행정업무를 보조하도록 하였으며, 군의 하부기관인 읍·면에는 읍장, 면장을 두고 이들 예하에 내무계, 회계계, 재무계, 호적계, 기류계(寄留係), 병사계, 동원계, 산업계, 식량계 등을 설치하여 업무를 분장시켜 식민수탈에 용이하도록 하였다.
  일제 강점하의 각 지방 군청내에 설치된 서무과와 내무과가 관장한 업무를 살펴보면 일제에 의한 식민수탈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표 <4-50>은 일제 강점하의 일반

적으로 통용된 군과 읍·면과의 관계이다.
  일제 강점 아래에서 식민수탈을 위해 각 과 혹은 각 계에 부과된 업무 분장들은 광복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대부분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다만 필요에 따라 과와 계를 증설하거나 축소하여 그 업무들을 집행하고 있다.

(서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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